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에 담긴 두 노인의 가슴 아픈 과거 '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
언어에 담긴 두 노인의 가슴 아픈 과거 '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
  • 김준모 기자
  • 승인 2019.03.07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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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 포스터ⓒ 아이 엠

 

[루나글로벌스타 김준모 기자]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올해 초 한국영화의 흥행을 이끈 영화 <말모이>는 언어라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귀중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은 조선인들을 효율적으로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내선일체' 사상(일본과 조선은 한 몸이라는 뜻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인의 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시행한 정책)을 강요하며 우리말 사용을 금지했다. 언어에는 그 민족의 혼과 정신이 담겨 있다. 까막눈이었던 판수(유해진)가 글을 배운 후 책을 읽고 감동을 느끼며 노래의 뜻을 알고 아름다움을 되새기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준다. 동시에 언어가 한 개인의 마음과 정신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보여줬다.
 
영화 <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는 고대 토착 언어 '시크릴어'를 연구하러 시골 마을 산이시드로를 찾아온 젊은 언어학자 마르틴(페르난 알바레스 레베일)을 통해 이사우로(호세 마누엘 폰셀리스)와 에바리스토(엘리지오 메렌데)라는 두 노인의 숨겨진 과거를 조명한다. 영화는 도입부에서 영어를 가르쳐 주는 라디오 방송을 들려준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멕시코의 시골 마을에서 사람들은 취업을 위해 영어를 배운다. 영어는 세계 모든 국가에서 통용되는 만국 공용어다. 그 언어를 배우기 위해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는 이 마을에서 마르틴은 고대 시크릴어를 녹음하고자 찾아온다.
  

▲<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 스틸컷ⓒ 아이 엠


시크릴어는 자연의 언어이다. 시크릴어는 '하늘을 나는 새'로 상징되는 여자가 지상의 남자와 대화하기 위해 만든, 인간과 자연의 소통 언어라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었다. 시크릴어의 계승자로는 단 세 사람이 남아 있다. 그 중 한 명인 하신타가 생을 마감하면서 연구는 난관에 봉착한다. 에바리스토가 격렬하게 이사우로와의 협업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대화를 녹음해야 되는 건 물론 몸이 아픈 이사우로가 오랜 시간 연구를 도와주기 못하기 때문에 마르틴은 에바리스토의 도움이 필요하다. 두 사람은 젊은 시절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지만 50년 동안 절교한 상태다. 그 이유는 에바리스토의 이사우로를 향한 증오 때문이었다.
 
에바리스토가 시크릴어 연구를 꺼려하는 이유는 이사우로와의 만남 때문만은 아니다. 두 사람이 시크릴어로 대화를 나누면 사라지길 바랐던 과거의 기억이 다시 되살아날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멕시코는 천주교 국가이지만 천주교가 들어오기 전까지 그들은 민간 신앙을 믿었다. 민간 신앙은 자연을 숭배하는 '토테미즘'과 연결돼 있고, 시크릴어는 자연과 소통한다는 점에서 이 민간 신앙과 맥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민간 신앙은 천주교의 전파와 함께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천주교는 유일신 사상이며 교리를 중시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교리는 사슬처럼 사람들을 옭아맸다. 에바리스토와 이사우로의 과거 역시 이와 연관돼 있는 일이었다.
 

▲<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 스틸컷ⓒ 아이 엠


<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에서는 세 가지가 소멸의 위기에 처해 있다. 첫 번째는 시크릴어라는 언어이고 두 번째는 에바리스토와 이사우로라는 노인들이며 세 번째는 두 사람의 추억이다. 추억의 소멸은 천주교의 교리와 관련되어 있다.

만약 천주교의 교리가 아니었다면 에바리스토가 이사우로를 증오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며, 두 사람의 뜨거웠던 추억을 고통과 아픔으로 인식해 지워버리려 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두 사람의 존재의 소멸은 시간과 관련되어 있다. 시간은 모든 걸 지워버린다. 그리고 기록은 이 소멸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 스틸컷ⓒ 아이 엠

 
마르틴이 시크릴어를 기록하는 행위는 에바리스토와 이사우로에게 고통스러운 추억을 되살리게 만드는 단초가 된다. 동시에 두 사람의 소멸보다 언어에 더 큰 초점을 맞추면서 인간 그 자체의 존엄성과 존재감이 격하되는 현실을 조명한다. 언어의 소멸은 혼과 정신의 소멸을 의미한다. 멕시코는 스페인에게 식민지배를 당하며 민간 신앙과 원주민어를 잃어버렸다. 영화 첫 도입부에서 마을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는 모습 역시 그 일환이었다. '자본주의'가 유입됐고 시골을 떠나야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은 시골 마을 고유의 문화와 풍속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는 두 노인이 간직한 끔찍하고 슬픈 과거를 통해 한때 자연과도 소통할 수 있었던 인간이 이제는 인간과도 소통하기 힘든 모습을 조명한다. 언어에는 그 민족의 혼과 정신이 담긴다고 한다. 시크릴어는 자연까지 하나의 민족으로 담아낸 높은 단계의 사랑과 화합을 의미한다. 이런 시크릴어의 소멸 위기는 사랑과 화합을 잃어버리고 혼과 정신마저 탁해진 현재의 세태를 보여준다. 제33회 선댄스영화제 관객상에 빛나는 이 영화는 언어에 담긴 의미를 통해 문화와 정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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