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마의 심리와 교양을 통한 불협화음 '살인마 잭의 집'
살인마의 심리와 교양을 통한 불협화음 '살인마 잭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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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빌', '님포매니악' 라스 폰 트리에 감독 / 2월 21일 개봉예정

▲<살인마 잭의 집> 포스터ⓒ (주)엣나인필름

 

[루나글로벌스타 김준모 기자]주의! 이 글에는 영화 <살인마 잭의 집>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4년 개봉한 <님포매니악>은 자신을 성도착증이라 생각하는 여주인공 조의 섹스 일대기를 다룬 내용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이 작품은 남성의 성에 비해 음지에 있던 여성의 성적 욕망을 풀어냈다는 점에서 예술영화로 높은 평가를 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지나치게 선정적인 장면들과 적나라한 표현 때문에 예술이 아닌 외설이라는 평도 들어야 했다.

감독 라스 폰 트리에는 소재에 있어 거침이 없다. <백치들> <도그빌> <안티크라이스트> 등 수많은 문제작을 만들어 온 그는 자신만의 표현과 예술적인 경지로 많은 매니아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살인마의 '내면'을 다루었다. <살인마 잭의 집>은 '교양 살인마' 잭의 이야기를 통해 불쾌한 오케스트라를 연주한다.
 
영화는 살인마 잭이 버지라는 지옥의 안내인에게 자신이 12년간 저지른 살인을 들려주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잭은 수많은 살인 중 5개의 에피소드를 뽑아 이야기한다. 잭이 택한 에피소드들은 그의 심리와 갈망을 보여준다. 잭은 기술자이지만 예술가를 꿈꾸는 인물이다. 돈을 벌기 위해 집을 짓는 기술을 배웠던 그는 이제 설계자가 되어 자신이 살 집을 만들고자 한다. 하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잭이 등장하는 주 공간은 그가 시체들을 모아두는 조그마한 냉동 창고이다. 그는 집을 설계하고 부지를 마련하고 시공에 들어가지만 완성하지 못한다. 영화 속 잭은 무언가 결핍된 느낌이 강한 인물이다.
  

▲<살인마 잭의 집> 스틸컷ⓒ (주)엣나인필름


잭이라는 인물은 기존 작품들이 선보인 연쇄살인마와는 다른 성향을 지닌다. 기존 작품들의 연쇄살인마가 자신도 주체할 수 없는 광기를 선보이거나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이 묻어나는 잔혹함으로 살인을 저질렀다면 잭은 스스로를 교양 살인마라고 부를 만큼 계획을 갖추고 살인을 자행한다.

헌데 그 과정이 철저하거나 합당한 이유를 지니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살인이라는 예술을 선보이려는 자신을 방해하거나 조롱하는 이들에 대한 분노를 터뜨리는 모습을 보인다. 그 대표적인 장면이 첫 번째와 두 번째 에피소드이다. 첫 에피소드의 여자는 외딴 숲길에서 차가 고장 나자 잭의 차를 멈추게 하고 도움을 요청한다. 그녀는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유머랍시고 잭이 연쇄살인범이라는 가정하에 이야기를 내뱉는다.
 
이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잭이 여자를 죽이는 순간은 그가 연쇄살인범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때이다. 연쇄살인범이 되기에는 너무 지질하다는 말에 잭은 공구로 여자의 얼굴을 내리친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도 마찬가지다. 잭은 한 여성의 집에 침입해 그녀를 죽이려 하지만 여성은 경찰을 사칭하는 그에게 배지를 보여 달라며 들여보내 주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집안에 들어온 그는 갑작스레 분노를 표출한다. 자신의 예술인 살인을 그녀가 방해했다는 사실에 화가 치민 것이다. 이런 잭의 모습은 버지와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과 차이를 드러낸다. 그는 예술적인 가치를 들먹이며 살인을 합리화한다. 기술자인 그가 예술가가 되어가는 위대한 과정을 그려내는 듯 살인 하나하나에 문화와 예술과 관련된 지식들을 접목시키며 포트폴리오 마냥 설명한다.
  

▲<살인마 잭의 집> 스틸컷ⓒ (주)엣나인필름


이에 버지는 두 가지 이유로 그의 행각을 꼬집는다. 첫 번째는 잭이 죽이는 대상이 여자와 어린아이라는 약자라는 점, 두 번째는 그가 살인을 통해 그의 꿈인 집을 짓지 못한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 잭은 새끼 오리의 다리를 자른다. 어린 시절 동물을 괴롭히는 건 연쇄살인범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잭은 어린 시절부터 약자, 그것도 아주 약한 자만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버지는 그에게 왜 여자들만을 죽인 이야기를 하느냐고 묻는다. 남자도 많이 죽여 봤다는 잭의 말에 버지는 너는 여성과 아이를 죽인 이야기만 했다는 점을 꼬집는다. 교양이란 단어에는 지식과 함께 품위의 뜻도 내포되어 있다. 그가 본인의 말대로 교양 살인마라면 위엄이나 기품을 갖춘 품위를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살인, 그것도 약자들을 향한 폭력은 이런 단어의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이런 잭의 모습은 결국 그가 꿈꾸는 집의 모습과 연관되어 있다. 잭은 기술자를 넘어 예술가를 꿈꾼다. 하지만 그가 예술가가 되는 데에는 너무나 많은 장애물이 있다. 그를 존중하지 않는 여성들과 그를 인정하지 않는 유일한 대화 상대 버지, 원하는 예술을 실현할 수 없는 자신의 한계이다.

잭은 독일 나치에 대해 이야기하며 버지에게 남성들을 죽인 이야기를 하겠다고 한다. 그는 남성들을 일렬로 묶어둔 채 총으로 한 번에 머리를 관통시키고자 한다. 하지만 총알이 잘못된 것이란 걸 알게 되자 분노를 표출한다. 결국 영화 속 잭의 집은 작은 냉동 창고에 머무른다. 그가 내뱉는 거창한 살인과 예술관이라는 머릿속 집에 비해 현실에서의 집은 보잘것없다.
  

▲<살인마 잭의 집> 스틸컷ⓒ (주)엣나인필름


<살인마 잭의 집>은 완벽한 오케스트라가 선보이는 불협화음이 인상적이다. 다섯 개의 에피소드는 끔찍한 살인 행각과 격조 높은 예술에 대한 고찰, 잭이라는 인물의 심리를 심도 높게 담아낸다. 동시에 살인과 예술, 잭의 열망 사이의 균열을 통해 불협화음이 주는 묘한 재미를 선보인다.

라스 폰 트리에는 독특한 시도와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으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선보인다. 그의 예술세계가 누군가에게는 불쾌하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이 작품 역시 칸 영화제 상영 도중 관객 일부가 퇴장했을 만큼 시각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준다. 하지만 전설적인 살인마 '잭 더 리퍼'의 심리를 현대 미국을 배경으로 풀어낸 라스 폰 트리에의 시도는 흥미를 자극하는 진취적인 실험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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