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게 타올랐던 여름의 끝은 타고 남은 검은 재일 뿐, '검은 여름'
뜨겁게 타올랐던 여름의 끝은 타고 남은 검은 재일 뿐, '검은 여름'
  • 영화부|김민주 기자
  • 승인 2019.06.21 23: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루나글로벌스타 영화부|김민주 기자]

 

*본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_배급사 미로스페이스

 

 

 

 

영화 ‘검은 여름’은 이원영 감독의 첫 장편작으로, 이미 제 22회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한 차례 상영된 영화이다.
영화는 지현과 건우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저 작은 바람으로 인해 흔들리는 바람개비처럼, 지현과 건우는 서서히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에서 한 가지 특별했던 점이 있다면 바로 동성이었다는 것. 보편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지현과 건우는 혐오와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그리고 그들이 겪는 혐오와 폭력은 사회가 소수자에게 가하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영화 ‘검은 여름’에서 지현과 건우가 겪는 폭력과 혐오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면전에 대고 ‘더럽다’라는 발언을 하며 손을 닿는 것조차 불쾌해하고, 지현이 근무하는 조교실 문에는 온갖 성희롱적인 발언과 모욕적인 언사의 낙서들이 마치 낙인처럼 새겨져 있다. 건우는 자신에게 욕을 하는 사람에게 두드려 맞기도 하고, 지현은 친한 친구들에게 마저도 집을 나가달라는 말을 듣게 된다.

부끄럽게도, 건우와 지현에게 가해지는 폭력적인 시선과 발언들은 사실 우리도 한 번쯤 스쳐지나가듯이 들어본 적이 있는 것들이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동성애’라는 코드가 너무나도 쉽게 비하되고, 조롱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게이같다’라는 말이 특정한 부분들을 꼬집어 조롱하는 말로 쓰이고, 그 말을 들은 사람 역시 큰 모욕을 당한 것처럼 화를 낸다.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조차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표출해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검은 여름’에 등장하는 그 폭력들이 익숙하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쳤고, 어떤 방패막도 없이 쏟아지는 모든 모욕을 무방비하게 감내해야 했을 지현과 건우가 안쓰러웠다. 

 

 

이 영화는 성소수자들이 겪어야만 하는 차별과 폭력, 그리고 혐오를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잘 그려내고 있다. 영화를 보며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사춘기처럼 잠시 지나가는 게 아닐까’라는 것이었다.

왜 건우와 지현의 사랑은 그 대상이 동성이라는 이유로 축복받지 못하고 그저 스쳐지나가는 일종의 일탈 행위로 간주하는 것일까.

사회는 그들의 ‘사랑’이 아니라 ‘성별’에만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지현이 건우를, 건우가 지현을 사랑했을까. 이원영 감독은 부산 국제영화제 GV에서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로 ‘바람개비’를 언급하며 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바람이 불면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것처럼 사랑은 어떤 논리적 설명도 필요 없이 빠져들게 되는 것이라고. 남자라서 사랑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보니 남자였던 것이라고. 이원영 감독의 이 말이 가장 정답인 것이 아닐까. 우리는 어떤 이유가 있어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게 아니다. 그저 그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지현과 건우도 마찬가지였다. 남자라서 사랑한 게 아니라, 그냥 지현이었고 건우였기 때문에 사랑한 것이다. 

 

 

퀴어를 소재로 한 영화를 볼 때마다 항상 드는 의문이 있다.
왜 사회는 소수자를 포용하지 못하는가.
나와 다르다는 것에 대한 어색함과 낯설음을 거부와 혐오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까.

영화의 결말에서 서로를 끌어안은 지현과 건우의 표정이 기억에 남는다.
지현은 병에 무슨 소원을 속삭였을까. 건우는 소라에게 어떤 바람을 풀어 놓았을까.
그들의 사랑의 테마곡은 역설적이게도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이었다. 가슴 아프고 슬픈 감정을 의미하는 비창은 찬란하고 아름다워야 할 사랑의 고난을 암시하는 게 아니었을까.

그들의 사랑은 뜨겁게 불타올랐지만, 혐오와 폭력으로 인해 결국 까맣게 탄 재가 되고 말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