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부터 히틀러까지... 배우 브루노 간츠를 추억하다
천사부터 히틀러까지... 배우 브루노 간츠를 추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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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투스> 스틸컷ⓒ 이미지 팩토리

 

[루나글로벌스타 김준모 기자] 16일(현지 시각) 스위스 출신의 배우 브루노 간츠가 대장암 투병 중 별세했다. 향년 77세. 1960년 데뷔 이후 꾸준히 브라운관에 얼굴을 비친 그는 2017년 영화 <인 타임스 오브 페이딩 라이트(In Times of Fading Light)>(2017)로 독일 영화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건 물론 베를린영화제 은곰상 수상작인 <더 파티>에서도 개성 강한 연기로 주목 받았다. 올해 국내 개봉을 앞둔 <살인마 잭의 집>에서도 버지 역으로 분해 마지막까지 연기의 혼을 불태웠던 그다.

 
브루노 간츠는 스위스에서 태어났지만 주 활동 무대는 독일이었다. 그가 관객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작품은 독일의 거장 빔 밴더스 감독의 <미국인 친구>에서였다. <열차 안의 낯선 자들>, <캐롤>의 원작자로 유명한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리플리>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미국인 미술품 브로커 리플리에게 시한부 인생이라는 사실을 들은 액자공 조나단 짐머맨이 아내와 아들에게 막대한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리플리의 살인 게임에 빠져드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베를린 천사의 시> 스틸컷ⓒ Road Movies Filmproduktio


브루노 간츠는 데니스 호퍼가 맡은 리플리에 의해 우아하지만 잔혹한 살인 게임에 말려드는 조나단 짐머맨을 연기하며 처음 빔 밴더스 감독과 인연을 맺었다. 이 인연은 빔 밴더스 감독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베를린 천사의 시>를 통해 결실을 맺게 된다.

인간의 오랜 역사를 관찰하는 하늘 위의 천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 작품은 천사의 눈으로 베를린의 모습을 스케치한다. 흑백의 화면은 세상을 흑과 백으로만 볼 수 있는 천사의 시점을 의미한다. 동시에 냉전으로 인해 동서로 분열된 베를린의 현실을 조명한다.
 
브루노 간츠가 연기한 천사 다미엘은 서커스단의 공중곡예사 마리온의 삶을 바라보고 그녀가 겪는 고독과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다미엘은 마리온을 지켜주고자 인간이 되기로 결심한다. 천사의 눈으로 바라보던 흑과 백이 사라지고 화면이 색깔을 찾는 순간은 다미엘이 지상으로 떨어져 인간이 된 시점이다. 브루노 간츠는 흔히 생각하는 배우라는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그는 화려하지도, 멋있지도 않다. 하지만 그가 지니는 온화한 이미지는 관객들에게 편안함을 준다. 마치 이 작품 속 천사처럼 말이다.
  

 

▲<영원과 하루> 스틸컷ⓒ 백두대간 , 시네마서비스


그의 부드럽고 온화한 이미지는 <영원과 하루>에서 노시인 알렉산더의 캐릭터를 만난 순간 빛을 발한다. 알렉산더는 그리스 북부의 황량하고 쓸쓸한 도시 테살로니키에서 다른 노인들과 함께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주름 하나하나에 쓸쓸함을 담은 브루노 간츠의 연기는 한때 존경 받는 시인이었지만 이제는 나이든 육체를 감당하지 못하는 알렉산더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알렉산더가 19세기 시인 솔로모스의 흩어진 시어들을 찾는 여행을 시작하면서 영화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선보인다.
 
알렉산더는 언어를 찾는 여행에서 사랑을 발견한다. '가장 아름다운 언어'를 찾아 나섰던 지난 나날은 가장 소중한 존재였던 아내를 외롭게 했던 나날이기도 하다. 그는 언어를 찾는 과정에서 사랑의 순간들을 발견한다. 브루노 간츠의 온화한 미소와 지적인 면모는 이 작품이 지닌 서정성과 아름다움에 격을 더한다. 그는 편안하고 온화한 매력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어떨 때는 나약해 보이지만 그 나약함마저 부드럽게 포장할 수 있는 배우가 브루노 간츠다. 하지만 국내 관객들에게 브루노 간츠는 <베를린 천사의 시>의 천사 다미엘보다는 <다운폴>의 악마, 히틀러로 더 깊게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다운폴> 스틸컷ⓒ (주)피터팬픽쳐스


브루노 간츠는 <다운폴>을 통해 독일어를 사용하는 배우로는 최초로 히틀러를 연기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개봉 당시 큰 화제를 모았다. 이전까지 '괴물' 또는 '악마'로 묘사되었던 히틀러에게서 인간적인 나약함을 발견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제2차 대전 말기 히틀러가 지하벙커에서 보낸 순간을 조명한 이 작품에서 브루노 간츠는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광인이 아닌 비극적인 인물로써 히틀러를 그려낸다. 이전까지 그가 선보였던 연기와 거리가 먼 역할을 소화한 브루노 간츠는 히틀러의 내면을 완벽하게 그려내며 찬사를 받게 된다.
 
특히 그의 분노 연기는 국내에서도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하며 화제를 모았고 국내 관객들에게도 눈도장을 찍게 된다. 그는 최초로 '인간 히틀러'를 그려냈으며 한 인간이 어떻게 악이 되는지, 그리고 무너지는지를 촘촘한 심리묘사를 통해 표현해냈다. 그리고 이 '히틀러'라는 브루노 간츠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배역은 그를 대표하는 캐릭터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브루노 간츠의 연기는 <빵과 튤립>이라는 이탈리아 영화에서 보여준 냉소적인 아일랜드인 웨이터 페르난도이다.
  

▲<빵과 튤립> 스틸컷ⓒ Monogatari


중년의 주부 로살바가 가족여행 중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먼저 떠나버린 버스 때문에 길을 잃어버리고 충동적으로 베니스로 향하는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한 여성이 일탈을 통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가족은 로살바가 버스에 타지 않은 것을 한참 후에 알아차릴 만큼 그녀를 챙기지 않는다. 로살바는 남을 챙기는 엄마로만 살아왔지 사랑을 받는 여자로의 삶은 끝났다 여겼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고 새로운 즐거움을 얻기 위해 베니스로 향한다. 그곳에서 만난 페르난도는 매일 밤 자살을 기도할 만큼 우울한 남자다.
 
하지만 그가 로살바를 만나면서 점점 삶의 활력을 찾아가는 과정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만든다. 로살바와 페르난도는 서로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가지만 로살바는 결국 가족에게 돌아간다. 하지만 로살바를 잊을 수 없었던 페르난도는 그녀를 찾아가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 마음에 담아둔 진심을 고백한다. <쉘 위 댄스>의 리처드 기어만큼 친절하고 달콤한 매력을 선보인 브루노 간츠의 '꽃중년' 연기와 고백 장면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사랑의 황홀함이 담긴 순간이다.
 
브루노 간츠는 연기 인생의 대부분을 독일과 유럽에서 보내면서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인간 내면의 나약함부터 따뜻함까지 모두 담아내는 그의 폭 넓은 연기는 하늘 위의 순결한 천사부터 지상의 악마 히틀러까지 표현할 수 있는 깊이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브루노 간츠의 연기는 영화에 남아 후대에도 관객들에게 그를 각인시킬 수 있는 순간들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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