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살인의 문을 열게 되는가 '살인의 문'
인간은 왜 살인의 문을 열게 되는가 '살인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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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신작 소설 / 두 남자의 악연을 통해 살인의 과정을 말하다

소설 '살인의 문' 표지 / Ⓒ재인
소설 '살인의 문' 표지 / Ⓒ재인

 

[루나글로벌스타 김준모 기자]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중 한 명인 히가시노 게이고는 60대에 접어든 오늘날까지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그에게 큰 명성을 안겨준 작품들은 대부분이 범죄 추리 장르의 작품이다. 수많은 범인들을 만들어 온 그는 동시에 수많은 살인들을 묘사해 왔다. 추리소설 작가에게 트릭보다 설정하기 힘든 게 동기이다. 최근 범죄소설은 물론 영화와 드라마까지 범인에 대한 캐릭터 설정은 희미하다.

싸이코패스 또는 소시오패스를 앞세우거나 분노조절장애 등 정신적인 문제를 근거로 범인을 설정한다. 그러다 보니 ‘왜 살인을 저지르는가’에 대한 동기는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이런 경향에서 벗어나 있다. 사회파 작가의 면모를 지닌 그는 ‘왜 범인은 살인을 저질렀는가’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런 작가의 물음이 탄생시킨 작품이 <살인의 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치과의사인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난 다지마와 그의 인생에 질긴 악연으로 엮인 구라모치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선량한 한 명의 인간이 어떻게 살인이라는 악인의 영역에 들어서는지를 보여준다. 작가는 이 어울리지 않을 거 같은 두 주인공을 엮기 위해 세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첫 번째는 성격이다.

다지마는 호기심이 없고 소극적이며 인내심이 강한 성격이다. 어린 아이라면 가질 만한 호기심이 적기에 무언가를 보거나 들어도 혹은 자신이 당해도 이에 대해 질문을 하거나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소극적이기에 나서지 않고 인내심이 강하기에 참는 편이다. 그의 이런 성향은 정반대인 구라모치에게 휘둘리는 원인이 된다.

구라모치는 활발하고 말주변이 좋으며 어른들의 일에 관심이 많다. 근원적으로 욕망이 강한 인물이기에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그는 또래들과 대화가 없는 다지마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호기심이 부족한 다지마는 구라모치가 꾸미는 흉계를 알아내지 못한다. 일이 다 끝나고 나서야 증거들을 꿰맞추어 당했다는 걸 알게 된다.

이런 성격적인 측면은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는 두 주인공을 반대의 상황에 놓이게 만든다. 성실하게 살아가는 다지마는 소극적이고 참는 성격 때문에 오해를 산다. 말주변이 부족하기에 남들에게 호감을 사기 힘들다. 반면 구라모치는 남을 속이고 이용해 먹는 삶을 살아가지만 많은 이들에게 호감을 얻는다. 남이 좋아할 만한 말과 행동을 알고 실천한다.

악인인 구라모치가 다지마를 자신의 테두리에 가둔 채 괴롭힐 수 있는 이유는 이런 성격적인 차이가 만들어낸 방향성의 차이에 있다. 올바른 삶을 살아간다고 위험에서 벗어나고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게 아니다. 사회성을 갖춘 영악하고 교활한 사기꾼은 순수한 도련님을 몰락시키고 경제력으로 예속시킨다.

작품은 이런 두 사람의 성격을 주변 인물들을 통해서도 형상화시킨다. 다지마는 살면서 두 명의 진정한 친구를 사귄다. 그 두 사람은 모두 진실 되고 우직하며 의리가 있다. 반면 구라모치의 주변에는 사기꾼과 접대부 등 남을 속여먹는 걸 사회의 요령이라 여기는 이들 뿐이다. 그들은 구라모치를 멋있는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그 속뜻에는 자신에 대한 합리화가 담겨 있다.

