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소리가 없이도 수화로 전달된 진심 어린 사랑, '청설'
말과 소리가 없이도 수화로 전달된 진심 어린 사랑, '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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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청설' 포스터.
영화 '청설' 포스터.

 

 

일과를 마치고 집에 오던 오늘, 늦게나마 상영하고 있는 극장을 찾아 영화 <청설>을 보러 다녀왔다. 영화를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영화 선택을 잘 했다는 것이었다. 영화 <청설>은 평범한 로맨스 영화의 느낌이 없었다. 여느 로맨스 영화가 뿜는 그러한 느낌이 들지 않았던 것은 아마 이 영화가 로맨스보다는 개인의 성장을 주로 담고 있으면서 청각장애라는 주제로 수화를 소재로 하여 그려낸 사랑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청설'의 매력은 청각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섬세하고 따뜻한 모습을 잘 그려냈다는 점이다. 또한 작품성도 작품성이지만, 이와는 별개로 영화 자체가 가진 아름다움만으로 관객들을 매료하는 영화가 있는데, '청설'이 바로 그런 영화에 속한다.

청각장애인인 양양(진의함)의 언니 샤오펑(천옌시)은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꿈꾸는 수영선수다. 이들의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아프리카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계셔 사실상 부모의 도움과 변변한 직업 없이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양양은 아버지가 떠나기 전 "내가 언니를 보살필 것"이라 다짐했고, 언니의 꿈이 곧 자신의 꿈이라 여기고 샤오펑이 마음 놓고 수영을 할 수 있도록 자신이 알바라 부르는 '버스킹'을 통해 생계를 유지한다. 돈을 벌지 못하는 날도 있다. 그리고 샤오펑이 우승해 상금을 타 오면 충당하는 방식으로 삶을 이어오고 있다. 영화 '청설'에서는 샤오펑보다는 양양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양양은 희생하고 자신을 억누른다. 양양이 티엔커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봤을 때도 티엔커(펑위옌)는 '결혼해서 여자 아이 하나, 남자 아이 하나를 낳는 것'이라 장난스레 답했을 때, 양양은 스스로에게 자신의 꿈에 대해 물었을 때 이러한 대답조차 하지 못한다.  

 

주인공들의 대화는 대부분이 수화로 이루어진다. 영화의 마지막에 반전이 있기는 하지만, 이 영화에서 반전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다. 이들이 수화로 대화를 할 때 지나가는 오토바이 소리, 어디선가 들려오는 피아노 연주소리,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 자동차 경적, 바람소리 등 다양한 소리가 들린다. 티엔커와 양양은 수화를 통해 사랑을 키워나가는데, 대화가 많이 없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들의 사랑, 그리고 이들의 진심이 더욱 깊게 느껴졌다. '청설'에서 그려진 주인공들은 사랑은 말로 하는 대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진심은 충분히 전달되고, 관객들로 하여금 들리지 않는 세상을 같이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과연 일반적인 '말'이라는 소통 방식이 과연 '수화'라는 소통 방식보다 나을까. '청설'은 꼭 그렇지는 않음을 보여준다. 이들은 '말'이라는 불완전한 소통 방식 대신 좀 더 명확해 보이는 수화텍스트 형태의 소통을 택한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고 연인들도 그렇고, 대화를 할 때 항상 눈을 쳐다보고 얘기하지는 않는데 '수화'로 대화할 때는 상대방의 손짓, 눈빛, 표정을 다 읽어야 소통을 할 수 있다. 즉, 어떻게 보면 이들의 소통 방식이 더 진심 어리고, 깊을 수도 있는 것이다. 목소리가 없이도 티엔커와 양양은 수화라는 대화 방식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관계를 발전시킨다. '청설'을 보며 티엔커, 양양, 샤오펑의 귀엽고 사랑스럽고 장난스런 표정을 보는 소소한 즐거움도 분명히 있다.          

