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계에 길이 남을 명작으로 재탄생한 '서스페리아'
공포영화계에 길이 남을 명작으로 재탄생한 '서스페리아'
  • 김준모 기자
  • 승인 2019.05.26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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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스페리아> 포스터

▲<서스페리아> 포스터ⓒ 씨나몬(주)홈초이스

  

[루나글로벌스타 김준모 기자] 1977년 냉전 시대, 동서로 나눠진 독일의 베를린에서 한 소녀가 정신과 의사를 만나러 간다. 밖에서는 극좌 테러리스트 단체인 바더 마인호프와 관련된 시위가 한창이고 고령에 행동이 느릿느릿한 의사 클렘페러는 무용수 패트리샤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당황한다.

패트리샤는 마치 망상을 늘어놓듯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다. 프리메이슨 책자의 눈 문양을 보는 순간 패트리샤(클로이 모레츠)는 공포를 느끼고 귀에는 환청이 들린다. 그리고 그녀가 클렘페러의 죽은 아내 사진을 보다가 내려놓자 액자가 미세하게 깨진다. 이처럼 영화의 도입부에는 패트리샤의 공포가 그대로 담겼다. 

이런 장면들과 함께 영화의 전체적인 완성도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평생 숙원이었던 <서스페리아>의 리메이크를 '재현'이 아닌 '창조' 수준으로 선보이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부담스러울 수 있는 명작 리메이크, 기념비적 작품으로 '재탄생'

이탈리아 출신의 공포영화의 거장 다리오 아르젠토의 대표작인 <서스페리아>는 무용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기이한 이야기를 담았다. 여기에 시각적, 청각적인 공포감을 끌어올리는 연출과 함께 상상력을 자극하는 표현으로 공포영화계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영화를 만들어냈다. 이렇듯 높은 평가를 받는 고전명작의 리메이크에는 그 자체만으로 부담이 따르는 법이다. 하지만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고전 <서스페리아>의 리메이크를 성공적으로 해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전 세계 영화인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숙원이었던 <서스페리아>의 리메이크를 최근 선보였다. 드라마 장르를 주로 선보여 온 감독의 손길이 닿은 2019년 판 <서스페리아>는 공포영화에서 가히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재탄생되었다.
 
감독은 <서스페리아> 원작이 개봉했던 1977년과 현재인 2019년을 작품으로 연결한다. 이 연결은 단순히 시대적 배경을 1977년으로 설정했다는 점에 머무르지 않는다. 2019년 관객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는 폭 넓은 사회적 문제를 영화 안에 담아냈기 때문이다.

극 중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무용수 수지(다코타 존슨)가 무용학교를 찾아가고 그곳에서 기이한 일을 경험한다는 기본 설정을 제외하면 모든 외연적인 측면이 원작보다 확장되어 있다. 먼저 공간적인 배경도 그렇다. 원작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외딴 무용학교를 배경으로 했고, 이는 공포영화의 장르적 특성에 어울리는 공간이다.
  

 <서스페리아> 스틸컷

▲<서스페리아> 스틸컷ⓒ 씨나몬(주)홈초이스

 
반면 리메이크작은 분단된 독일의 서베를린을 배경으로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미국인 수지가 독일 무용 아카데미에 입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더 넓어진 공간적 배경은 사회적인 문제를 담아내는 데 유용하게 작용한다. 바더 마인호프의 테러 활동과 동서로 분단된 베를린의 모습은 장르가 지닌 공포를 가중시킴과 동시에 시대적인 공포를 추가함으로써 여성 주인공들이 지닌 심리적인 불안을 강화시킨다.

영화 속 소재들이 상징하는 것들

다음으로 영화의 페미니즘적 메시지를 살펴볼 수 있다. 영화 속 수지를 중심으로 한 무용수들이 머무는 무용 아카데미는 사실은 마녀들의 소굴이고, 교사들은 악마의 숭배자로 등장한다. 물론 이와 같은 작품의 설정에서 페미니즘의 가치를 발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영화를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감독은 영화에서 '마녀'라는 소재를 강조하며 페미니즘을 이야기한다. 작품에는 '전쟁 이전에는 독일에 용기 있는 여성들이 많았다'라는 대사가 등장한다. 독일은 과거 세계대전을 두 번 일으킨 전범국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나치 정권은 우성학을 내세워 유태인과 장애인을 무차별로 학살하였다. 학살의 바탕에는 차별이 있었고 이 차별은 공포로부터 비롯되었다. 이러한 공포와 관련해 유럽에서 벌어진 학살의 대표적인 역사가 마녀사냥이다.
 
극 중 수지를 비롯한 단원들에게 무용 아카데미는 안식과 평안을 주고 꿈을 이뤄나갈 수 있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무용교사로 둔갑한 마녀들에 의해 생명을 위협받는 곳이다. 2차 대전 이후에도 극렬한 이념 대립 때문에 온전한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상황의 불안과 공포는 그녀들을 용감해지기 어려운, 소극적이고 위태로운 여성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그녀들은 무용 아카데미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현상들을 보고도 이곳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적어도 이곳에는 나름의 평화와 안식이 있으며, 자신의 존재를 나타낼 수 있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스페리아> 스틸컷

▲<서스페리아> 스틸컷ⓒ 씨나몬(주)홈초이스

 
이런 사회적 배경은 무용수들을 마녀들의 소굴로 몰아넣고, 무용수들을 마녀들에 의해 사냥 당하게끔 만든다. 극 중 무용 아카데미는 희생의 강요를 통한 집단 유지를 지향하는데, 이를 통해 나름의 페미니즘 담론을 제기한다.

