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과 번뇌의 무게는 나이에 비례하지 않는다, '우리들'
고민과 번뇌의 무게는 나이에 비례하지 않는다, '우리들'
  • 김민주
  • 승인 2019.08.18 22: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루나글로벌스타 김민주 ]

 

*본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_배급사 엣나인필름

 

 

영화 ‘우리들’은 윤가은 감독의 첫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보는 내내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암울하고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많은 드라마와 영화가 ‘청소년’에 주목해 그들의 학교생활과 가정 이야기를 담은 하이틴이나 리얼리즘적인 작품을 많이 내놓았다. 하지만 그러한 작품들은 현실을 ‘반영’한 것에 그쳤다면 영화 ‘우리들’은 현실 그 자체였다. 

 

이 영화는 ‘관계’라는 것에 많은 초점을 맞추고 있다. 소극적이고 사람을 사귀는 것을 어려워하는 선과 또 다시 따돌림을 당하고 싶지 않아 친했던 선을 멀리하기 시작하는 지아. 그리고 처음으로 맺은 ‘관계’를 잃고 싶지 않아 노력하는 선의 모습까지. 지아와 선은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것에 계속해서 치이고 상처 받으면서도 다시 일어서고 극복하려 노력하면서 성장한다.

하지만 본 기사에서는 선과 지아가 경험했던 관계의 아픔과 혼란, 고통보다는 왜 그들이 인간관계를 어려워했는지에 더 주목하고 싶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겪었던 관계의 어려움은 영화에서 명백하게 보여 지는 가정폭력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답답하고 괴로웠던 것은 아이들에게 숨 쉬듯 가해지는 가정폭력이었다. 게다가 우리 역시도 한 번쯤 보고 들어본 적 있는, 혹은 지속적으로 보고 들었던 것들이라는 사실이 더욱 마음을 죄이게 했다. 특히 ‘선’에게 가해지는 가정폭력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중에 저지르는 것이었다.

 

아동기에 부모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평생에 걸쳐 갖게 될 성격을 형성하는 시기이며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서 건강한 관계를 맺는 법을 배우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에 부모는 아이에게 지속적이고 예측 가능한 반응을 해 주어야 하고 아이가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영화 속 선의 모습은 불안정-회피 애착 유형 아이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선은 이제까지 부모님으로부터 자신이 어떤 표현을 했을 때 그에 대한 반응을 제대로 받아 본 적이 없다. 지속적으로 반응을 거절당해왔기 때문에 선은 특정한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어떤 표현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은 더욱 움츠러들고 제대로 된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던 것이다.

 

선이 상당히 조숙한 모습을 보이는 것 역시 가정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다. 아이에게 조숙함과 철든 모습은 좋은 것이 아니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한다. 때로는 떼도 써 보고, 아무런 이유 없이 그저 기분이 내키는 대로 웃고 울어도 보고, 부모에게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자라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충족되지 못했기 때문에 선이 영화 속에서 보여 주는 모습이 전혀 아이 같지 않았던 것이다. 가정에서 선은 11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였지만 동생에게는 보호자였고, 어머니에게는 친구였다. 

특히 선의 어머니가 아이에게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집안의 구체적인 상황, 남편에 대한 불만이나 불화 등을 여과 없이 말한다는 것이 참 불편하면서도 완전히 남의 일 같지 않아 씁쓸했다. ‘친구 같은 모녀’라는 틀 안에서 굳이 아이가 알아야 할 필요가 없는 것까지 전부 이야기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딸인 선을 마치 모든 감정을 쏟아내도 되는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그녀의 어머니가 만들어내는 모든 상황이 선으로 하여금 눈치를 보고 집안 상황에 신경을 쓰게 만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에게 ‘돈 문제를 네가 왜 신경 쓰냐’는 한 마디가 참 모순적이라고 느껴졌다.

 

영화 ‘우리들’은 선과 지아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사실 그들의 이야기는 현실에서 빈번하게 보여 지는 우리의 이야기이다. 우정이라는 관계 속에서,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서 상처 받고 고단한 것은 어린 아이도, 선과 지아보다는 나이를 먹은 나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라고 해서 고민과 번뇌의 무게가 가벼운 것은 아니다. 그저 끊임없이 고민하고 상처 받으면서도 나아지려고 애쓰는 우리만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의 제목이 ‘우리들’인 것은 아닐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