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아이들이 웃으며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다 '가버나움'
모든 아이들이 웃으며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다 '가버나움'
  • 김준모 기자
  • 승인 2019.01.12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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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 / 1월 24일 개봉예정

▲영화 <가버나움> 포스터ⓒ 그린나래미디어(주)

 

[루나글로벌스타 김준모 기자] 2001년 개봉해 국내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던 이란 영화 <천국의 아이들>에서는 엄마의 심부름을 나갔던 초등학생 알리가 동생 자라의 하나 뿐인 구두를 잃어버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남매는 운동화 한 켤레를 번갈아 신고 오전반, 오후반으로 학교를 다니며 이 사실을 부모님에게 걸리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알리는 어린이 마라톤 대회 3등 상품이 운동화라는 걸 알고 자라에게 운동화를 선물해주기 위해 열심히 마라톤 연습을 한다. 그리고 1등을 차지한 알리는 동생에게 운동화를 줄 수 없다는 사실에 눈물을 왈칵 흘리고 만다.

 
이 남매가 구두 한 켤레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가난' 때문이다. 남매의 부모는 내일 당장 새 구두를 사줄 만한 경제적인 여력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걸 아는 아이들은 구두를 잃어버렸다는 사실만으로 부모님께 혼날까봐 말을 꺼내지 못한다. 이를 우리는 '빈곤'이라고 부른다. 빈곤은 기본적인 욕구조차 충족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가버나움>은 빈곤에 시달리는 소년 자인이 자신의 부모를 고소하고 싶다 말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아이들을 '돈 벌이'로만 생각하는 부모
 

▲<가버나움> 스틸컷ⓒ 세미콜론 스튜디오 , 그린나래미디어(주)


출생신고조차 되어 있지 않은, 아마도 12살의 소년 자인은 거리에서 주스를 팔고, 자신의 동생 사하르를 좋아하는 아사드의 가게에서 일을 한다. 자인의 부모는 제대로 된 일을 하지 못하고 있고 아이들을 거리에 내보내 일을 시킨다. 자인과 동생들은 거리에서 주스를 팔고 껌을 팔며 가정에 보탬이 되려 한다. 그들이 사는 집은 이불조차 제대로 없고 물이 새는 집이다. 부모에게 아이들은 돈을 벌어오는 존재다. 엄마 수아드는 남편에게 아이를 학교에 보내자며 그 이유로 지원 물품을 말한다. 하지만 아빠 셀림은 밖에 나가 돈을 버는 게 더 이득이라며 거절한다. 이들이 빈곤 속에서 사랑을 잃어버렸음을 보여주는 장치가 사슬이다.
 
가족의 품에서 자라야 할 막내 아기는 발에 사슬을 달고 집안 한 구석에 놓여 있다. 자유롭게 돌아다녀야 될 아이를 돌보는 게 귀찮아 택한 이 방법은 자인이 부모에게 느끼는 염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자인은 부모가 돈을 위해 사하르를 아사드와 결혼시키기로 결정하자 사하르를 데리고 도망치려 한다. 이를 눈치 챈 부모는 저항하는 자인을 때리고 사하르를 강제로 아사드의 집으로 보내버린다. 이에 자인은 사하르를 되찾고 또 동생들이 더 이상 부모 때문에 고통받지 않기 위해서는 많은 돈을 벌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자인은 우연히 버스에서 만난 노인을 통해 놀이동산을 향하고 그곳에서 라힐이라는 흑인 여자를 만나게 된다. 아프리카 불법 이민자인 라힐은 일거리를 찾지만 구하지 못하는 자인에게 자신의 아기 요나스를 돌보게 하며 자신의 집에서 살게 한다. 자인과 라힐은 같은 그림자를 지니고 있다. 두 사람 다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가 없으며 어린 나이에 빈곤을 경험하고 이를 짊어지게 된다. 그리고 소중한 피붙이-자인에게는 동생들, 라힐에게는 아기-를 위해 어떻게든 돈을 벌고 살아가고자 노력한다.
 
레바논의 시리아 난민 문제를 다룬 <가버나움>은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를 고소하고 싶다는 소년 자인의 목소리를 통해 빈곤 문제를 조명한다. 시리아 내전으로 수많은 난민들이 발생했고 이들은 주변 국가로 퍼져나갔다. 문제는 이런 난민들을 수용할 시설도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국가들이기에 이들은 빈곤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어른들의 문제로 아이들은 더 큰 아픔을 겪고 있다. 자인은 부모의 노릇을 할 수 없는, 그리고 할 여력이 되지 않는 부모가 자신을 세상에 낳아준 걸 원망한다.

증명사진 찍는 소년의 미소, 인상적이었다
 

▲<가버나움> 스틸컷ⓒ 세미콜론 스튜디오 , 그린나래미디어(주)


일각에서는 이 영화에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가난한 사람의 사진이나 영상을 보여주는 '빈곤 포르노'가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한다. 감독 라딘 라바키는 지난해 12월 14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일부 평론가들이 이 작품을 빈곤 포르노로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감독은 "영화에서 보는 건 현실과 비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고통 받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답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조안나 슈넬레르 역시 지난 7일 < 더 글로브 앤드 메일 >에 기고한 글을 통해 영화 <가버나움>에 대한 몇몇 리뷰가 이 작품을 '빈곤 포르노'라고 부른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난 후, 이 영화가 '빈곤 포르노'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작품에서 변호사로 출연한 배우이자 감독인 나딘 라바키는 모든 인물들을 전문 배우가 아닌, 진짜 해당 경험을 했던 실제 인물로 캐스팅했다. 본명도 자인인 자인 역 배우는 시장에서 배달 일을 하던 시리아 난민 소년이다.
 
라힐 역의 요르다노스 시프로우는 실제 아프리카 불법 체류자로 영화 속에서 불법 체류자로 체포되는 장면을 찍은 다음 날, 실제로 당국에 체포되는 일이 있기도 했다. 감독은 실제 현실의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을 캐스팅해 그들의 아픔을 담아냈다. 그리고 제작진은 이 영화의 출연진들의 삶을 지원하기 위해 '가버나움 재단'을 설립했다고 한다. 자인은 사하르를 지키고 부모의 영향에서 동생들을 해방시키고 싶고 요나스를 돌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자인부터 출생신고 서류조차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가난을 자극적인 포르노로 소비하지 않으려는 감독의 의지는 자인의 증명사진을 통해 알 수 있다. 극중에서 자인은 신분증에 쓸 증명사진을 찍는다. 사진기사는 무표정한 자인에게 말한다. '이건 사망신고서가 아니라고. 살아있으면 웃어야지.' 이 영화는 어색하지만 환하게 미소를 짓는 자인의 표정을 통해 세상이 만들어 나가야 할 모습을 말한다.
 
삶이란 한 발짝씩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지만 죽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살아있는 동안 즐겁고 행복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견디며 나아간다. 자인은 가족의 품 안에서 그 어떠한 즐거움과 행복도 느끼지 못한 채 살아왔다. <가버나움>은 가난을 이유로 눈물을 강요하는 최루성 짙은 '빈곤 포르노'라기보다, 자인과 같은 아이들이 빈곤을 벗어나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희망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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