또한 작품이 지닌 이야기 구조를 살펴볼 필요도 있다. 세 개의 층위로 <서스페리아>의 이야기는 구성됐다. 그 중 첫째는 수지와 사라(미아 고스)를 비롯한 무용수들이 공연 폴크(volk)를 위해 연습하면서 동시에 사라진 전 주인공 패트리샤에 대해 의문을 품는 이야기이다.
 
둘째는 무용수들에게 무용을 가르쳐 주는 교사들이 사실은 악마에게 바칠 재물을 찾고 있는 섬뜩한 마녀라는 부분이다. 교사들은 학생들을 아끼고 감싸주는 신실한 이들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학생들을 제물로 여기며 악마의 부활을 꿈꾸는 마녀들이다.

셋째는 패트리샤의 일기를 통해 무용 아카데미에 관해 의문을 품는 클렘페러의 존재다. 클렘페러는 무용 아카데미 밖에서 사건을 응시하는 인물이다. 동시에 클렘페러는 이 작품이 지닌 시대적인 배경을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서스페리아> 스틸컷

▲<서스페리아> 스틸컷ⓒ 씨나몬(주)홈초이스

 
영화 속 클렘페러는 2차 대전을 겪었으며 당시 아내를 잃은 인물이다. 극 중 그는 동독에 있는 옛 집을 방문해 아내와의 추억에 젖곤 한다. 클렘페러는 2차 대전 당시에 나라를 이끄는 아버지 세대였으며 아내의 죽음에 대해 스스로 자책하는 캐릭터다. 클렘페러는 시대에 대한 책임감과 죄책감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은 그가 패트리샤의 일기를 바탕으로 무용 아카데미를 의심하고, 사라진 패트리샤를 찾고자 하는 원동력이 된다. 클렘페러의 존재를 통해 영화는 2차 대전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공포를 담아낸다. 

세 가지 이야기를 연결시키며 작품을 통일성 있게 만들어 주는 핵심적인 키워드는 '전이'이다. 중세 마녀사냥의 증오가 2차 대전의 증오로, 그리고 냉전시대의 증오로 사라지지 않고 연결되는 이유는 감정의 전이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감정이 있고 이 감정은 때로 타인에게 전염된다. 2차 대전 당시 독일 국민들은 히틀러의 나치에 두 가지 감정을 품었다. 그건 바로 공포와 희망이다. 공존하기 힘들어 보이는 감정은 마치 하나의 감정처럼 국민들에 흘러 들어갔다. 당시 독일 사람들은 나치의 강압적인 통치라는 공포 속에서도, 그들이 독일을 극심한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줄 것이란 희망을 품었다.
 
이런 감정은 영화 속 무용 아카데미에서도 엿볼 수 있다. 공포 속에서도 무용수들은 훌륭한 무용가가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기에 아카데미를 떠나지 못한다. 극 중 인물들의 감정 전이는 세 개의 이야기를 공포와 불안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연결시킨다. 등장인물들이 느끼는 불안이 관객에게도 전달되면서 세 개의 이야기 구조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질감을 낮춘 것이다.
  
불안-공포를 몽환적 분위기와 강렬한 색채에 담았다
 

 <서스페리아> 스틸컷

▲<서스페리아> 스틸컷ⓒ 씨나몬(주)홈초이스

 
<서스페리아>에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지점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감히 역대 최고의 공포영화라 언급할 수 있을 만큼 짜임새나 표현이 인상적이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기존 원작이 지닌 구조 속에 새로운 사상과 표현을 집약했다. 또한 1970년대 독일 영화의 촬영 기법과 '라디오헤드'의 보컬 톰 요크의 음악도 영화를 통해 감상할 수 있는데, 이런 요소들은 작품이 지닌 분위기와 긴장감을 도입부부터 결말까지 유지하게 만든다.
 
여기에 배우들이 오랜 시간 연습했다는 댄스 장면은 여성이 겪는 사회적 억압을 육체적인 생동감으로 보여준다. 춤 동작이 주는 역동성, 붉은 색의 굵은 밧줄로 몸을 감싼 무용수들의 기괴한 모습을 통해 억압을 강렬하게 표현했다.

장르적 재미인 공포와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영화는 꿈과 환상이 섞인 장면들을 통해 관객의 상상력을 끌어낸다. 원작에 비해 넓어진 공간적 배경만큼 사회적인 담론을 더하며 이미지와 음악, 배우들이 지닌 신체적인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엮어내며 완성도를 높였다.
 
<서스페리아>는 <엑소시스트>, <악마의 씨> 이후 오랜만에 충격을 느끼게 하는 공포영화다. 장면적인 충격이나 심리적인 배신감을 통해 전하는 충격을 말하는 게 아니다. 리메이크된 <서스페리아>는 인간의 깊은 내면에 위치한 불안과 공포를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몽환적인 분위기와 강렬한 색채에 담아내며 영화는 관객에 잊을 수 없는 체험을 선사한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40여년 만에 이뤄낸 꿈의 실현이 영화계에 길이 남을 작품을 탄생시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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