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죽음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 김준모 기자
  • 승인 2019.01.08 22: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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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포스터ⓒ Treewater Productions


[루나글로벌스타 김준모 기자] 김영하 작가의 <검은 꽃>은 1905년, 일본 대륙식민회사의 농간에 의해 일손이 달리는 멕시코에 채무 노예로 팔려간 대한제국 백성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검은 꽃>에서 멕시코와 한국의 장례문화 차이가 나타나는 장면은 독자에게 묘한 느낌을 준다. 멕시코 영주는 자신의 부하의 죽음을 같이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는 대한제국 백성들의 모습에 감동을 받는다. 하지만 이후 그들이 술을 마시며 흥겹게 노는 모습을 보자 실망을 금치 못한다. 결국 저들은 죽음을 슬퍼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런 척했던 것인가 의문을 품게 된다.
 
한국 장례문화의 경우 반드시 슬픔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축제와 같은 한국의 장례문화는 멕시코의 영주를 당황시키며 편견을 지니게 만든다. 그 이유는 그가 생각하는 죽음을 대하는 자세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국가마다 문화마다 또 종교마다 죽음을 대하는 자세와 장례문화에는 차이가 있다. 국내에서만 무려 3개의 영화제에서 상영된 인도네시아 영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죽음에 대한 익숙하지 않은 관점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극 중 탄트리와 탄트라는 이란성 쌍둥이이다. 누나 탄트리는 동생 탄트라의 밥을 챙겨주는 등 살뜰히 챙긴다. 어느 날 탄트라의 뇌에 혹이 생기면서 그는 신체기능을 점점 잃어가는 식물인간이 되어가고, 누나 탄트리는 그 모습을 바라만 봐야 하는 현실에 괴로워한다. 간호사는 이란성 쌍둥이는 생김새가 다르기에 서로 균형을 이루어 준다고 말한다. 영화 속에서 이 두 남매를 상징하는 소재는 계란이다.

노른자 요리해 동생에게 주는 누나, 무너지는 남매 사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스틸컷ⓒ Treewater Productions


계란은 흰 자와 노른자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 노른자는 후에 병아리가 되는 생명이 탄생하는 부분이고 흰 자는 노른자가 생명력을 지닐 후 있게 양분을 공급하는 부분이다. 탄트리는 계란을 요리해 노른자 부분만 따로 탄트라에게 준다. 말하자면 극 중 탄트라는 노른자이다. 탄트라가 병에 걸리면서 남매는 균형을 잃는다. 탄트리가 먹는 삶은 계란에 노른자가 없는 장면이 이를 상징한다. 탄트리는 노른자인 탄트라가 생명력을 얻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매개체가 되는 소재가 벼와 닭, 그리고 달이다. 탄트리는 병원에 벼를 가져와 심는다. 벼는 주식인 쌀을 상징한다. 동시에 쭉 뻗은 줄기로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 탄트리는 닭으로 분장을 한다. 마을에서 본 닭싸움에서 서로를 죽일 듯 쪼는 닭의 모습에서 생명력을 느낀다. 닭은 아침이 되면 목청껏 울어 아침을 알린다. 동생이 닭과 같은 생명력을 지니길 누나는 원한다. 그리고 동생은 침대에서 일어나 누나와 함께 벼를 심고 닭 분장을 하고 닭싸움을 벌인다.
 
이런 탄트리의 환상과 상상은 달을 통해 더 강하게 표현된다. 탄트리는 환상 속 아이들과 함께 보름달 아래에서 의식을 올린다. 환상 속 수많은 아이들과 기묘한 동작을 반복하는 탄트리의 모습은 기괴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 기괴함 속에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앞서 말했듯 작품 속 탄트라는 계란의 노른자로 상징된다. 이 노른자와 비슷한 색깔과 모양을 지닌 게 달이다. 탄트리가 보름달을 보며 부르는 노래의 가사는 꽃이 되어 달을 받치겠다는 내용이다.
  
'상실보다 붕괴'에 가까운 영화 속 죽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스틸컷ⓒ Treewater Productions


아이는 꽃에 비유된다. 유년의 시절은 아름답고 찬란한 꽃과 같기 때문이다. 줄기와 뿌리가 꽃을 받치듯 꽃이 모여 달을 받치겠다는 탄트리의 의지는 동생을 다시 건강하게 만들고 싶어 하는 간절함에서 비롯된다. 결국 반달이 되고 초승달이 될 수밖에 없는 보름달을 어떻게든 하늘에서 사라지지 않게 만들기 위해 누나는 동생에게 생명력을 불어넣고자 노력한다. 이 영화가 바라보는 죽음은 상실보다는 붕괴에 가깝다.
 
그 사람이 사라질 빈 공간, 그 빈 공간이 안겨줄 슬픔에 주목하기보다는 서로가 있기에 이루어지는 균형, 이 균형의 붕괴가 주는 불안과 이를 막기 위한 간절한 염원이 중심을 이룬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상징적, 은유적인 의미와 죽음을 바라보는 익숙하지 않은 시선 때문에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동생을 지켜내기 위한 누나의 간절함과 그 간절함이 표현된 소재들을 통해 죽음에 대한 새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영화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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