[류송자의 문학감상] 아파트 이름 (수필)
[류송자의 문학감상] 아파트 이름 (수필)
  • 류송자 수필가
  • 승인 2017.06.17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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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글로벌스타 - 수필가 '류송자'의 문학 감상 3]

 

 

아파트 이름

 

류송자

 

오래전 볼 일이 있어 산본에 버스를 타고 지나다 버스 창가에 스치는 “뜨란채”라는 아파트를 본 적이 있다. 뜨란채? 뜨란채? 그러다가 아! 그게 뜰안채의 발음 하는 대로 그대로 이름을 딴 거구나 하고 감탄을 했다. “탐이나”를 “타미나”처럼. 그래, 뜰안채. 대문에 사랑채가 나오고 마당 건너 뜰안채 살림집이 나온다. 고색 창연한 사대부 집의 전형적인 가옥 구조다.

아파트에서 살아 온지가 오래이지만 나는 아직도 어린 시절 고향의 단독주택에서 자유분방하게 살던 시절이 아련한 추억으로 떠오른다.

결혼하기 전 우리 집은 300여평 되는 넓은 집이었다. 아버지는 사랑채에 늘 계셨다. 하루에 진지 드시는 일 외엔 안채에 들어오시는 일이 없었다. 안채에는 돌아가신 어머니와 동생 둘이 공부하러 외지에 나가고 오빠 내외와 언니, 작은 오빠, 조카 넷, 나, 도우미 등, 열 식구였다. 마당 가운데 우물이 있고 작은 엄마 작은 채마밭, 그리고 나를 늘 괴롭히는 거위 두 마리가 있었다. 더운 여름, 사랑채에 그냥 계시다가도 안채에 진지를 드시러 들어오시는 아버지는 아무리 더워도 양말을 신고, 위에 남방을 입으셨다. 올케 언니는 식사 준비가 끝나고 상을 차려 놓으면, 긴 치마와 모시적삼에 버선을 신었다. 아버지는 독상이고 우리는 모두 둥근 상에서 먹었다.

“새언니, 이 더운데 뭘 그리 어렵게 살어? 편하게 해.”

하고 내가 권할 때면 “어른들이 오시는데 맨발이면 안 되지.” 하고 단 한 번도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하긴 아버지가 다 큰 여동생이 줄줄이 있는데 파자마 바람으로 들락거리지 말라고 엄명을 하셨으니까. 늦은 여름 저녁 안채 마당 평상에서 온 식구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 파자마 바람으로 평상 위에 앉아 있던 오빠가 사랑채에서 아버지 헛기침 소리만 나도 얼른 방으로 들어가기도 했으니까.

저녁 식사 후 사랑채에 혼자 계시는 아버지께 저녁 문안을 간다. 물론 올케 언니가 청소며, 의복이며 부족한 것 없이 해결해 놓지만 낮에 근무지에서 있었던 일하며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다 안채로 들어온다. 그런데 개 대신 기르던 큰 거위 두 마리가 유독 나만 보면 두 날개를 펴고 달려들었다. 그래서 집안을 마음대로 오갈 수 없어 꼭 아버지가 곁에 계셔야 했다. 퇴근할 때도 대문 앞에서 남의 집 기웃거리듯 “이 놈 거위 어디쯤 있나”하고 살피다 마당 끝 쪽에서 먹이를 먹다가도 나만 들어가면 내 쪽으로 돌진한다.

“아버지!” 하고 소리치면 아버지가 긴 싸리 빗자루로 쫓아 주시곤 했다. 그 놈이 내지르는 소리 또한 대단했다. 아버지가 두루막에 중절모를 쓴 채 자전거를 타고 이웃 잔치에라도 가고 안 계실 때는 안채의 식구들을 소리 질러 불러내어 뒷문 빗장을 풀고 살금살금 지나가다가도 나만 보면 쾍쾍 거리면서 쫒아오면 나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쏜살 같이 도망가곤 했다. 한 번은 치마 끝을 물려 혼난 적도 있다. 왜 그렇게 나만 보면 쫒아 다니는지, 내가 자기를 겁내는 걸 아는 것 같기도 했다.

60여년 전 아득한 지난날의 상념에 잠겨 있는 동안 버스가 목적지에 다다랐다.

거대한 아파트 숲을 걸으며 어린 시절 단독주택에 살던 추억에 잠겼던 꿈을 깨고 다시 아파트를 쳐다 보았다.

내가 본 아파트 이름 중에는 얼른 내 마음에 드는 이름이 있다. 양주에서 본 은동마을, 대구에서 본 은하마을, 초록마을, 신천지 푸른마을 보람아파트 무지개마을, 덕소의 한솔아파트 장미, 그리고 이편한세상 레미안, 고층아파트의 하늘채. 공중에 떠 있으니까. 평택의 산나리, 어릴 적 소풍 갔을 때 야산 여기저기 피어 있는 푸른 녹색 속에 간간히 섞여 있는 아름다운 꽃이 떠오른다.

은하수타운- 수많은 은하수, 수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별 같은 동네, 아름다운 이름이다. 파랑새마을- 파랑새의 아름다운 색깔-행운이 올 것 같다.

푸른 마을- 숲 속에 잠겨 있는 아름답고 고요한 청정한 동네처럼 느껴진다. 그릴힐 타운보다 훨씬 정겹다. 백조마을- 목이 긴 아름다운 새가 떠올라 하늘을 비상하는 고귀함을 느끼게 한다. 레미안(來美安), 참 멋진 이름이다. 그 외에도 비단마을, 꿈마을, 자연촌, 풍경채, 버들마을, 은평 뉴타운의 어울림, 송추의 푸른 옥마을 아파트, 우리마을 아파트, 서울 북촌마을 한옥 대문에 근사한 택호를 가진 현판이 있는 집을 보게 된다. 주인의 인품이 풍기는 멋이다. 우리는 광화문 네거리에 세종대왕을 모셔 놓고는 세종대왕이 화를 낼 일을 골라서 저지른다. 아파트의 이름뿐만 아니다. 아예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어버렸다.

광화문 가까운 곳에 “경복궁 아침”이라는 근사한 이름의 사무용 건물이 있어 다행이다.

한 번 더 생각하고 아파트 이름을 고운 우리말로 지었으면 한다. 우리에겐 녹우당, 충효당, 양진당, 후조당 등 품격 있는 이름이 있지 않았던가! 옛날의 주택이 새삼 그리운 것은 편리 위주로 지은 아파트에 식상했는지 모른다. 아파트 이름까지 외래어 투성이니 나이 든 우리 세대의 정서에는 어쩐지 낯설기만 하다.

 

 

수필가 류송자

 

* 1944년 경상북도에서 태어나, 안동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를 역임하였다. 이후 2011년, 문학미디어 봄호를 통해 수필로 등단한 이후 꾸준한 활동을 계속 해 오고 있다.

 

* 루나글로벌스타는 수필가 '류송자'님의 수필을 2017년 5월부터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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