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많은 소녀'부터 '소공녀'까지, 한국 다양성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
'죄 많은 소녀'부터 '소공녀'까지, 한국 다양성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
  • 김준모 기자
  • 승인 2019.02.13 13: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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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글로벌스타 김준모 기자] 작년 그리고 올해에도 한국 상업영화 주연은 대다수가 남자 배우였다. 하정우, 김윤석, 류승룡, 주지훈 등 남자 배우들은 흥행 성적에 있어서도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었다. 반면 다양성 영화에서는 여성 배우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소공녀> <죄 많은 소녀> <영주> 등의 작품들이 관객과 비평가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섬세한 심리 묘사를 통해 폭 넓은 공감을 이끌어낸 이들 독립영화는 상업영화와는 다른 특별한 감정을 전해주었다. 이번 기사에서는 관객들을 사로잡은 독립영화 속 네 명의 여주인공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죄 많은 소녀> 영희, 관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힘
 

▲<죄 많은 소녀> 스틸컷ⓒ CGV 아트하우스


영화 <죄 많은 소녀> 속 고등학생 영희(전여빈 분)는 같은 반 경민(전소니 분)이 실종될 당시 마지막까지 같이 있었다는 이유로 가해자로 의심받는다. 딸의 죽음을 밝히려는 경민의 어머니, 사건을 빨리 끝내고 싶은 담임 선생과 형사, 여기에 여진을 지목한 친구 한솔(고원희 분)까지, 그들은 영희를 범인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영화는 경민을 죽인 '범인'보다는 '원인'에 주목한다. 경민은 왜 죽었을까, 그리고 그 죽음의 범인은 왜 영희가 되어야만 하는 걸까. 작품 속 어른들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 어머니는 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것에 대해, 경찰은 수사를 제대로 펼치지 않은 점에 대해, 담임 선생은 성적만 강요하고 학생들이 겪는 불안과 고통에 대해 정확하게 바라보지 못하고 책임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환경 속에서 죽음을 택한 경민에 대한 책임을 영희에게 돌린다. 영희는 가난한 집안에서 그녀를 제대로 돌보지 않는 아버지와 살고 있다. 아버지는 영희가 반 친구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왜 그러고 사느냐"고 오히려 딸을 탓한다. 영희는 사회 속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러기에 경민의 죽음을 둘러싼 이들은 영희를 범인으로 몰아간다.

<죄 많은 소녀>가 가지는 동력은 그 이후에 있다. 영희는 자살을 기도하다 실패하고 학교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녀는 축하해주는 친구들 앞에서 수화로 "여러분 앞에서 가장 멋진 죽음을 완성하러 왔습니다"고 말한다.
 
이후 영희는 폭주한다. 자살에 실패한 후 그녀는 살아있음의 이유를 이로 증명하고자 한다. 경민은 한 마디 말도 남기지 않고 죽었다. 그래서 원하던 자유를 얻었지만 자신을 상처 입힌 이들에 대해 그 어떤 반격도 가하지 못했다. 반면 영희는 다르다. 그녀는 반 친구들에게, 담임 선생님에게, 그리고 경민의 어머니에게 복수를 가한다.

죄라는 감당하기 힘든 무게를 짊어지는 영희의 심리는 섬세하다. 그 섬세함에 관객은 불편함을 느낀다. 그 불편함을 긴장감 있게 이끌어 가는 배우 전여빈의 힘이 인상적인 영화다.

<영주> 영주, 스무살이 짊어진 너무 무거운 짐
 

▲<영주> 스틸컷ⓒ CGV 아트하우스


"엄마랑 아빠 중 한 명만 돌아올 수 있다면 누가 돌아왔으면 좋겠어?"

<영주>의 첫 대사는 20살 영주(김향기 분)의 심리와 상황을 잘 나타내준다. 영주는 어른도 아이도 아닌 20살이다. 갓 성인이 되어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하는 그녀의 곁엔 부모님이 없다. 영주는 의젓하게 동생을 돌본다. 하지만 섬세하고 믿음직스럽게 동생을 대하지 못한다.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이 담긴, 어른이 했다고 한다면 경솔하게 보일 저 질문은 어른이 '되어버린' 영주를 의미한다.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영주의 곁에 어른이라고는 고모 부부뿐이다. 하지만 고모 부부는 영주의 집을 팔아 잇속을 챙기려 할 뿐, 두 남매를 사랑으로 대해주지 않는다. 학업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영주는 동생 영인(탕준상 분)만은 학업을 끝냈으면 한다. 하지만 영인은 강도 사건을 저지르고 영주는 합의금을 구해야 한다.

고모 부부에게 외면 당하고 사기 당한 영주는 부모님을 죽게 한, 졸음운전의 가해자 상문(유재명 분)의 두부 가게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정체를 숨기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영주는 부부가 식물인간 상태인 아들을 두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부부는 영주를 진심으로 딸처럼 대해주고 영주는 그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된다. 자신을 두고 세상을 떠난 친부모보다 더 그들을 사랑하게 된다.
 
