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혼자가 아니야'라는 영화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위로
'넌 혼자가 아니야'라는 영화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위로
  • 송승원 평론가
  • 승인 2018.10.10 1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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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드니 페로 감독의 '커밍 아웃'

[루나글로벌스타 송승원 평론가]

 

제목: 커밍 아웃(Out) 2018 作

감독: 드니 페로

#1시간 3분 #LGBT #인권 #이해 #위로 #용기 #연대 #선택 #성소수자

 

'커밍 아웃'은 어떠한 LGBT영화보다도 직설적이고 섬세한 화법을 구사한다 [사진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커밍 아웃'은 어떠한 LGBT영화보다도 직설적이고 섬세한 화법을 구사한다 [사진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커밍 아웃>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 섹슈얼, 트랜스젠더)들의 커밍 아웃 영상들만으로 구성된 영화다. 실제 LGBT들의 삶을 일부 발췌했다는 점에서 <커밍 아웃>은 관련된 어느 영화보다도 진실하고 또 섬세하다. 무엇보다 이 세상에서 LGBT로 살지 않았다면 결코 알 수 없는 다양한 형태의 감정과 고민을 스크린 안에 온전하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커밍 아웃>은 큰 의미를 갖는다. 영상 속에서 이들이 커밍 아웃을 하는 대상은 가족들이다. 이에 대한 가족들의 각기 다른 반응은 세상이 LGBT를 바라보는 시선을 그대로 반영한다.

 영화 전반에 시종일관 미세한 '떨림'이 감지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확립한 시점부터 이들은 커밍 아웃 직전까지도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배척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그 불안감에 의한 떨림이 스크린을 뚫고 이들을 바라보는 관객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따라서 긴장하게 되는 것은 관객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커밍 아웃에 대해 모든 가족들이 '말해줘서 고마워', '변하는 것은 없을 거야. 난 언제나 너를 응원한다'와 같은 대답을 해주지 않으리라는 것은 관객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때때로 이들의 커밍 아웃이 허락을 구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이들에게 세상은 가혹하다 [사진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때때로 이들의 커밍 아웃이 허락을 구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이들에게 세상은 가혹하다 [사진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너 같은 자식을 낳은 것을 후회한다', '하느님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거다'와 같은 대답을 하는 가족들도 결코 적지 않다. 이와 같은 몰상식하고 폭력적인 대답에 대해 저항을 하는 사람도 있고, 포기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떠한 선택으로 응수를 하든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LGBT는 잘못된 것'이라는 전제가 통용되는 폭력적인 가계 구조 속에서 LGBT''조차 될 수 없는 '', ''의 위치에 놓여있다. 일부 영상에서 커밍 아웃이 '선언'이 아닌 '허락'의 형태로 보이는 것은 이러한 현실과 결코 무관할 수 없다.

 제시되는 상황으로부터 영화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주인공들의 커밍 아웃은 그 자체로만 본다면 하나의 개별적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그 진심이 쌓이고 쌓여 종래에는 하나의 완성된 문장으로 만들어진다. 당신들이 이성애자로 태어났듯, 우리는 LGBT로 태어났을 뿐이다. 자식의 커밍 아웃을 따듯하게 받아들여준 부모조차도 '너의 선택을 존중한다'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LGBT들에게 자신의 삶은 선택에 의한 결과가 아니다. 영화는 LGBT로서의 삶을 선택의 범주로 밀어 넣으려는 시도 자체가 이들에게는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음을 명시한다.

 

이들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봐줄 수는 없는 걸까? [사진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이들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봐줄 수는 없는 걸까? [사진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이성애를 선택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세상의 기준에서 그건 너무나도 '정상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LGBT로서의 삶을 선택에 의한 결과라고 믿는 사고의 근저에서 'LGBT는 애당초 비정상적인 것'이라는 편견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지독한 '타자화'. 이와 같은 편견은 결과적으로 LGBT가 세상으로부터 겪는 부당함을 그들의 선택에 의한 결과라고 주장하는 '피해자 책임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이러한 편견이 어째서 잘못됐는지에 대해 그들의 경험을 통해 반박한다. 그 반박에는 힘이 있지만 비참하다.

 영상 속 많은 화자들이 자신이 세상이 부정하는 LGBT 중 하나라는 사실을 자각했을 때의 당혹스러움을 이야기한다. 그 당혹스러움은 스스로를 인지하는 과정에 있어 세상의 편파적인 시선이 개입됐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대신에 세상의 부조리를 감당해야 하는 선택지와 세상의 부조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대신에 자기 자신을 감춰야 하는 선택지. 두 선택지 모두 부당하다.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것에 대해 기회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삶은 없다. 그 역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눈물은 LGBT가 겪어야 했던 두려움과 외로움을 대변한다 [사진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이들의 눈물은 LGBT가 겪어야 했던 두려움과 외로움을 대변한다 [사진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이 모든 기회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영상 속 LGBT들이 커밍 아웃을 하는 이유는 '서로'를 위해서다. 이들의 커밍 아웃이 누군가에게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라는 위로가 된다. 영화가 끝나니 이곳저곳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보통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있는 편이지만 이번만큼은 평소보다 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받는 위로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이분들이 겪어야 했던 두려움과 외로움이 먹먹하게 장내를 채운다. 나는 오늘 영화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위로를 목격했다. 내가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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