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통해 삶을 바라보다 '국경의 왕'
여행을 통해 삶을 바라보다 '국경의 왕'
  • 김준모 기자
  • 승인 2019.02.23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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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행' 김새벽, 조현철 주연 / 2월 28일 개봉

▲<국경의 왕> 포스터ⓒ 무브먼트 , 인디스페이스

 

 [루나글로벌스타 김준모 기자]


"모든 모험은 조금 낯설게 시작되고, 낯선 경험은 모두 갑자기 출발한다."

<춘천, 춘천>에 이어, 무브먼트와 인디스페이스의 두 번째 단독 개봉 프로젝트인 <국경의 왕>은 '여행'과 관련된 이 문구가 잘 녹아든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여행은 국경이란 경계선을 넘어간다. 그 경계선 너머에는 낯설고 새로운 것이 있을 수도 있고 익숙하고 그리운 것이 존재할 수도 있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크게 3개의 파트로 나뉘어 진행된다. 세 파트에 등장하는 인물은 대부분 동일하지만, 전혀 다른 인물인 것처럼 행동한다.
 
첫 파트에서는 영화를 공부했던 유진(김새벽)이 오래된 친구를 만나기 위해 폴란드를 향한다. 두 번째 파트에서는 영화를 공부했던 동철(조현철)이 오래된 친구를 만나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향한다. 그리고 세 번째 파트에서 유진과 동철은 폴란드에서 함께 한다. 이 세 파트는 각각 낯섦, 모험, 쓸쓸함과 그리움의 순서로 중심 감정을 보여준다.
 

▲<국경의 왕> 스틸컷ⓒ 무브먼트 , 인디스페이스


1부에서 폴란드에 온 유진은 기차역에서 세르게이(박진수)라는 한국인 남성을 만난다. 그녀는 일부러 일본인인 척 하며 그를 무시한다. 그가 짐을 집으로 가져다 줄 때도 소통의 시도를 외면한다. 유진이 머무는 공간은 집, 그리고 동철과 만나는 음식점이 전부다. 유진은 호기심 가득한 여행객의 시선이 아닌 이방인처럼 폴란드에 존재한다. 이런 유진의 행동과 감정은 '모든 모험은 모두 낯설게 시작되고'라는 문구와 연관되어 있다.

동철이 중심이 되는 두 번째 파트는 '낯선 경험'에 대해 보여준다. 동철은 우크라이나에서 선배(정혁기)의 집에 머무르다가, 선배가 세르게이라는 남자의 '인공눈물' 사업에 동참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선배는 인공눈물을 잘못 넣었다가 시력을 잃어 버리고 선배의 또 다른 친구는 그 인공눈물을 가지고 도망친다. 얼떨결에 세르게이에게 붙잡힌 동철은 선배를 넘기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위험에 처하게 된다.
 
빠른 리듬감과 재치 넘치는 대사, 인물들의 엉뚱한 행동과 카메라의 구도가 돋보이는 두 번째 파트는 마치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여기에 첫 번째 파트를 변주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1부에서 유진에게 치근덕거리던 사업가 세르게이는 2부에서 암흑가 보스 같은 잔혹한 인물로 등장한다. 1부에서 유진에게 존댓말을 쓰며 조용하고 나긋나긋한 성격이었던 동철 선배는 할 말 다 하는 시원한 성격으로 변한다. 또 유진은 인공눈물을 거래하는, 폴란드에 아주 익숙한 듯한 여자로 등장한다. 이런 인물들의 변화는 극적인 재미를 주는 동시에 여행이 지닌 변주를 의미하기도 한다.
  

▲<국경의 왕> 스틸컷ⓒ 무브먼트 , 인디스페이스


여행은 익숙함과 새로움의 결합이다. 영화는 이런 여행의 특성을 구성을 통해 담아낸다. 1부에 등장했던 익숙한 인물들이 2부에는 새롭게 등장하며 1부에서 새롭게 느껴졌던 지점들이 2부에서는 익숙하게 다가온다. 작품은 배경에 있어서도 익숙함과 새로움을 결합시킨다. 기차역이나 버스정류장, 아파트, 원룸 등은 여기가 유럽인지 한국인지 착각할 만큼 익숙함을 준다. 반면 아름다운 카페나 공원, 카톨릭 사제들의 석상은 고전적인 유럽의 느낌을 준다.
 
그리고 3부에서는 이런 익숙함과 새로움 사이 피어나는 감정인 쓸쓸함과 그리움을 집어넣는다. 1부가 낯선 느낌을, 2부가 재치 넘치고 신나는 모험을 선보였다면 3부는 쓸쓸함과 그리움을 보여준다. 유진은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혼자 TV를 본다. 알아들을 수 없는 폴란드 음성과 자막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은 쓸쓸하다. 여행은 정착이 아니다. 오늘 행복한 순간을 보낸 이들이 내일 떠나갈 수 있고 내가 이곳을 떠날 수도 있다. 그러기에 즐거움 뒤에 한 잔의 아쉬움과 그리움이 남는다.
 
이 영화는 제목 <국경의 왕>이 의미하듯 국경에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영화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는 국경을 맞대고 있다. 두 나라는 한때 서로의 국경을 침범해 전쟁을 치렀다. 그러기에 그들의 국경에는 서로 다른 문화와 풍경이 있지만 동시에 비슷한 지점도 존재한다. 이런 '국경'과 '보편성'의 의미는 삶으로까지 확대된다.

유진이 처음 폴란드에 온 날, 무덤가의 남자는 꽃을 건넨다. 이 무덤과 꽃은 3부에서 꽃집 아저씨인 고려인 남자가 귀신으로 변해 등장하는 순간 핵심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 무덤은 죽음을 의미한다. 인간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삶을 지속한다. 여행이 순간인 것처럼 삶 역시 순간이다. 귀신 남자는 이런 순간의 경계를 의미한다.
  

▲<국경의 왕> 스틸컷ⓒ 무브먼트 , 인디스페이스


하지만 그가 유진에게 주는 꽃은 순간이 '영원'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무덤에 꽃을 놓는 헌화는 다음 생애도 계속 되는 영원한 생명, 즉 영생을 의미한다. 여행은 비록 순간일지라도 그 순간이 품은 아름다움은 기억 속에 추억이란 이름으로 간직된다. 인생 역시 마찬가지다.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기나긴 여행이다. 낯설게 세상에 태어나며 갑자기 시간이 흘러간다. 우리가 인생에 아름다운 순간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듯 여행 역시 그런 뜻 깊은 순간들을 선물한다는 점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어쩌면 제목이 의미하는 '국경의 왕'이란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인생이란 여행을 떠난 우리 모두를 의미하는 게 아닌가 싶다.
 
<국경의 왕>은 익숙함과 새로움, 꽃과 무덤, 산 자와 죽은 자를 담은 여행을 통해 인생을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이국적인 풍경을 통한 눈요기나 판타지에 기댄 독특함이 아닌 탄탄한 작가주의적 상상력과 완성도 높은 구성이 돋보인다. 독특한 상상력과 재치 넘치는 유머, 여행을 통해 인생을 바라보는 깊이가 인상적인 영화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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