영주는 가혹한 현실 속에서 판타지를 꿈꾼다. 조건 없이 사랑을 주었던 부모님이 사라지고 자신이 그 위치에 올라섰을 때 그 짐을 짊어지길 거부한다. 영주가 하는 말에는 철이 없고 어리숙한 면이 담겨 있다. 동생을 돌봐야 된다는 책임감이 있지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고 감싸줄 만큼 성숙하지 못한 어린 소녀다. 영주의 이야기는 영주에게 주어진 한정된 선택지 때문에 더욱 관객의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

원망과 애정, 죄책감과 행복, 책임감과 사랑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영주가 원치 않는 선택을 강요하며 그녀를 슬프게 한다. 스무 살 영주에게 봄은 영원히 오지 않을 계절처럼 느껴진다.

<이월> 민경, 거짓말을 일삼는 주인공
 

▲<이월> 스틸컷ⓒ 무브먼트


거짓말 하는 사람, 냉정한 사람, 인간미가 없는 사람.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싫어한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본인이 그런 사람이 되어야만 할 때가 있다. <이월>의 민경(조민경 분)이 그렇다. 그녀는 '2월'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아버지는 교도소에 수감 중이고 그녀는 돈이 없다. 공무원 강의를 몰래 듣는 민경은 집세를 낼 돈도 없어 밤중에 몰래 집에 들어간다. 자살을 기도한 친구 여진(김성령 분)이 시골에서 요양 중이라는 말에 그녀의 집으로 향한 민경은 행복한 여진의 모습에 화가 난다. 그녀는 여진과 '썸'을 타는 영빈(박영빈 분)을 괴롭혀 여진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만든다.
 
여진이 자살기도를 한 날, 민경은 그녀 가족에게 여진이 100만 원을 자신에게 빌렸다고 거짓말을 한다. 민경은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데다 사람을 대할 때도 냉정하고 인정머리 없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그녀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이유는 민경이 처한 상황 때문이다.

민경은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꿈이 있지만 학원에 다닐 돈도 그녀의 꿈을 응원해 줄 가족도 없다. 봄이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면 모를까, 언젠가 봄날을 꿈꾸는 이에게 2월의 추운 겨울은 너무나 가혹하다.
 
민경은 풀을 만지며 봄이 오면 얘네들도 이름을 찾겠다는 여진의 말에 자라지 못하면 이름이 없을 것이라 답한다. 민경은 꽃으로 피어나길 원한다. 그래서 추운 겨울을 피하고자 한다. 그의 거짓말과 냉정한 태도는 비난과 멸시를 받기에 충분하지만 '과연 민경에게 다른 어떤 선택지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도 들게 한다. 작품 속에서 민경은 한 여자가 빠져 죽었다는 전설이 있는 웅덩이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정말 죽을 뻔한 순간을 경험한다. 그 조그마한 웅덩이도 힘겹게 벗어날 만큼 고통스러운 삶의 순간이 있음을 민경은 보여준다.

<소공녀> 미소, 하루 한 잔의 위스키를 고집한다는 것
 

▲<소공녀> 스틸컷ⓒ CGV 아트하우스


<소공녀>의 미소는 앞서 언급한 세 영화의 주인공들과 비슷한, 힘겨운 삶에 놓여 있다. 하지만 그녀가 지닌 삶의 에너지는 긍정적이다. 3년 차 프로 가사 도우미인 그녀는 새해가 되자 더 오른 물가 때문에 결국 방을 빼기로 결정한다. 집이 없어진 미소는 대학시절 함께 밴드를 했던 다섯 명의 친구들을 찾아간다.

집은 안정과 행복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누구나 집이 있고, 집이 있기에 안정적으로 휴식을 취하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또 가족은 행복과 위안을 주는 존재라 여겨진다. 가정이 있기에 지친 하루에 소소한 행복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집값은 너무 비싸고 가족이 늘 행복을 주지만은 않는다. 미소가 만난 친구들은 집과 가정에 묶여 있다. 대용(이성욱 분)은 아내를 위해 빚을 내 집을 샀지만 아내는 집을 나가버렸고 우울증을 앓는다. 록이(최덕문 분)는 결혼을 강요하는 부모 때문에 결혼이 인생의 목표인 양 오랜만에 만나는 미소에게 작업을 건다. 정미(김재화 분)는 자신을 잃어버리고 '아내'라는 옷을 입는다. 잘 나가는 남편에게 묶여 사는 그녀는 가식적인 미소와 행동을 달고 살아간다.

미소의 친구들은 자신을 잃고 이미 변한 모습이었다. 사회에 맞는 어른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지우고 돈과 일, 가족에 묶여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인간이 인간에게 품는 따스함 역시 잃어버렸다.
 
미소는 하루 한 잔의 위스키를 마시고 담배 한 모금을 피운다. 그녀에게는 집보다 생각과 취향이 우선이다. 자신을 우선으로 둘 줄 아는 미소는 현실에 좌절하고 눈물을 흘리기 보다는 곁에 있는 것들의 따스함에 주목한다. 남자친구 한솔(안재홍 분)이 항상 곁에 있어주길 바라며 매일 위스키와 담배로 오늘 하루 고생한 자신을 위로해준다.

자신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은 남도 존중하기 마련이다. 그녀는 힘든 대용을 위해 식사를 차려주고 고시생 남편과 시부모를 둔 현정(김국희 분)을 더 고생시키지 않기 위해 그녀의 집에서 나온다. 매춘을 하다가 아이를 임신한 여성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 대접하는 미소는 타인을 존중할 줄 아는 인물이다. 미소는 삶을 바라보는 방향을 말한다. 모두가 불행하다고 말하는 이 시대에 생각과 취향을 존중할 줄 알고, 따스한 배려를 추구하는 미소의 모습은 행복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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