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추운 겨울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더라도 '이월'
비록 추운 겨울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더라도 '이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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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넷팩상, 서울독립영화제 대상 수상작 / 1월 30일 개봉예정

▲영화 <이월> 포스터ⓒ 무브먼트

 

[루나글로벌스타 김준모 기자] 작년 한 해 대한민국 다양성영화계는 '여풍'이었다. <소공녀> <수성못> <영주> <죄 많은 소녀> 등이 비평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관객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았다. 여성 캐릭터가 중심이 된 다양성 영화들은 조금 더 개인적이고 섬세한 감정의 표현을 선보이며 특별한 이야기를 전한다. 이 영화 <이월> 역시 마찬가지다.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와 제43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수상을 하며 화제를 모은 이 영화는 지독한 가난과 불행을 안고 살아가는 민경(조민경)을 통해 겨울과 같은 차가운 삶을 조명한다.

 
친구의 자살기도에도 놀라지 않는 주인공

영화는 두 개의 도입부를 통해 민경이라는 인물에 대한 인상을 관객들에게 전한다. 첫 번째는 함께 동거하는 친구 여진(김성령)의 자살시도를 바라보는 장면이다. 집에 돌아온 민경은 손목을 긋고 바닥에 기절해 있는 여진을 발견한다. 그 모습에 민경은 당황하지 않는다. 여진의 자살시도는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충격으로 굳어버린 것도 아니다. 민경은 생각을 한다. 여진의 자살시도가 자신에게 이로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을.

두 번째는 민경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만두집 주인이 없어진 돈의 범인으로 그녀를 지목하는 장면이다. 민경은 신경질적인 주인의 반응에 같이 성질을 내며 응수한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동료 알바생은 민경이 범인이 아니라 생각하지만 그녀는 태연하게 자신이 훔쳤다고 말한다. 민경은 도둑질을 하고 거짓말을 하며 주변 사람들을 냉정히 배신한다. 민경에게는 이런 행동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꿈과 현실이다. 그녀는 가난 때문에 합의금을 내지 못해 아버지가 교도소에 수감 중이며 집은 방세가 밀려 쫓겨날 처지이다.
  

▲<이월> 스틸컷ⓒ 무브먼트


민경은 현실에 좌절하기 보단 꿈을 바라본다. 사회복지사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돈을 모으고 그 돈으로 공부를 한다. 하지만 세상은 그녀가 꿈만을 보고 달려가게 허락하지 않는다. 집에서 쫓겨나게 생긴 민경은 여진이 다시 깨어났고 시골에서 요양한다는 친구의 말에 여진을 찾아간다. 여진의 집에 머무르는 민경은 두 가지 점에서 여진과의 생활에 불만을 느낀다. 여진은 민경에게 꿈이 아닌 현실을 자각시킨다. 민경의 아버지에 대해 물어보고 가난한 생활을 상기시킨다.
 
친구의 행복에 질투를 느끼는 여성

전원생활과 남자친구에게서 행복을 느끼는 여진의 모습은 질투를 유발한다. 여진은 민경과 대비되는 인물이다. 민경이 가난하지만 살기 위해 노력하는 반면 여진은 부유하지만 내면의 우울함 때문에 자살을 기도한다. 두 사람은 불행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여 있었다. 하지만 여진이 이 불행의 감정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이자 민경의 내면은 분노를 느낀다. 누군가에게 현실은 지루한 일상이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재난과 같은 버거움이다. 영화는 민경의 삶이 후자에 해당됨을 두 가지 장면을 통해 보여준다.
 
여진이 풀을 만지며 "봄이 되면 얘네들도 피어올라 모습을 갖추고 이름을 찾겠다"고 하자 민경은 "그렇겠지만 자라지 못하면 이름은 없을 것"이라고 응수한다. 이 작품의 제목인 '이월'은 2월을 뜻한다. 김중현 감독은 2월은 애매해서 잔인한 계절이라 말한다. 조금만 버티면 따뜻해질 것 같지만 사실은 꽤 춥기 때문이다. 민경의 현재 계절은 2월이다. 공무원 시험 합격이라는 봄을 기다리지만 빈곤이라는 현실의 벽은 견디기 힘들 만큼 춥다. 견디고 견뎌 3월이 된다면 꽃을 피울 수 있겠지만 그 계절까지 버틸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의문이 든다.
 
두 번째 장면은 물 웅덩이 장면이다. 여진은 6.25 전쟁 당시 자신의 이모 할머니가 이 조그마한 물웅덩이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민경은 정말 이 작고 얕은 물웅덩이에 빠지고 숨을 헐떡인다. 보잘 것 없는 물웅덩이에 빠져 죽음의 문턱을 경험할 만큼 민경의 존재는 초라하다. 빈곤과 거짓 그리고 배신으로 얼룩진 그녀의 삶은 염증을 불러일으키며 동정을 사기도, 위안을 얻기도 힘들어 보인다. 그럼에도 영화는 이 민경이라는 인물을 관객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을 반복한다.

혐오스럽고 염증을 느낄 법한 인물이지만...
  

▲<이월> 스틸컷ⓒ 무브먼트


민경이 불편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녀가 지닌 상처 때문이다. 민경은 현실의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남에게 상처를 준다. 민경이 안고 있는 상처는 집과 빈곤, 그리고 가족이다. 민경은 집이 없고 돈이 없으며 가족이 없다. 민경은 혼자 상처를 안고 끙끙거리며 살아가는 인물이 아니다. 그 상처를 바라보는 혹은 공격하는 이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을 일삼고 감정적인 배신을 반복한다. 꿈을 위해, 결핍을 채워가기 위해 시린 2월을 견디는 그녀의 모습은 우울하고 차갑게 다가오지만 공감할 여지를 준다.
 
<이월>은 상처와 결핍을 안고 고통스러워하기 보다는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거짓과 배신을 일삼는 한 여성을 통해 삶의 무게감을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민경의 모습에 혐오와 염증을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민경을 위한 아주 구차한 변명이라도, 이런 상처를 지닌 이들을 위해 해주고 싶다는 이 영화의 따스한 시선은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봄날을 꿈꾸는 이들에게 위안이 되어줄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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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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