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가 아닌 한 사람으로 고흐를 바라보다, '러빙 빈센트'
예술가가 아닌 한 사람으로 고흐를 바라보다, '러빙 빈센트'
  • 영화부|김민주 기자
  • 승인 2019.05.11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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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글로벌스타 영화부|김민주]

 

*본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_네이버 영화 '러빙 빈센트' 포스터

 

네덜란드 출신 화가가 파리에서 권총 자살을 했다.
화가의 이름은 ‘빈센트 반 고흐’.
롤랭은 테오에게 미처 보내지 못한 빈센트의 편지를 대신 전해주라는 아버지의 부탁으로 파리로 향한다.
그러나 테오 역시도 빈센트가 생을 마감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난 상태.
결국 롤랭은 편지를 테오의 부인에게 전달하기로 결심한 후, 그녀를 찾기 위해 수소문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들은 빈센트의 죽음에 대한 엇갈리는 이야기들에 롤랭은 점차 빈센트의 죽음이 정말 자살인지 의심을 품게 된다.
빈센트의 죽음은 자살일까, 타살일까.

 

<영상으로 재해석된 고흐>
이 영화는 고흐의 팬이라면 꼭 봐야 할 작품이 아닐까. 100여 명의 화가들이 수작업을 통해 그려낸 유화의 영상화는 아름다움을 넘어 경이로움까지 느껴지게 한다. 영화에는 수많은 고흐의 작품들이 영상으로 살아 숨 쉰다. 영화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이 등장하며 시작한다. 작품을 볼 때마다 마치 움직이는 것 같다고 느꼈던 유려하게 표현된 선들이 실제로 움직이며 밤하늘을 만들어내는 모습은 마치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준다. 고흐 특유의 색감과 따듯하면서도 부드러운 표현을 그대로 살린 영화의 모든 장면들은 관객을 그가 살았던 1880년대 파리 속으로 끌어당긴다. 수많은 예술인들이 살았으며 예술과 창조에 대한 끝없는 번뇌와 예술가가 짊어지고 살아가는 숙명과도 같은 은은한 우울이 감도는 파리의 밤거리에서 우리는 롤랭과 함께 빈센트의 삶을 추적하고 바라본다.

특히 고흐의 작품 속에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들이나 작품이 그려진 배경이 작품과 함께 나타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우리는 고흐의 작품은 알지만 그가 그 작품을 그려낸 이유나 당시의 심정, 상황은 크게 관심을 쏟지 않는다. 즉 우리는 작품을 그저 바라볼 뿐 이해하려 하지는 않는 것이다. 예술은 그 배경을 알고 볼 때와 모른 채 볼 때의 느낌이 매우 다르다. 창조의 배경을 알고 볼 때 우리는 표면적으로 보이는 예술의 이면에 숨겨진 창작자의 의도와 심정을 발견할 수 있으며 비로소 작품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에 롤랭의 아버지가 말했던 ’바라볼 수는 있지만 이해할 수는 없었던 빈센트‘ 라는 대사는 고흐의 작품을 감상하긴 하지만 이해하려 하지는 않는 우리에게 하는 말이 아닐까. 영화 ’러빙 빈센트‘를 보고 난 후 다시 바라보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서 아름답다고만 느꼈던 유려한 선에서 그의 아픔과 혼란을 느낄 수 있었다.

 

<빈센트의 죽음, 자살인가 타살인가>
영화 ‘러빙 빈센트’는 빈센트의 죽음의 원인을 밝힌다는 큰 스토리 프레임을 갖고 전개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빈센트의 죽음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타살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의 근거도, 자살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의 근거도 모두 신빙성이 있으며 납득할 수 있는 가설들이다. 빈센트의 죽음은 과연 자살이었을까, 타살이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삶은 강한 사람도 무너뜨리곤 해’ 라는 대사에서 유추할 수 있다. 빈센트의 죽음은 타살이었다. 끝없는 외로움과 그에게만은 너무나도 냉정하고 잔인했던 세상이 빈센트에게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고 생각한다.

삶은 단 한 번도 빈센트에게 따듯함을 허락하지 않았다. 차갑고 냉담한 부모와 무수히 많은 실패, 유일하게 믿고 의지했던 테오의 매독, 고갱과의 다툼은 빈센트를 혼란스럽게 했고 우울하게 했다. 원래 빈센트는 차가운 세상 속에서도 따듯함과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꽃 한 송이, 들판의 갈대 하나에서도 그 안에 스며들어 있는 생명력을 찾아냈고, 그것을 사랑했다. 그렇기에, 한계까지 몰아붙여지고 우울에 잠식되어 버린 빈센트가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방아쇠를 당긴 것은 빈센트일 수 있다. 하지만 그에게 총구를 겨누고 장전을 한 것은 빈센트에게만 유독 차가웠던 세상이 아니었을까.

영화 속에서 누군가는 빈센트가 밤하늘을 그리고 빛나는 별을 그려내지만 그 사이에 있는 어두운 외로움 속에 빠져 허우적대는 ‘미친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빈센트는 그 어두운 외로움 속에서도 따듯함을 보았기 때문에 빛나는 별을 그려낼 수 있었다. 비록 고흐의 결말은 비극적이었지만, 사람들을 어루만지는 예술을 꿈꿨던 고흐의 그림은 현재까지도 남아 우리의 마음을 따스하게 해 주고 있다.

 


영화 ‘러빙 빈센트’는 화가 ‘고흐’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써 ‘빈센트’를 바라볼 수 있었다. 
우울과 어두움으로 점철되었던 그의 삶과는 달리 따스하고 포근한 빈센트의 그림이 더욱 아름답게 다가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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