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철학이 이루어내는 완벽한 조화, '라이프 오브 파이'
예술과 철학이 이루어내는 완벽한 조화, '라이프 오브 파이'
  • 영화부|김민주 기자
  • 승인 2019.07.02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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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글로벌스타 영화부|김민주 기자]

 

*본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는 ‘파이’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는 파이가 글을 쓰기 위해 그를 찾은 작가와 인터뷰를 하면서 시작한다. 자신의 삶에 대해 묻는 작가에게 파이는 천천히 자신의 삶을 회상한다. 인도에서 태어나 종교에 관심이 많던 파이.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인도에서 캐나다로 가는 배를 탄 파이는 원인불명의 사고로 침몰하는 배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사람이다. 하지만 파이가 탄 구조보트에 벵골 호랑이인 ‘리차드 파커’가 함께 올라타게 된다. 드넓은 바다 한 가운데에 홀로 떠 있는 구조보트 안에서 육식동물인 호랑이와 함께 표류하게 된 파이. 파이는 생명을 위협하는 수많은 악조건 속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

 

 

저작권_네이버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포스터

 

 

이 영화는 ‘라이프 오브 파이’라는 제목과 마치 모험이라도 떠나는 것 같은 포스터로 인해 호랑이와 함께 하는 가벼운 판타지 어드벤처 영화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하지만 영화를 시작해보면 세 가지에 놀라게 되는데, 첫 번째는 망망대해에 표류되었다는 상황도 잊을 정도로 아름답고 웅장한 영상미이며 두 번째는 결말부에 드러나는 반전이고, 세 번째는 영화가 던지고 있는 철학적인 메시지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카만 어둠이 지난 후에 떠오르는 태양이 물에 비치면서 너무나도 깨끗하고 맑은 바다와 해수면에 비치면서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하늘의 모습은 마치 천국을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는 마치 고전 명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영상미 속에서도 관객에게 상당히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파이와 벵골 호랑이인 ‘리차드 파커’의 생존기라고만 생각했던 관객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후반 30분 동안 몰아치는 반전은 어안을 벙벙하게 한다. 파이의 표류기에는 두 번째 이야기가 존재했던 것이다. 그것은 바다 한 가운데에서 호랑이와 단 둘이 살아남은 이야기보다 더욱 현실적이고, 처절하며, 잔인하다. 영화 초반에 등장했던 얼룩말과 오랑우탄, 그리고 하이에나는 각각 불교 신자, 어머니, 그리고 주방장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호랑이였던 리차드 파커는 바로 파이 자신이었다. 여기까지 영화가 전개되었을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의문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다면 파이와 리차드 파커는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 파이와 리차드는 ‘피신 파텔’에게 존재하는 두 개의 자아로써 각각 이성적인 자아와 본능을 추구하는 자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파이는 이성적인 자아이다. 사고를 하는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과, 그의 이름이 어찌 보면 가장 이성적인 학문이라고 볼 수 있는 수학 공식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그에 반하여 ‘리차드 파커’는 본능을 추구하는 자아이다. 사람에 비해 본능을 따르는 동물, 호랑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파이는 표류된 상황 속에서 리차드 파커가 자신을 잡아먹을까봐 두려워하고 계속해서 경계한다. 이는 곧 극한의 상황 속에서 이성을 잃은 채 본능에만 잠식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리차드 파커는 파이의 목숨을 위협하는 야생동물이었지만 역설적으로 리차드 파커가 함께 했기 때문에 파이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즉 극한의 상황에서 이성적으로만 생각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망망대해 정 가운데에 뚝 떨어졌는데 어떻게 계속해서 이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살겠다는 본능, 리차드 파커가 있었기 때문에 ‘피신 파텔’은 생존할 수 있었다.

리차드 파커 없이 파이 혼자 그 구조보트에 남겨졌다면 아마 파이는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 미쳐버리거나 잠식되어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배가 멕시코 해안가에 도착했을 때 리차드 파커는 홀연히 밀림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이성, 즉 파이는 사람들에게 구조된다. 아마 리차드 파커가 사라진 이유는 이제 세상 속에서 살아갈 파이에게 그와 같이 생존을 위한 처절한 본능은 더 이상 필요가 없음을 알고 조용히 내면으로 사그라든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러나 두 가지의 이야기가 모두 끝난 후에 파이는 작가에게 어느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냐는 질문을 한다. 작가는 첫 번째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든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첫 번째 이야기도 두 번째 이야기도 결국에는 모두 ‘피신 파텔’이라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사실’이라는 것의 여부는 겪어보지 않은 우리는 영원히 알 수 없다. 이성과 본능의 싸움이라고 말했던 것도 모두 부질없는 의미부여일지도 모른다. 그저 파이는 두 가지 이야기를 들려줄 뿐, 어떤 것이 사실인지에 대한 판단은 우리에게 맡긴다. 우리의 선택에 따라 파이는 정말 벵골 호랑이인 리차드 파커와 기나긴 시간 동안 표류했을 수도 있고, 혹은 극한의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해 살인과 같은 용서 받지 못할 짓을 한 것에 대한 트라우마와 극심한 충격으로 모두를 동물로 비유한 채 지어낸 이야기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어느 것이 진실인지가 중요할까. 이미 파이는 너무나 많은 것을 떠나보냈다. 무엇이 더 마음에 드냐는 파이의 질문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과연 내가 그 이야기가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감히 결정할 수 있는 것일까. 이미 발생한 일에 어떤 의미가 더 있단 말인가.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처럼 바다 한 가운데에 표류되거나 무인도에 떨어지는 등 극한의 상황을 배경으로 제시하는 영화는 대부분 그 상황에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이성과 윤리의 한계, 인간성에 대해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영화 ‘하트 오브 더 씨’가 그러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기존의 표류기를 다룬 영화들과는 조금 다르다.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이성과, 동물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본능을 한 배에 태운 후 그들이 의심하고 경계하다가 어느 순간 서로 인정하고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기존에 그려졌던 것처럼 ‘본능’이라는 것을 인간성을 해치는 야만적인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이성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일부분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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