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애절한 사랑 영화, '천년여우' [BIAF]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애절한 사랑 영화, '천년여우' [BI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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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년여우> 스틸컷 ⓒ 매드하우스

 

 

[루나글로벌스타 김준모 기자] 제20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콘 사토시 특별전이 열렸다. <퍼펙트 블루>, <천년여우>, <파프리카> 등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연출로 주목을 받은 그는 신작 <꿈꾸는 기계>를 준비하던 중 2010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4K로 새롭게 선보인 <천년여우>는 17년 만에 다시 국내 관객들과 만나게 됐다.
 
<천년여우>는 '천년'이라는 시간과 '여우(女優)'라는 주인공의 직업이 만들어낸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다. 창립 70주년을 맞은 영화사 은영은 옛 세트를 허물고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영화사의 전설적이었던 여배우 후지와라 치요코의 다큐멘터리를 기획한다. 30년 전 전성기를 뒤로 하고 사라진 뒤 연락이 끊긴 여배우 치요코는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 감독 타치바나는 수소문 끝에 치요코를 찾아가고 그녀의 옛 이야기를 다큐로 촬영한다.

극 중 옛 이야기는 치요코의 첫사랑이자 끝사랑과 극 영화 속 이야기가 뒤섞여 있다. 관동대지진 후 태어난 치요코는 지진으로 죽은 아버지 대신 어머니의 손에 커 왔다. 그녀가 처음 영화에 캐스팅 된 당시는 전쟁 중이었고 사상범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있던 시대였다. 그녀는 우연히 부딪힌 한 남자가 피를 흘리는 걸 보고 그를 숨겨준다. 경찰의 추격을 받던 그와 사랑에 빠진 치요코는 남자가 만주로 떠나자 그를 찾기 위해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배우가 된다. 영화의 촬영 장소가 만주이기 때문이다.

이 순간부터 과거의 치요코와 영화 속 치요코가 뒤섞인다. 이는 감독 타치바나 역시 마찬가지다. 타치바나는 치요코의 과거를 바라보는 관찰자가 되었다가 영화 속 인물로 분장해 치요코를 위기에서 구하기도 한다. 감독은 이런 현실과 영화가 뒤죽박죽 섞인 복잡한 연출 방법을 관객들에게 좀 더 친절하게 설명하기 위해 세 가지 요소를 이용한다.

 

▲ <천년여우> 스틸컷 ⓒ 매드하우스

 

첫 번째는 치요코가 치매 환자라는 점이다. 치요코는 타치바나에게 '내일이면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라는 말을 하며 힘든 와중에도 말을 이어간다. 그녀가 과거 같이 일을 했던 타치바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기억력이 감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영화와 현실을 오가는 영화의 연출은 치요코의 정신세계를 반영했다 볼 수 있다. 치요코가 치매환자라는 점,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서의 자신과 영화 속 자신을 혼동하고 있다는 점, 타치바나 역시 이에 동조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왜 이런 복잡한 구조를 택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지진이다. 도입부에서 타치바나는 치요코가 출연한 우주 영화를 본다. 이 영화에서 우주선이 발사됨과 동시에 지진이 일어난다. 이 묘한 중첩은 인터뷰 중에도 지진이 일어나면서 계속된다. 애니메이션에서의 지진은 세계의 붕괴와 동시에 다른 세계와의 접촉을 의미한다. 붕괴되고 있는 세계는 치요코의 정신이며 또 다른 접촉은 영화 속 세계와의 연결이다. 치요코는 부족한 자신의 기억을 본인이 출연한 영화들을 통해 연결시키고 있다.
 
세 번째는 영화를 통한 천년의 시간이다. 작품은 그저 복잡한 구조만을 위해 영화를 활용하지 않는다. 당대 최고 인기배우였던 치요코는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에도 시대극부터 SF영화까지 출연한 그녀의 경력은 천년이라는 시간으로 표현된다. 즉 영화 속 천년의 시간이 그녀가 한 남자를 기다리고 사랑해 온 시간이 되는 것이다. 이 시간은 치요코 뿐만이 아닌 이 작품을 보는 관객들에게도 특별하게 다가온다. 누구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팬의 입장에서 사랑에 빠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런 경험은 배우와 함께 호흡하면서 이뤄진다. 그 배우가 작품에서 선보이는 연기와 매력에 빠지면서 말이다. 즉 치요코가 한 남자를 위해 지고지순한 사랑을 꽃피웠던 것처럼 관객들 역시 마음 속 첫사랑으로 간직한 배우에게 특별한 사랑을 느꼈을 것이다. 이를 보여주는 존재가 타치바나이다. 그가 영화를 통해 치요코의 일생을 지켜볼 수 있었던 이유는 타치바나가 치요코의 팬이기 때문이다. 그는 70살이 넘은 치요코를 향해 '그녀는 늙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가 바라보는 치요코는 여전히 어린 소녀 같으며 작품 속에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런 감정의 핵심이 치요코가 첫사랑 남자에게 받은, 그리고 타치바나가 간직하고 있던 열쇠이다. 이 열쇠는 무언가를 여는 용도로 사용되지 않는다. 그저 간직되는 존재이다. 치요코는 이 열쇠를 간직함으로 자신의 감정을 열지 않는다. 그녀의 감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만난 이름도 모르는 남자에게 있다. 다만 열쇠를 간직함으로 그 감정을 '열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사랑을 품는다.
 
이 영화의 비현실적인 사랑이 많은 관객들에게 애절함과 슬픔으로 공감을 사는 이유는 이 점에 있다. 누구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간직한다. 열쇠처럼 그 사랑을 열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기에 사랑은 아름답게 기억된다. 첫 작품 <퍼펙트 블루>로 강렬한 호러 애니메이션을 선보인 콘 사토시는 두 번째 작품 <천년여우>를 통해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를 선보였다.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연출을 전혀 다른 장르와 감정으로 풀어낸 그의 영화는 17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 <천년여우> 포스터 ⓒ 매드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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