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글 배운 할머니 시인 시 모음집 '시집살이 詩집살이'
뒤늦게 글 배운 할머니 시인 시 모음집 '시집살이 詩집살이'
  • 김준모 기자
  • 승인 2019.04.08 12: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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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살이 詩집살이' 표지 ⓒ 북극곰
'시집살이 詩집살이' 표지 ⓒ 북극곰

 

 

[루나글로벌스타 김준모 기자] 올해 초 한 편의 다양성영화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글을 모르는 평균 80대의 까막눈 할머니 아홉 분이 시인으로 활동하게 된 이야기를 다룬 <시인 할매>는 할머니들의 삶이 담긴 시를 통해 따스한 감동을 선사하였다.

아홉 할머니의 시를 담은 시집 <시집살이 詩집살이>는 영화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할머니들의 따뜻한 시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 담긴 시는 세 가지 측면을 생각하면 더 깊고 섬세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시를 읽어낼 수 있다.

 
첫 번째는 할머니들이 살아온 세월이다. 할머니들의 시 중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소재가 시집과 시집살이이다. 연애결혼이 아닌 중매결혼이 주 결혼방식이었던 당시에 할머니들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남자에게 시집을 와야 했고 당시에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모진 시집살이를 감당해야 했다.

여기에는 가난과 그 가난 속에서도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분투해야 했던 세월이 담겨 있다. 할머니들의 시는 상상이 아닌 경험을 바탕으로 창작되었다. 그래서 기존 시에서는 볼 수 없는 표현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 특히 남편과 가난에 대한 이야기는 깊게 와 닿는 지점이 있다.
 
두 번째는 언어이다. 할머니들은 뒤늦게 한글을 배우게 되었다. 할머니들이 살던 당시에는 여자가 글을 배우는 걸 쓸모없는 일, 집안 축내는 일, 남편에게 건방지게 대드는 일이라 생각하였다.

실제 할머니들 중에는 야학을 통해 글을 배우려고 하였지만 남편 때문에 배우지 못했던 분도 계셨다고 한다. 뒤늦게 한글을 배웠지만 밭일을 하거나 아들딸 집에 가 쉬고 돌아오면 대부분을 까먹고 오셨기에 완벽하게 한글을 구사하기는 힘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할머니들의 시는 본인이 구사하는 언어와 같다. 최근 시의 경향은 사상적인 집약과 표현적인 기교가 중점이 된다. 할머니들의 시에는 기교가 없다. 향토적인 느낌을 떠올리게 만드는 시어의 효과보다는 본인이 쓰는 언어로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한다.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아 도식화되지 않은 할머니들의 표현은 살아온 삶의 깊이가 언어에 녹아 있다. 
  
세 번째는 진심이다. 시는 삶에서 얻은 깨달음이나 감정을 함축적인 언어로 담아낸다. 시는 공감과 소통을 아름다운 언어로 포장하는 언어 예술이다. 이 미적 가치는 진심이란 감정이 더해질 때 더 빛을 낸다. 윤금순 할머니의 '눈'이라는 시는 이런 진심의 가치가 잘 반영된 시라 할 수 있다. 
 

사박사박 
장독에도 
지붕에도 
대나무에도 
걸어가는 내 머리 위에도 
잘 살았다 
잘 견뎠다 
사박사박.

  
이 시에서 시인은 '눈'을 위로의 의미로 그려낸다. 지붕 위에도, 장독 위에도, 그리고 머리 위에도 쌓인 눈을 힘겨운 세월을 이겨낸 위로의 의미로 받아들인다. 연말 한 겨울에 내리는 눈을 이번 한 해도 잘 견뎌냈다는 따뜻한 인사를 건네는 존재로 담아낸다. 이런 시인의 시각은 진심에서 비롯된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자신에게 전하는 진심이 담긴 위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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