두 번째는 유전이다. 구라모치가 다지마를 조종하고 있다면 그의 행동에 예측이 가능해야 한다. 헌데 작품 내에서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은 많지 않다. 다지마의 집안에 대한 나쁜 소문이 퍼지자 구라모치는 그를 멀리하였고 이후 공장에서 쫓겨난 다지마를 자신의 집에 들인 때를 제외하고는 가까이서 다지마를 지켜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그가 다지마라는 인물에 대해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이유는 그의 아버지에게 있다. 작품에 확실하게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구라모치는 다지마의 아버지 집에서 일하는 도우미 도미를 통해 그의 아버지에 대한 말을 많이 들었을 것이다. 자신이 겪은 다지마와 그 아버지의 성격이 비슷하다면 어떤 사건에 대한 행동의 예측이 가능하다. 구라모치는 다지마에게 상처를 주는 방법으로 여자를 이용한다.

그의 아버지처럼 다지마도 여자에 약하다. 쉽게 사랑에 빠지고 쉽게 감정을 주며 깊게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다. 여성을 사로잡는 구라모치의 언변은 그의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사기 오목 장사꾼 사쿠라와 여성 경험에 기인한다. 사쿠라는 여성을 자신의 주변에 잡아두는 법을 안다. 그의 옆에서 장사와 인생을 배운 구라모치는 그런 방법으로 다지마의 첫사랑인 요코를 빼앗고 낙태를 강요해 자살로 이끈다.

그의 주변에 접대부가 많다는 건 여성들을 많이 만나봤다는 이야기다. 그는 여성에 대해 잘 알고 그녀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핵심을 잡아내는 능력이 있다. 다지마가 사랑에 빠졌지만 그에게는 관심을 주지 않았던 유키에의 마음을 잡아낸 것도 이런 능력에 기인한다. 심지어 구라모치는 다지마를 파멸시키기 위해 그의 결혼까지 조종한다.

다지마의 아버지는 도미와 바람을 피웠고 시마코라는 접대부에게 막대한 돈을 쓴다. 어머니와 이혼하고 시마코의 애인에게 폭행을 당해 손을 쓰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가문의 역사가 깃든 저택을 팔고 조그마한 아파트를 지어 관리인으로 가게 되는 몰락을 경험함에도 다시 만난 시마코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이런 아버지의 성향을 아들 다지마는 그대로 빼다 박았다. 그는 요코의 문제로 구라모치에게 집착하게 되고 유키에가 구라모치와 결혼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감추지 못한다. 여자에게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그의 모습은 구라모치에게 좋은 먹잇감으로 비춰진다. 아버지처럼 되지 않겠다 다짐했던 다지마는 아버지와 같은 모습으로 스스로를 파멸의 길로 접어들게 만든다.

세 번째는 이 작품의 핵심적인 갈등 형성 요인이라 할 수 있는 우정이다. 다지마와 구라모치의 관계는 증오와 분노를 품고 있지만 그들을 연결시키는 힘은 우정이다. 다지마는 자신의 삶이 힘들 때마다 찾아오는 구라모치의 손길을 차마 내치지 못한다. 그는 구라모치의 언변에 빠져서 실수를 저질렀다고 서술하지만 그의 내면에는 초등학생 시절 본인에게 살갑게 대해주던 구라모치와의 기억이 남아있다.

그가 몇 번이고 구라모치를 죽일 기회가 있었으나 죽이지 않은 이유, 그의 마음속에 살의가 살인이라는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은 이유는 이 한 가닥 우정에 있다. 구라모치가 악인이라는 걸 알면서도 처단할 수 없는 감정이란 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는 구라모치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다지마에게 악행을 가하는 순간은 다지마가 자신의 영향권에서 벗어났을 때이다. 작품에서 구라모치는 다지마를 버리는 오목 알 정도로 생각했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그가 품은 우정에 대해 언급한다.

구라모치가 다지마의 파멸을 원했다면 그를 신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완전한 소멸에 이르게 했을 것이다. 그 단계까지 가지 않은 이유는 구라모치가 겪는 외로움과 연관되어 있다. 남을 속이며 살아온 구라모치는 마음을 완전히 줄 수 있는 상대를 찾기 힘들었다. 유년 시절 우정을 나눈 다지마 만이 곁에 두고 함께할 수 있는 친구-비록 그 감정은 악과 증오로 가득 차 있어도-라고 여겼던 것이다.

