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들의 23번째 생일입니다
오늘은 그들의 23번째 생일입니다
  • 영화부|송승원 평론가
  • 승인 2019.04.16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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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5주기.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생일 축하합니다.

[루나글로벌스타 송승원 평론가]

 

*해당 추모글(혹은 칼럼)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고등학생 2학년 416, 나와 같은 나이의 학생들이 선박 침몰 사고로 숨졌다는 뉴스를 봤다.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기에 어안이 벙벙해 한참 후에야 감정이 들었다. 마음이 ''하고 막혀왔다. 전국 각지에서 자원봉사자들이 팽목항을 찾았지만 나는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두 달 즈음이 지나서야 용기를 내 팽목항을 찾아가기로 결심한 나는 애도의 한 방식으로 해남에서 팽목항까지 50km에 이르는 길을 걸어갔다. 부슬부슬 비가 와 으슬으슬 추웠고 나는 희생자들을 생각했다. 알량한 추위가 미안하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어스름한 저녁 팽목항에 도착했고 자원봉사 접수 부스를 찾아갔지만 완곡하게 거절당했다. 유가족분들께서 자식 또래의 아이들을 보면 유난히 힘들어하신다는 이유였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배려가 용기를 따라오지 못했다. 돌아갈 차편이 없던 와중에 천주교 부스에 계시던 수녀님의 배려로 천주교 부스에서 하루를 묵을 수 있게 됐다. 그곳에서 많은 자원봉사자분들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그중에서도 시신을 수습하시는 잠수부 자원봉사자분과의 대화는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시신을 수습해서 보면 하나같이 손끝의 살점이 다 떨어져 있었다며 '그 어린것들이'하고 얘기를 잇지 못하셨다.

 (팽목항 끝자락에 위치한)기억의 등대에 이르는 길에 이르는 난관에는 추모의 글이 적힌 수많은 노란 리본이 묶여있다. 그 글귀 하나하나를 보고 나니 그제야 이 참사가 실감이 났다. 등대에 도착하고 나서는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울었다. 당시의 감정은 한참이 지나도 글로 풀어내기가 어렵다. 어쩌면 영원히 풀어낼 수 없을 것이다. 일말의 죄책감, 일말의 부끄러움 그리고 이 모두를 뒤덮는 깊은 슬픔. 그로부터 5년이 지났고 영화 <생일>을 보게 됐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나는 몰랐다. 그들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올해 22번째 생일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오늘은 그들의 23번째 생일이다.

 

이 이야기는 철저히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이 이야기는 철저히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프롤로그가 유난히 길었다. 이번 칼럼은 영화 <생일>의 평론을 위시한 세월호 희생자 추모글로 기억됐으면 한다. 이례적으로 칼럼에 애도를 함께 싣고자 하는 이유는 <생일>이 참사 이후 남겨진 이들을 다루는 태도에서 정중함과 예의가 느껴지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이종언 감독은 남겨진 이들에게 '남겨진 이들이라면 이래야만 한다'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남겨진 이들이 기댈 곳을 필요로 때 언제든 어깨를 내어줄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이 많으니 가끔은 손을 기대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조심스러운 어투로 권유할 뿐이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냈을 때, 애도를 표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순남이 퇴근길에 세월호 부스 스피커에서 미수습된 시신 수습 촉구를 주장하는 소리가 들리자 라디오를 틀어 소리를 상쇄시키는 씬은 그렇게 이해해야 한다. 아종언 감독은 어떠한 감정의 과잉도 사용하지 않고 담담하게 이를 풀어나간다. 그것은 긍정할 수 없지만 또 부정할 수도 없는 오롯이 (수호를 떠나보낸)순남의 애도이기 때문이다. 이종언 감독의 정중함은 이와 같은 순남의 태도에 대해 이유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부분에서 다시 한 번 발견할 수 있다.

 수호 초등학생 무렵 한국을 떠나 수호가 죽고 몇 년 후에야 한국으로 돌아온 순남의 남편 정일은 제대로 수호를 챙겨주지 못했던 죄책감에 세월호 유가족 단체의 권유대로 수호의 생일을 치러주고 싶어 한다. 그러나 순남은 정일에게 "그냥 싫어. 이유 없이 싫은 것도 있잖아"라며 싸한 표정으로 성을 낸다. 순남에게 정말 이유가 없는 것인지 이유가 있는데 말을 하지 않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건 영화가 순남이 이와 같은 대사를 내뱉자 그 이상으로 이유를 파헤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생일>은 철저하게 남겨진 이들을 위한 영화다. 참사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는 철저하게 배제된다. 수호에 대한 회상 씬마저도 간헐적으로만 이뤄진다. 영화가 남겨진 이들의 모습을 세밀하게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수호의 성장 과정에 대한 물음에 답할 내용이 없어 우물쭈물하다가 눈시울을 붉히는 정일의 모습이나 '오빠는 먹지도 못하는데 반찬 투정을 하냐'며 초등학생인 딸 예솔을 내쫓고 미안함에 오열하는 순남의 모습과 같은 서사적 디테일은 영화가 갖는 시공간적 여유에서 그 자양분을 얻는다.

