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화된 젠더 역할에 대해 날리는 시원한 한 방, '호신술의 모든 것' [BIFAN]
정형화된 젠더 역할에 대해 날리는 시원한 한 방, '호신술의 모든 것' [BIFAN]
  • 영화부|김민주 기자
  • 승인 2019.07.12 1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영화 '호신술의 모든 것'

[루나글로벌스타 영화부|김민주 기자] 영화 ‘호신술의 모든 것’은 매사에 소심하고 겁이 많은 케이시가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호신술 가라테를 배우면서 발생하는 일들을 담고 있다. 케이시는 어느 날 밤에 강아지 사료를 사고 집에 오던 중 오토바이 폭주족에 의해 무자비하게 구타당하고, 그 이후로부터 케이시는 밤이 무서워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기합소리에 이끌려 들어간 가라테 도장에서 회원들의 호신술을 바라보던 케이시는 문득 스스로도 남들이 깔보지 못하는 무서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바로 가라테에 등록한 케이시는 호신술을 배우면서 점점 자신감이 생기는 것을 느끼고, 도복 띠를 마치 자신감의 근원인 것처럼 소중히 여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케이시를 눈여겨본 센세는 그에게 가라테를 잘 하는 사람들만 나오는 밤 수업에 나올 것을 권유한다. 과연 케이시는 가라테를 통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강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저작권_'호신술의 모든 것',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영화 ‘호신술의 모든 것’은 이번 23회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상영작들 중 가장 재미있고 명확한 영화였다.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바는 영화를 보면서 정확하게 느낄 수 있었으며, 주연 배우인 제시 아이젠버그의 연기력은 적절한 상황에서 모두에게 웃음을 주었고, 마지막 반전은 통쾌함을 안겨주었다. 이 영화가 갖고 있는 메시지는 정형화된 젠더 역할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극중 센세가 케이시에게 남자라면 메탈을 들어야 하고, 공격적이어야 하며, 프랑스어보단 독일어나 러시아어를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 대사에서 한없이 진지하고 마치 중대한 비밀을 알려주는 것 마냥 엄숙하게 말하는 센세의 모습을 비웃게 되고, 꽉 막힌 사고방식을 가진 그를 비판하게 된다. 또한 가라테 도장의 유일한 여성 멤버인 애나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검은 띠를 받지 못한다. 

이처럼 영화에서는 ‘남자다운 것’과 ‘여자다운 것’에 대해 우리 사회가 흔히 정의해왔던 모든 정형화된 고정관념을 코미디와 함께 녹여냈다.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가 이 영화를 더욱 좋은 영화로 빛나게 해 준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웃음’이라는 것을 통해 우리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비합리적인 젠더 역할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감독이 많은 고민을 하고 만들었다는 것이 느껴진다. GV에서도 릴리 스턴즈 감독은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에 대해 점점 젠더에 대한 인식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현재에 어떻게 그것을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담은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릴리 스턴즈 감독의 말처럼, 영화가 비판적으로 조명하고 있는 남성성과 여성성은 답답하면서도, 살면서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본 것들이기 때문에 익숙함을 느끼기도 한다. 

왜 남자는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닥스훈트를 사랑으로 보살피고 부드러운 성격을 가지면 안 되는가. 왜 여자는 신체적 조건을 넘어서 월등한 실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라테와 같은 무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무시 받아야 하는가. 우리는 더 이상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이분법적인 관점으로 사람들을 정의할 수 없다. 또, 그렇게 정의하려는 시도는 의미 없는 일이다. 불합리한 당위성을 가진 젠더 역할을 타파하고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것. 이것이 바로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가장 큰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결말 역시 참 마음에 든다. 남자는 강하고 대담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을 지키기 위해 총을 사용하는 것은 약자들만 하는 행동이라고 무시하던 센세는 역설적으로 그 총에 의해 최후를 맞이한다. 스스로 ‘약자의 무기’라고 정해놓은 것에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며 그것이 케이시의 완벽한 승리라는 통쾌함과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 센세는 자신이 아무리 강해도 총을 든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모두가 총을 갖게 된다면 그가 가진 남성적인 면모는 어떤 영향력도 미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도장 멤버들이 계속해서 자신을 존경하고 무서워하도록 그보다 강한 ‘총’을 약자의 무기라고 세뇌시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잘못된 신념을 갖고 남을 폭력적으로 찍어 누르려는 자의 별 볼 일 없는 마지막은 그에게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끝이었다.

 

 

이처럼 영화 ‘호신술의 모든 것’은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를 통해 첨예하게 비판하는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스스로 정의된 한계 때문에 도전조차 하지 못하고 놓아버린 것은 없었는지 돌아볼 수 있었다. 여자라면, 혹은 남자라면 마땅히 해야 할 어떤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 원하는 것을 하면 되는 것이다. 감독이 그려내는 이와 같은 젠더에 대한 고찰이 참 마음에 들었고, 차기작 역시도 큰 기대를 해볼 만 하다고 느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