이들의 묘한 브로맨스는 ‘살인자가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줄기와 맞물려 강한 태풍을 만들어낸다. 1인칭 주인공 전개에서 느껴지는 단조로움과 <우행록> 등 이성을 뒤집어 쓴 소시오패스 작품들의 느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지마는 왜 악인인 구라모치를 죽이지 못하는가, 왜 파멸로 이끄는 게임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구라모치는 마무리를 짓지 않는 걸까.

이는 두 사람 사이에 감정에 있으며 이런 감정은 어린 시절 살인에 흥미를 느낀 다지마가 ‘살인의 문’으로 향하는 과정을 좁고 험난하게 만든다. 그리고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오랜 시간 본인이 써 왔던 작품들의 근원인 살인이 이뤄지는 원인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내놓는다. 동시에 사회파 작가로의 품격을 잃지 않는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두 가지 사회적 문제를 지적한다. 첫 번째는 사회의 안전망이다. 구라모치는 짧은 시간에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 사기에 몰두한다. 이 과정에서 그가 택한 세일즈의 탈을 쓴 직업은 다단계-금-주식-부동산 판매로 이어진다. 이 네 가지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기 수법으로 오늘 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에 대한 사회의 안전망이 약하다는 점이다.

구라모치라는 악인이 직종을 바꾸며 활개를 칠 수 있었던 이유는 가해자에게는 약하지만 피해자에게는 가혹한 사회의 대처에 있다. 사원들은 회사에서 시켜서 몰랐다 또는 자신도 피해자라며 빠져나가고 돈을 많이 챙긴 간부급은 모습을 감추어 버린다. 그리고 남겨진 피해자들은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속은 너희가 바보라는 조롱 속에 추락한다.

대규모 사기 사건은 사회적인 문제이나 이에 대한 제대로 된 법적 조치는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속기 쉬운 노인들은 물론 일자리로 문제를 겪고 있는 청년들까지 악인들에게 이용을 당하지만 정부는 이에 확실히 대처하지 못하며 ‘어차피 빼앗길 돈’이라는 합리화를 키우게 만든다. 작품은 남을 이용해서 살아가는 사람들(구라모치, 사쿠라, 시마코)과 그런 사람들에게 피해를 당해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들(다지마, 다지마의 아버지)을 대조시키며 안전망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의 문제를 꼬집는다.

두 번째는 살인이라는 행위에 대한 정당성이다. 이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공허한 십자가>에서 소재로 삼은 사형제도와는 결이 다른 이야기다. <공허한 십자가>에서 그는 반성하지 않는 자들에게 사형이란 공기보다 가벼운 형벌이라는 논지의 이야기를 전개했다. 반면 이 작품에서는 사회에 큰 피해를 끼치는 악인들을 죽일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작품이 1인칭 전개를 택한 이유는 다지마의 입장에서 구라모치를 바라보게 하기 위함이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몇 번이고 구라모치에게 살의를 느끼게 된다. 그가 요코를 자살로 이끌었을 때, 다단계 사업으로 다지마를 꼬드겼을 때, 금 판매로 노파가 자살을 선택하게 만들었을 때 등등 다른 사람을 파멸로 이끄는 그를 죽이지 않는 다지마의 선택에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사회의 안전을 위해서는 살인이라는 행위는 정당성을 지녀야 되는 걸까. 감독은 질긴 두 남자의 악연을 통해 이런 사회적인 문제를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 다지마가 독이 든 붕어빵을 구라모치에게 먹이지 않은 것이 모든 고난의 원인이었다면 반대로 그때 구라모치를 죽였다면 다지마를 비롯한 몇몇 이들은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형제도 같은 살인은 정당성을 지닐 수 있는가. 악인은 개인의 판단과 결정을 통해 처단해도 옳은 것인가. 악인을 처단하고 제지할 수 없는 사회가 지닌 시스템은 쓸모가 있는 것인가. 어쩌면 한 사람이 살인의 문이라는 좁고도 험난한 길을 택하는 이유는 이런 사회의 문제점 때문이 아닌가 하는 점을 작가는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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