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시인의 사회 여자판? 아니, 그냥 '모나리자 스마일'
죽은 시인의 사회 여자판? 아니, 그냥 '모나리자 스마일'
  • 영화부|유채린 기자
  • 승인 2019.05.25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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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글로벌스타 영화부|유채린 기자] 많은 이들이 인생 영화로 꼽는 작품 중 하나가 피터 위어 감독의 <죽은 시인의 사회>일 것이다. 남학생들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와는 다르게 여학생들을 내세운 '죽은 시인의 사회'가 있다. 바로 <모나리자 스마일>이다. 정말 '여자판 죽은 시인의 사회'일까? 라는 질문을 안고 이 영화를 한 번 바라보고자 한다.

 

저작권_Columbia TriStar Film

 

캘리포니아를 떠나 뉴잉글랜드의 명문 웰슬리에 미술사 교수로 오게 된 캐서린 왓슨은 굉장히 자유분방한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이다.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푼 그는 그의 방식대로 수업을 진행하는데, 극히 보수적인 이 학교의 학생들은 캐서린을 적대시한다. 캐서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모든 답을 턱턱 내놓으며 무안을 주는 학생들의 최고 목표는 바로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이다. 대학교는 따로 신부수업 시간까지 만들어 두고, 캐서린은 이 주장에 반기를 들며 차츰 학생들의 생각을 바꿔놓게 된다.

 

결과적으로 볼 떄 <죽은 시인의 사회> 속 키팅은 성공했지만 캐서린은 반만 성공했다. 키팅이 떠날 때 퇴학시키겠다는 교장의 말을 무시한 채 책상에 올라가 '오 캡틴, 마이 캡틴!'을 외치는 남학생들의 모습은 규율에 도전하기로 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캐서린의 결과는 조금 다르다. 모든 아이들의 생각이 변화했음은 <죽은 시인의 사회>와 같다. 하지만 누군가는 캐서린이 원했던 것처럼 경직된 1950년대 가부장제에 도전하기로 했지만, 누군가는 머리로는 알면서도 그 굴레 안으로 들어갔다. 

 

저작권_Columbia TriStar Film

 

하지만 <모나리자 스마일>의 가장 큰 이슈는 바로 2019년 현재와도 다르지 않다는 데 있다. 분명 우리 사회는 이제 여성도 일을 할 수 있고, 대학에서 신부 수업을 진행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결혼이 여성의 족쇄로 작용함에 있어서는 1950년대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일과 가정의 '양립'을 요구당하고, 육아는 지금도 여성의 몫이 더 크다. 한 기업에서는 아빠의 육아 휴직을 의무화하고 있고, 남성이 육아를 하는 비율도 이전보다 크게 늘었지만 사회가 강요하는 몫은 여전히 여성에게 편중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가 '여자판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수식어는 다소 무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명문 학교 진학이라는 목표를 위한 학교의 규율에 대한 도전이지만, 이 영화는 학교뿐만 아니라 사회 관습과 전통의 대척점에 서는 도전이기 때문이다. <모나리자 스마일>은 꿈과 같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이야기이며, 이 현실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또 남성의 것을 기본형으로 설정하는 듯한 이 태도를 재고해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갈라져 나와 만들어진 다른 버전이 아니라 그냥 <모나리자 스마일>일 뿐이다.

 

저작권_Columbia TriStar Film

 

여성 중심의 이야기이지만 여성에게 희망과 지향점을 주지 못하는 여성 영화라는 점에서 <모나리자 스마일>은 다소 실망스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우리는 그 실망감에서 멈출 것이 아니라, 이 영화처럼 반쪽자리 변화가 되지 않기 위해 나아갈 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다른 듯 같은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찰하고, 나부터 바뀌어야 할 것이다. 사회에 속한 개인이 모여 다수가 되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이것이 바로 변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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