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한 희생?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킬링 디어'
숭고한 희생?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킬링 디어'
  • 문화부|최이선 기자
  • 승인 2019.05.3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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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킬링 디어' 공식 포스터
영화 '킬링 디어' 공식 포스터

 

The Killing of a Sacred Deer

<킬링 디어>, 작품의 원제는 <The Killing of a Sacred Deer>, 성스러운 사슴 죽이기 혹은 죽음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화 내에서 희생되는 사슴은 누구이며, 무엇을 위한 그의 죽음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영화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은 아르테미스 여신의 사슴을 쏘아 죽은 죄를 사하기 위해 자신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치게 된다. 그녀를 불쌍히 여긴 여신께서 사슴을 그녀 대신 제물로 받고 이피게네이아를 자신의 신전 사제로 삼는다.

사인이 직접적이진 않지만, 주인공 외과의사 스티븐의 음주 후 수술로 인해 마틴의 아버지가 죽게 된다. 그리고 마틴은 기이한 현상을 이용해 스티븐의 가족들을 압박해 가면서 가족 중 한 명을 자신의 아버지의 목숨 값에 맞는 제물로서 바칠 것을 요구한다. 이처럼 작품 내에서는 마틴의 아버지와, 가족을 위해 희생되는 스티븐의 아들인 밥이 아가멤논의 사슴으로 대응된다.

 

영화 '킬링 디어' 스틸컷
영화 '킬링 디어' 스틸컷

 

God?

그렇다면 스티븐의 가족들에게 비극을 가져다 주는 마틴은 대체 어떤 존재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작품 내에서 마틴은 기이한 현상을 만들어내는 신적인 존재로 나타난다. 혹은 인간이 처할 수 있는, 그러나 피할 수 없는 비극 그 자체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마틴은 스티븐의 가족들에게 죽음을 부여하고 이를 위한 해결책으로 스티븐에게 선택을 강요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스티븐은 선택하지 않고 눈을 가린 채 총을 쏜다.

영화 내에서 스티븐의 가족들에게 내려진 마틴의 저주는 기현상으로 취급될 만큼 믿을 수 없다. 그러나 아내, 딸, 아들은 모두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선택권을 가진 아버지에게 우스울 만큼 복종하고, 서로를 견제한다. 란티모스 감독은 이와 같은 가족들의 모습을 인간의 보편적인 것으로 상정했고, 때문에 해당 배우들에게도 평준화된 연기를 요구했다고 한다. 란티모스 감독의 sarcastic한 유머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결국 마틴의 균형과 이로 인한 밥의 희생은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숭고한 사슴의 희생이라기 보다는, 단지 신화를 차용하여 인간의 실존에서 숭고한 희생은 없음을 역설하는 장치라고도 볼 수 있게 된다.

 

영화 '킬링 디어' 스틸컷
영화 '킬링 디어' 스틸컷

 

또한 스티븐의 딸인 킴은 마틴에게 의지하고, 그와 성적인 관계에 있는 것처럼 등장한다. 아마 마틴이 이 상황을 시작했고, 또 종결할 수 있는 절대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킴이 선택권을 가진 자신의 아버지의 발 밑에 엎드려 거짓으로 자신의 희생을 약속함이나 아내인 안나가 성적 매력으로 남편을 설득하는 장면은 블랙코미디임과 동시에 여러 신화와 문화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젠더 권력 구조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도록 한다.

[루나글로벌스타 문화부|최이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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