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한 혐오와 염증을 말하다 '우행록'
인간에 대한 혐오와 염증을 말하다 '우행록'
  • 김준모 기자
  • 승인 2019.01.10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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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마부키 사토시 주연 / 1월 17일 개봉예정

▲영화 <우행록> 포스터.ⓒ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루나글로벌스타 김준모 기자]조지 스티븐스 감독의 1959년작 <안네의 일기>의 마지막 장면에서 안네는 말한다. "모든 인간은 착하니까. 그러니까 이 고통도 끝이 날 거야"라고. 독일 나치 집권 당시 유대인 학살을 피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도망친 안네의 가족은 결국 발각되고 폴란드 수용소를 전전하게 된다. 안네의 가족은 아버지를 제외하고 모두 수용소에서 사망한다. 영화의 도입부, 안네의 일기를 발견하고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의 모습은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깊은 슬픔을 느끼게 한다. 안네는 끝까지 인간의 '착한 심성'을 믿었으나 차디찬 주검이 되고 말았다.

 
흔히 이야기 하는 '불편한 영화'는 잔인하거나 역겨운 시각적인 고통보다 정신적인 고통을 준다. 그 정신적인 고통은 인간에 대한 염증과 혐오에서 비롯된다. <검은 집> <살인의 문> 등 일부 일본 소설은 혐오스러운 성향의 인간들이 사회에 잘 적응해 살아가며 약자들을 착취하고 유린하는 모습을 조명해 독자들에게 강한 충격을 줬다. 누쿠이 도쿠로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우행록 어리석은 자의 기록> 역시 눈이 아닌 머리와 가슴으로 잔인함을 느끼는 영화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명문대 졸업 후 대기업에 다니던 엘리트 남편과 곱게 자란 미인 아내, 귀여운 두 자녀로 이루어진 일가족이 살해 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1년 후, 기자 다나카는 미궁에 빠진 사건의 진실을 찾고자 피해 가족의 이웃사람, 대학동창, 직장동료 등을 찾아가 인터뷰를 한다. 다나카에게는 정신병원에 수감된 여동생이 있다. 여동생은 영아 방치 혐의로 정신병원에 가게 됐다. 작품은 다나카와 그의 여동생 그리고 일가족 살인사건을 통해 어리석은 행동, 우행(愚行)에 대한 슬프고도 지독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영화 <우행록> 스틸 컷.ⓒ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우행록>은 제목 그대로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도입부 두 장면을 통해 작품 속 인물들의 어리석은 행동을 조명한다. 첫 번째는 다나카가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장면이다. 한 할머니가 버스에 타고 뒷자리에 앉은 중년 남자는 자리에 앉아 있는 다나카에게 "젊은 놈이 자리를 양보 안 하느냐"라며 꾸짖는다. 자리에서 일어난 다나카가 다리를 절뚝거리자 중년 남자는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버스에서 내린 다나카는 절뚝이던 다리를 펴고 멀쩡하게 걸어간다.
 
그는 중년 남자가 한 말에 괘씸함을 느껴 그가 마음에 죄책감을 가질 만한 행동을 했다. 이 행동은 타인의 입장에서 보면 어리석어 보이지만 당하는 사람(중년 남자)의 입장에서는 마음의 고통을 받을 수 있는 행동이다. 하지만 이런 행동을 한 다나카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오히려 그는 그 남자가 자신을 콕 집어 자리 양보를 강요했다는 점에 불만을 느낀다. 다나카와 비슷한 사고 방식을 지닌 또 다른 이는 일가족 살인사건의 피해자이자 살해당한 일가족 중 가장인 타코우였다.
 
다나카가 타코우의 직장 동료를 인터뷰하는 장면에서 직장 동료는 그의 여성 편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어진 회상 장면에서 타코우와 그 동료는 여성 신입사원과 강압적인 상황에서 성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 사원과 성관계를 맺은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술 자리에서 이야기한다. "어차피 어떤 남자와도 관계를 맺을 여자였으며 지금은 결혼해서 잘 살고 있으니 아무 상관없다"는 것. 그리고 동료는 타코우가 '좋은 사람'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영화 <우행록> 스틸 컷.ⓒ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다나카는 취재를 통해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타코우가 성관계를 맺은 여성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는 점, 타코우의 아내가 대학 시절 따돌림을 주도하고 친구를 괴롭혔다는 점이다. 관객들은 타코우와 그 아내가 행한 저급한 '우행'들을 통해 그들에게 염증을 느끼고 '죽어도 싼 인간들이 죽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인물들에 대한 평가 역시 하나의 '우행'이라 할 수 있다.
 
다나카가 인터뷰를 하는 인물들은 하나 같이 이 두 부부의 실상을 알면서도 그들에 대해 '좋은 사람,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는 인간을 재단하고 평가하는 기준을 사회적인 성공과 원활한 교우 관계에 두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기준에서 높은 점수를 얻는다면 사회가 정해놓은 법과 규칙을 어기지 않고서야 문제가 없는 좋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작가가 되기 전 부동산 회사에서 근무했던 원작자 누쿠이 도쿠로는 수많은 사람들을 대하며 인간이 지닌 '본질'에 대해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작가는 많은 사람들이 좁은 기준으로 남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것을 목격했고 이를 '우행'이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영화를 보던 관객들이 타코우 일가족의 행동에 분노하고 그들의 죽음에 대한 동정을 거두는 순간, 그들 역시 남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우행에 빠지게 된다. 이 영화는 그런 우행이 인간의 본질 중 하나라고 말하고 있다. 이 본질을 거울처럼 마주하는 순간, 인간에 대한 믿음과 신의, 본질적인 선함은 부정 당하고 염증과 혐오를 느끼게 된다.
 
영화의 결말에 관객들의 뒤통수를 때리는 반전은 이야기의 극적 효과뿐만 아니라 관객이 그동안 직시하기를 꺼렸던 본질을 바라보게 만든다. 또한 인간에 대한 염증과 혐오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결말이다. <우행록>은 추리의 구조를 지니지만 '범인'을 찾기 보다는 '원인'을 들여다보는 작품이기에 쾌감보다는 불쾌함을 준다. 하지만 이 잔인한 불쾌함 속에서 인간이 지닌 본질을 성찰할 수 있는 영화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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