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정의,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관계의 정의,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 문화부|최이선 기자
  • 승인 2019.05.15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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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여왕의 여자 공식 포스터
영화 여왕의 여자 공식 포스터

 

요르고스 란티모스

<더 랍스터>, <킬링 디어>에 이어서 내게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세 번째 영화였다. 란티모스 감독은 음향에 굉장히 많은 의미와 비중을 두기 때문에, 거의 모든 장면에 어마 어마한 사운드를 넣는다. 그 바람에 관람객은 2시간 내내 기가 빨리는 느낌을 받음과 동시에 영화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 음악적 연출이 그렇다고 해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내용의 각본을 쓰는 것도 아니라 러닝 타임이 끝나면 거의 몽롱해진다. 또한 특유의 웅장한 사운드와 물빠진 색감의 조화가 고작 서너 편만에 눈썰미 없는 관객일지라도 감독이 누구인지 바로 알게 되는 개성을 만든다. 꼭 영화관에서 봐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영화 여왕의 여자 스틸컷
영화 여왕의 여자 스틸컷

 

여왕의 여자?

산전수전 다 겪었을 앤이 사라를 내보내기 위한 아비게일의 수작을 몰랐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여왕으로서의 권위를 되찾고 싶은 욕구와 사라를 사랑함과 동시에 사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결말을 만들지 않았을까 한다. 때문에 포스터에서도 알 수 있듯, 아비게일은 사라의 대신이 될 수 없다. 아비게일 또한 이를 알고 있지만, 자신이 사라의 대신 이길 원하지도 않아 보인다. 그녀가 바랬던 건 여왕의 총애를 통한 권력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사라가 떠나고 남은 아비게일과 앤의 관계에선 사라가 있을 때의 편안함과 애정, 감정의 분출을 찾을 수 없다.

 

Relationship

사실 사라와 앤의 관계는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그래서 내가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사랑보다 조금 더 깊은 애증 아닐까 생각한다. 우정에 사랑, 정욕, 모성애가 뒤섞인 점액질 같은 감정. 그들은 서로를 모질게 내치면서도 상대의 감정과 욕구, 방향을 알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한다.

 

공유하는 시간이 길고 감정이 뒤섞여 갈수록 그 색깔은 혼탁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 습하고 음울한 정렬은 때때로 많은 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때로는 이 끈적한 감정으로부터 성적 흥분, 또는 위안을 얻는 사람들은 타인과 감정을 쌓고, 섞고 또 이를 표현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닐까.

 

[루나글로벌스타 문화부|최이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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