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분노, '릴리' [BIFAN]
더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분노, '릴리' [BIFAN]
  • 영화부|유채린 기자
  • 승인 2019.07.05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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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글로벌스타 유채린 기자] 제23회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이하 BIFAN)에는 다양한 단편을 만나볼 수 있는 ‘판타스틱 단편 걸작선’ 섹션이 있다. 올해 판타스틱 단편 걸작선은 한국단편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국내 단편 36편과 해외 단편 44편, 그리고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와 공동으로 한국 독립애니메이션의 현재를 보여주는 14편의 애니메이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섹션에서는 다양한 국가의 단편을 엿볼 수 있는데, 그중에서 판타스틱 단편 걸작선 8에 속한 <릴리>라는 작품이 눈에 띄었다. <릴리>는 네덜란드 출신 잎케 반 베르켈라어 감독의 작품으로 별다른 요소 없이 배우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진=Scarlet Productions
사진=Scarlet Productions

배우 오디션에 지원한 릴리는 감독 앞에서 최선을 다해 연기한다. 그의 연기를 칭찬하던 감독은 점점 연기하는 데 불필요한 요구를 하기 시작한다. 가령 ‘여성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라고 생각하며 블라우스 단추를 풀어보라는 식이다. 말도 안 되는 요구에 릴리는 당혹스러움을 내비치면서도 연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다 ‘목소리’로만 존재를 알리던 감독이 화면에 등장한다. 감독의 얼굴은 등장하지 않지만 그는 릴리에 대하여 우위를 점하고 있다. 불필요한 스킨십을 시작하며 옷을 점점 풀어젖히던 감독은 릴리에게 물어뜯기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진 피투성이 릴리가 다시 화면에 등장하며 영화는 끝난다. 

영화를 보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던 ‘미투’ 운동이 떠올랐다. 미투 운동이 크게 이슈가 되었을 당시, 이른바 권력형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왜 그때 저항하지 않았는지, 왜 당하고 나서도 친분을 유지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굉장히 잔인하고 가혹한 행동이지만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은 너무도 그 말을 쉽게 내뱉었고, 피해자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사진=Scarlet Productions

하지만 영화는 반전을 통해 더이상 침묵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한다. 인간이 아닌 릴리의 존재라는 점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설정이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여성들이 그동안 드러내지 못한 성폭력의 문제에 대해 함구하지 않고 분노하고 있음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비현실적인 결말의 9분짜리 이 영화는 여성의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오늘날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다. <릴리>가 담백하면서도 강렬하게 메시지는 억압받는 자에게는 저항하라는 용기를 불어넣을 것이고, 억압하는 자에게는 경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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