 

떠나간 사람들의 삶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삶 [사진 출처: 다음 영화]
떠나간 사람들의 삶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삶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짐짓 불편할 수 있음에도 영화는 한 걸음 더 들어간다. 그리고 여전히 사려 깊은 태도를 취한다. 세월호 참사 보상금과 관련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무례한 시선과 태도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그럼으로써 이종언 감독은 대사 혹은 프레임 처리를 통해 보상금에 대해 무례한 대사를 하는 이들이 유가족들에게 말로써 얼마나 큰 죄를 짓고 있는지 보여준다. 한편 유가족이 자발적으로 보상금을 선택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그 선택은 제삼자가 감히 뭐라고 할 수 없는 부분이며 유가족이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한다.

 이와 관련해 극 중에서 한 유가족이 보상금을 받기로 결정하고 유가족 협회와 연락을 끊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종언 감독의 메시지는 소식을 전해 들은 유가족들이 '받을 수도 있지. 그렇다고 왜 우리랑 연락을 끊어?'라며 섭섭하게 말하는 씬을 통해 뒷받침된다. '기억 교실' 존립에 대해 유가족들이 대화하는 씬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다. 보존돼야 할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유가족이 있는가 하면, 또래의 아이들은 대학도 가고 직장도 갈 텐데 자기 아이는 여전히 교실에 머무르는 것만 같아 기억 교실을 보는 게 어렵다고 말하는 유가족이 있다.

 이처럼 영화는 설경구가 GV에서 말했듯 남겨진 이들을 아우르고 또, 품어준다. 이는 그날의 사건이 너무도 가슴 아픈 기억이라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해외에 가본 적이 없는 수호를 위해 정일이 수호의 여권에 출국 도장을 찍어주고자 출입국관리소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는 씬은 상투적인 듯 보이지만 진정성 있게 이를 표현해낸다. 죽은 사람 소원도 못 들어주냐는 정일에게 직원은 죽은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 이에 정일은 사람이 낼 수 있는 가장 슬픈 목소리로 '제 앱니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주변은 침묵에 휩싸이고 이목은 정일에게 집중된다.

 아이를 여읜 부모를 부르는 단어가 없는 이유는 신이 너무 슬퍼서 차마 이름 붙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민담처럼 자식을 잃는 것은 이례적이며 또, 통한스러운 일이다. 정일을 바라보던 공항 사람들의 시선은 이를 여실히 표현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슬픈 단어들을 끌어다 써도 표현될 수 없는 그들은 세월호 유가족이다. 그리고 유가족분들은 순남이 그랬듯, 정일이 그랬듯 'OO부모'로 불린다. 어쩌면 유가족분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슬픈 단어는 다름 아닌 자식의 이름일 것이다.

 

필자의 서투른 필사
필자의 서투른 필사

 여전히 수호의 생일 파티에 참여하지 않으려는 순남에게 "그 날 수호도 올 텐데. 수호도 오지 않을까"라고 말하는 정일의 목소리는 그래서 더욱 설웁게 느껴진다. 참사 당시, 아이를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을 완곡하게 우회해 표현한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은 감히 근처에 가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미어지는 것만 같다. 실현 불가능한 희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믿을 수밖에 없는 그 심정은 설경구라는 탁월한 배우의 연기로 입체화된다. 정일의 부탁에 순남이 생일 파티에 참여하면서 비로소 수호의 생일 파티 씬은 시작된다.

 해당 씬은 30분 동안의 롱테이크(하나의 카메라로 계속 촬영하는 기법)로 깊고 세밀하게 다뤄지는데 슬플 수밖에 없음을 감안했을지라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슬프게 다가온다. 특히, 수호를 사랑하는 지인들이 쓴 편지와 시의 낭독을 듣다가 순남과 정일이 오열하는 모습은 가슴을 아리다 못해 따갑게 만든다. 극 중에서의 오열과 객석에서의 오열은 그렇게 하나가 된다. 이 이야기가 아직 끝난 이야기가 아닌 까닭이다. 떠나간 이들의 삶도, 남겨진 이들의 삶도 우리 곁에 여전히 머무르는 까닭이다.

 영화적 기법을 떠나 참사 이후의 삶을 가감 없이 일상의 모습으로 담담하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생일>'참 착한' 영화일 수밖에 없다. 희생자들에게도 생일이 있었고 유가족분들은 매년마다 찾아오는 그들의 생일을 챙기고 있어 왔음을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그날을 기억하는 우리는 느끼고 생각하게 되는 바가 크다. 지난달 유가족분들의 결정으로 광화문에 있는 세월호 분향소와 천막이 철거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유가족분들에게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보냈지만 보내지 않겠다고. 기억하겠다고.

 센서등이 저 혼자 켜질 일이 없음에도 이따금씩 반짝하고 켜지길 바라는 마음. 떠나간 이를 생각하는 마음은 항상 그와 같을 것이다. 떠나간 이들의 이야기를 덜어놓은 채 시작된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는 역설적으로 떠나간 이들의 이야기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저마다의 몫으로 센서등보다 밝게 빛나는 삶을 살아왔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여전히 빛날 이들에게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늦었지만 부족하지만 이렇게나마 추모글을 바친다. 잊지 않겠다고 그리고 생일 축하한다고.

 

오늘은 그들의 23번째 생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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