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은 페미니즘의 적인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명품'은 페미니즘의 적인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 영화부|김민주 기자
  • 승인 2019.05.16 2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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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글로벌스타 영화부|김민주 기자]

 

*본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_네이버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포스터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다.

“왜 명품은 페미니즘의 적인가.”

이러한 질문처럼, 영화는 시종일관 ‘명품’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명품 자체가 여성을 억압하는 주된 원인인 것처럼 묘사한다. 그렇다면 여성을 억압하는 것은 정말 ‘명품’일까. 

명품을 사랑하고 명품을 입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며, 자유 의지이다. 누군가 자신의 몸매를 드러내고 비싼 옷을 입고 싶어서 입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욕구 표출이기 때문에 그것을 억압이라는 말로 포장하는 것은 어폐가 존재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명품 자체가 아니라 그 명품에 투영되는 사람들의 인식이다. 66사이즈를 입으면 명품을 입을 자격이 없고, 명품을 걸치지 않으면 세련되지 못한 뒤떨어진 사람으로 보는 시선. 명품을 입는 대상을 한정적으로 제한하고 명품을 통해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인식이 여성을 억압하는 ‘코르셋’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의 몇몇 장면들이 긍정적으로 다가오지 못했다.

우선 미란다를 ‘악마’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모순적이다. 영화 속에서 미란다는 무서울 정도로 냉철하고 카리스마 넘치며 일중독이라고 보일 정도로 그녀의 일을 사랑하고 또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녀를 나타내는 또 다른 단어는 지극히 부정적인 어감을 가진 ‘악마’이다. 성공에 대한 야망을 가진 여성을 ‘악마’로 표현하고, 그런 악마가 입는 옷을 명품인 ‘프라다’라고 묘사함으로써 명품 자체에도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워버린다. 즉, 야망을 갖고 화려한 성공을 추구하는 여성에게 ‘악마’라는 일차적인 프레임을 씌운 후 거기에 명품을 추가한 이차적인 프레임을 덧씌움으로써 명품을 입는 여성 자체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명품을 입고 패션에 점차 빠져 들어가는 앤디를 비난하는 친구들의 태도에서도 알 수 있다. 명품을 입기 전 앤디와 명품을 입은 후의 앤디는 사실 달라진 게 없다. 조금 더 바빠졌고, 패선과 명품에 관심이 많아졌다는 것 뿐, ‘앤디’라는 사람 자체가 변했다는 느낌은 받기 힘들었다. 그녀는 여전히 남자친구인 ‘네이트’를 사랑했고, 종종 얄밉기도 한 상사인 ‘에밀리’와 잘 지내려고 노력했으며, 언제나 그녀의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앤디의 친구들은 그저 명품을 입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녀를 비난하였으며 초심으로 돌아오라고 설득한다. 자신은 변하지 않았다는 앤디의 대사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과연 친구들이 바라는 앤디의 ‘초심’은 무엇이었을까. 친구들의 태도는 자신보다 뛰어나고 탄탄한 커리어를 쌓아가는 앤디에 대한 열등감과 질투로 비춰지기 때문에, 상당히 불편하다고 느껴졌다. 

파리에서 미란다가 언급한 ‘Everyone wants to be us’가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것 역시 긍정적으로 보기에는 힘들었다. 만약 44사이즈의 명품을 걸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채 살아갈 것을 강요당한다면 그것은 억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점은, 누군가는 미란다처럼 화려한 커리어와 성공,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삶을 진심으로 원한다는 것이다. 미란다의 삶은 그녀가 선택한 결과이다. 왜 그것이 허영심과 허무로 점철된 것처럼 묘사되는지 의문이 든다. 앤디의 ‘만약 미란다가 남자였다면 모두가 그녀를 존경했겠죠.’ 라는 대사가 떠오르게 된다. 영화는 자꾸만 화려함이나 명품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부정적인 모습으로 일반화한다. 하지만 진심으로 패션과 명품, 화려한 성공을 열망하고 사랑하는 여성에게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우는 것만큼 억압적인 것이 또 있을까?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명품을 입는 여자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비판하는 듯 했지만 결국 화려함을 버린 채 처음으로 돌아가는 앤디를 보여주면서 결국 ‘명품’과 명품을 사랑하는 여성 자체를 비난하는 것에 그쳐버렸다. 영화 초반에 제기된 ‘왜 명품은 페미니즘의 적인가?’라는 문제는 참 좋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제시하는 답은 자꾸만 곱씹을수록 의문과 불편함을 남기는 것 같아 아쉬움이 든다. 명품에 초점을 두는 게 아니라 ‘왜’라는 이유에 초점을 더 두었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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