'청설'이 다른 사랑 영화와 달랐던 점을 꼽으라면 또 하나 있는데, 이 영화의 분위기를 따뜻함으로 좀 더 드러낸 부분이었다. 로맨스 영화에서는 사랑이 이루어지기까지 '부모의 반대'가 차용되고는 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부모'가 아니다. 오히려 부모는 티엔커가 부모에게 '듣지 못 하는 애여도 괜찮겠냐'며 물어봤을 때 '우리도 수화를 배워야겠다'며 오히려 진심 어린 응원을 건넨다. 마지막에 티엔커의 부모님이 양양이 못 듣는다는 점을 배려해 노트를 준비해 환영 문구를 써서 보여주기도 하는 장면은 짠하기도 했다. 티엔커의 부모는 장애에 대한 편견 없이 사람을 사람 그 자체로 볼 수 있는 인물들이었다.
 

 

'청설'에서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 요소는 양양의 언니 '샤오펑'이라 볼 수 있는데, 양양은 언니 샤오펑에게 신경 쓸 여유가 줄어들 것이라 생각해 누군가와 사랑을 시작하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이다. 알바에서조차 표정 하나 없던 양양은 티엔커를 만나며 미소를 짓게 되고, 그로 인해 샤오펑밖에 없던 양양의 삶에 티엔커와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며 언니에게 할애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던 것이다. 언니와 동생의 자매애, 그리고 장애인의 자립 문제가 양양과 샤오펑 사이에서 드러난다.     

'청설'의 가장 핵심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 뭉클하고 짠한 장면이 영화 중후반부에 하나 있는데, 화재 사건 이후로 성적이 눈에 띄게 안 좋아져 올림픽에 나가지 못하게 된 샤오펑이 술을 마시고 집에 와 양양과 다투고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게 되는 장면이다. 샤오펑은 자신이 동생 양양에게 짐이 되는 것만 같다고 생각했고, 올림픽에 나가게 되지 못하면서 가장 속상한 것이 양양에게 금메달을 안겨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양양에게 묻는다. 너는 너만의 인생이 있느냐고, 왜 내 꿈이 너의 꿈이 되었냐고, 왜 내 꿈을 네가 훔쳤냐고. 처음 시작은 자신이 하고 싶어 한 것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샤오펑은 어느새 양양의 목표에 맞춰 달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희생을 하며, 각자가 원하는 것과 목표가 무엇인지 잊고 고통스러워했고, 결국 이 장면에서 폭발하고 만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상대가 자신의 삶을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믿어주고 지켜보는 것, 이거 하나로도 충분할 수 있음을 '청설'은 보여준다.
 

 

샤오펑은 티엔커와의 사랑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 양양에게 말한다.       

물새는 계절이 바뀌면 날아가.
난 너도 그랬으면 좋겠어.
언젠가 날 떠나서 물새처럼 자유롭게 비상하면 좋을 것 같아.
내 독립을 믿어준다는 의미니까.

영화 제목은 우리나라에서는 한자 그대로 읽어서 '청설'이다. 영어로는 'Hear Me'인데, 풀이하면 '내 말을 들어줘', '내 얘기를 들어줘' 정도이고 한자로 풀이하면 '말을 듣다', '이야기를 듣다' 정도가 될 것 같다. 필자가 영화의 제목을 해석한다면 '듣고 말하기'라고 칭하고 싶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하고 싶을 말을 상대에게 하는 '소통'을 통해 사람간의 관계는 깊어지고, 소중한 존재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청설'은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이야기와 진심을 전함으로써 자신의 꿈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들고 잊고 있었던 나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기도 한다.

영화를 보면서, 그리고 보고 나서 다른 로맨스 영화와는 달리 꽤 많은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다. 영화 자체의 작품성이 엄청 높아서가 아니라, 영화 그 자체로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덧붙이자면 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제 때 내한한 진의함을 인터뷰하려고 했으나 사정이 생겨 하지 못했는데, 그게 생각나서 한이 남을 뿐이다. 천옌시의 아름다움도 이 영화에서 숨길래야 숨겨지지가 않는 듯 하다. 그렇지만 이와 상관 없이 '청설'은 여러 매력으로 인해 분명히 다시 한 번 보고 싶게 되는 영화다. [루나글로벌스타 한재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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