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성의 위대한 도전, 현실 앞에 좌절을 겪다 '기린과 앤' [16th SEFF]
한 여성의 위대한 도전, 현실 앞에 좌절을 겪다 '기린과 앤' [16th SEFF]
  • 문화부|김준모 기자
  • 승인 2019.05.29 09: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환경영화제 상영작] 영화 '기린과 앤'

▲<기린과 앤> 포스터ⓒ Pursuing Giraffe Adventu

 

[루나글로벌스타 김준모 기자] <동물에게 배우는 노년의 삶>이라는 책의 저자이자, 캐나다의 원로 동물학자 앤 이니스 대그는 최초로 아프리카에서 야생동물을 연구한 여성이다. 40년 동안 침팬지를 연구하며 행동을 연구한 영국의 유명한 동물학자인 제인 구달보다 4년 먼저 홀로 아프리카를 향했다. 제인 구달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물학자인 반면 앤 이니스 대그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다큐멘터리 <기린과 앤>은 비운의 동물학자 앤의 굴곡진 인생사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크게 3부로 나눌 수 있다. 1부는 대학생 앤이 홀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향하는 이야기다. 앤의 이 모험은 드라마적인 재미와 귀여운 연애담을 보여준다. 앤은 어린 시절부터 기린에 관심이 많았고 대학에서 기린에 대해 연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대학에는 기린에 대한 자료가 없는 수준이었고 이에 그녀는 직접 아프리카로 향해 야생기린을 보고자 한다. 하지만 이 모험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 번째는 그녀의 가정사이고 두 번째는 앤이 여자라는 점이었다.
 
당시 앤의 집은 형제자매가 모두 독립을 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였다. 집에는 앤과 어머니밖에 없었기에 앤이 집을 떠나면 어머니는 홀로 남아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앤은 아버지를 잃고 홀로 슬퍼하실 어머니와 자신의 꿈 사이에서 고민을 하였다. 하지만 강인한 여성이었던 어머니는 꿈을 위한 딸의 노력을 밀어주었다. 덕분에 앤은 아프리카를 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문제는 당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상황이었다.
  

▲<기린과 앤> 스틸컷ⓒ Pursuing Giraffe Adventu


당시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차별정책 때문에 백인과 흑인 사이의 갈등이 극에 치달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백인, 더군다나 여자가 혼자 가는 건 위험하다는 시각이 존재했다. 앤은 자신의 연구를 도와달란 편지를 많은 이들에게 보냈으나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운 좋게 한 농장에서 기린을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앤은 고물자동차를 통해 초원을 질주하며 기린을 연구하게 된다.
 
작품은 이 과정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앤이 찍었던 영상과 과거 앤의 모습을 재현하며 흥미를 준다. 여기에 앤과 이안의 사랑 이야기 역시 매력 포인트이다. 앤은 자신을 사랑하는 이안에게 자신은 아프리카로 가니 기다리지 못할 거 같으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 말한다. 하지만 이안은 앤을 기다려 주고 두 사람은 결혼에 골인한다. 앤과 어머니, 앤과 이안이 과거에 쓴 편지는 내레이션으로 나타나는데 어머니의 강인함과 이안의 사랑, 여기에 앤의 위트와 센스가 더해져 유쾌하고 귀여운 느낌을 준다.
 
2부는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앤의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연구를 바탕으로 앤이 쓴 기린에 대한 논문은 당시 전 세계의 학술지에 실릴 만큼 파급력이 엄청났다. 기린의 행동을 직접 보고 연구한 이 논문을 통해 그녀는 동물학계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앤은 이안과 결혼해 세 아이를 낳았고 다시 기린 연구를 위해 아프리카로 가려면 안정되고 여유시간이 많은 직장이 있어야 했다. 앤은 교수에 지원했으나 번번이 정년을 보장받지 못하였다.
 
당시 캐나다는 남성 교수 중심이었고 여성의 업적과 성과, 그리고 능력을 무시하는 분위기가 만연하였다. 교수가 되지 못하면 연구를 지속할 동력이 없었던 앤은 열심히 노력했으나 결국 실패하게 된다. 이후 앤은 동물연구와 동시에 여성운동가로의 길을 택한다. 남편 이안의 지원과 자신을 이해해 주는 동료 교수들의 힘으로 열심히 살아가던 그녀는 '기린 연구의 대모'로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인정받게 된다. 하지만 이 흘러간 시간은 앤에게 슬픔으로 다가온다.
  

▲<기린과 앤> 스틸컷ⓒ Pursuing Giraffe Adventu


3부는 이제는 흰머리가 되어버린 앤이 다시 아프리카를 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앤은 반세기가 지난 후 다시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찾게 된다. 그리고 충격적인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기린의 개체 수가 약 80%나 사라지게 된 것이다. 기린은 멸종위기종이 되어버렸고 인간의 보호 없이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생명체가 되어버렸다. 아스팔트가 깔리면서 시작된 환경오염과 전쟁 난민들의 무차별적인 학살로 터전을 잃어버린 기린을 보며 앤은 과거를 회상한다.
 
과거 그녀는 정찰수가 쏴 죽인 기린을 마을 원주민들이 잡아먹던 순간을 떠올린다. 당시 앤에게 전달되었던 기린의 심장과 내장은 연구에 큰 도움이 되었지만 기다란 목을 토막 내는 모습은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앤은 인간의 습격과 도시화로 인한 사고로 죽은 기린의 사진들을 보며 아쉬움을 내비친다. 이 다큐멘터리가 지닌 슬픔은 이 점에 있다. 1부에서 기린을 향한 애정과 꿈을 품었던 소녀 앤은 2부에서 부딪힌 현실에 의해 기린과 멀어지게 된다.
 
만약 앤이 이런 현실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녀가 저명한 기린 전문 동물학자가 되었다면 '기린'의 운명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앤이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 되었다면 기린은 일찌감치 보호종으로 지정되었을 것이며 기린을 향한 무관심과 학살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앤은 사회가 지닌 차별의 문제로 있어야할 곳으로 돌아가기 못하였고 너무나 늦게 기린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앤은 다시 그녀의 첫사랑을 꽃피우고자 한다. 그녀의 초기 연구가 준 영향으로 기린에 대한 연구는 상당한 진척을 이루었고 기린 보호를 위한 전문가들이 등장하였다. 앤은 이들과 함께 기린을 보호하고 종을 유지시키기 위한 노력을 다짐한다. 이 3부의 구성은 앤의 드라마틱한 변화를 통해 아련한 감정을 준다. 기린을 향한 그녀의 사랑과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겪는 좌절, 다시 만난 기린이 처한 위기는 감정적인 곡선을 세심하게 만들어 낸다.
 
여기에 앤의 과거를 재현하는 영상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는 장면이나 편지를 읽는 내레이션을 통해 과거에 인물들이 느꼈을 감정을 풍성하게 담아내는 연출은 다큐멘터리에 극이 지닌 재미를 불어넣는다. 마지막으로 편하게 웃음을 주는 유머감각과 소녀 같은 감성을 지닌 앤의 모습은 그녀가 지닌 순수한 사랑과 열정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