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가 되어버린 인간을 다룬 심오한 범죄 소설 '브루투스의 심장'
기계가 되어버린 인간을 다룬 심오한 범죄 소설 '브루투스의 심장'
  • 김준모 기자
  • 승인 2018.09.15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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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범죄 소설의 대가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소설 '브루투스의 심장' 표지 / Ⓒ리디북스
소설 '브루투스의 심장' 표지 / Ⓒ리디북스

 

[루나글로벌스타 김준모 기자] *주의 : 기사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미래다? 기계 같은 사람이 미래다!

 

다쿠야라는 남자가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죽었고 아버지는 난봉꾼이었다. 이런 가정 아래에서 불량스럽게 자랄 법도 하지만 그는 성실하게 살아가며 일류대에 합격했고 이후 MM이라는 대기업에 입사한다. 어찌 보면 그는 성실하고 반듯한 ‘모범적인 인간상’을 보여주는 인재일 것이다. 하지만 그 속은 썩어 문드러졌다. 다쿠야는 무능력하고 질 떨어지는 아버지를 보며 생각했다. 난 절대 저런 인간이 되지 않겠다고. 그는 모든 사적 욕망을 제거한 채 공부만 했다.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다니게 된 뒤에는 자취방으로 들어갔고 집과는 모든 연락을 끊어버렸다. 학교에서는 공부와 아르바이트에만 몰두했다. 여자친구는 일부러 예쁘고 몸매가 좋은 애들만 사귀어 성적 욕망을 해소하는 용도로만 이용했다. 그는 마치 기계처럼 일과 공부에만 매달렸다. ‘완벽하게’ 기계 같은 삶을 살아온 그는 MM의 로봇관련 부서로 입사하게 된다.

입사 후 그의 목표는 하나다. 더 높은 자리에 올라서는 것. 언제나 그러했듯 있는 힘껏 위로 올라서는 것이다. 하지만 직장은 학교와 다르다. 단순 ‘성적’만으로 모든 게 판가름 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고위층과의 연줄이다. 그는 임원실 신입직원 야스코에게 회장 니시나 도시키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그녀에게 밥을 사주고, 선물을 주면서 환심을 하는 다쿠야. 그리고 자연스럽게 야스코가 주는 정보로 니시나 도시키의 눈에 들어오게 된다. 유능하고 잘 통하는 완벽한 직원 다쿠야. 그는 야스코의 유혹에 빠져들고 그녀와 육체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 야스코는 다쿠야에게 중요한 정보를 준다. 미국에 있던 니시나의 둘째 딸 호시코가 일본에 왔다는 것. 다쿠야는 결심한다. 자신이 ‘신데렐라’가 되겠다고 말이다.

 

살인 컨베이어벨트

 

제멋대로인 재벌 딸 호시코. 하지만 다쿠야는 그런 그녀의 망나니짓이 싫지만은 않다. 그게 호시코가 자신에게 보이는 관심이기 때문이다. 니시나 가문에는 세 명의 자식이 있다. 첫째 나오키와 둘째 사오리, 그리고 셋째 호시코. 나오키는 젊은 나이에 실장 자리까지 따내지만 능력이 없는 사내다. 그는 방에 틀어박혀 업무는 알아서들 하라는 태도로 지낸다. 그래서 도시키는 ‘유능한 사위’들을 받아 나오키의 뒤를 받칠 생각을 한다. 그 첫 번째가 사오리의 남편 무네가타다. 그는 다쿠야 이상으로 기계적인 사내다. 감정조절에 있어 완벽할 정도로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리고 둘째 호시코의 사윗감을 고르는 도시키의 눈에 들어온 게 다쿠야다. <블레이드 러너 2049>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과연 당신이 사랑에 빠진 그 순간이 감정일까? 그게 우리가 계산해서 만든 순간이라면 당신은 믿을 수 있을까’ 다쿠야와 호시코, 두 사람 다 몰랐지만 사실 둘의 만남은 도시키와 무네가타의 작품이다. 어찌되었건 호시코의 눈에 어느 정도 드는데 성공한 다쿠야. 그런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도착한다. 야스코가 임신을 했는데 그 아이가 ‘그의 아이’ 일 수도 있다는 것.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도 관계를 맺고 있었던 걸까? 다쿠야는 초조해진다. 자신의 아이가 아니면 상관없다. 하지만 만약 아니라면. 그의 아이라면 호시코와의 결혼은 물 건너간다. 그럴 순 없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사회의 최상류층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어떻게 잡았는데. 그는 야스코와의 성교 중 그녀의 목을 조르는데 이때 아예 졸라 죽여 버리고 싶다는 욕구에 빠지기에 이른다. 그를 호출하는 나오키. 그 자리에는 나오키와 다쿠야, 그리고 하시모토가 모인다. 알고 보니 이 세 사람이 야스코와 관계를 맺고 아이 아빠의 가능성이 있는 것. 나오키는 ‘야스코 따위’ 한테 당해 인생을 망치기 싫다고 말한다. 그녀에게 한 번의 돈을 주는 건 가능하겠지만 이후 주기적인 금액을 요구할 경우 삶이 파탄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세 사람은 결정한다. 야스코를 죽이기로.

각자 정해진 역할을 인간과 기계가 분담하는(혹은 인간끼리, 기계끼리 분담해 일을 하는) 컨베이어벨트처럼 세 사람은 각자 역할을 나눠 야스코를 죽이고 시체를 처리하기로 결정한다. 왜 세 사람이냐? 이건 알리바이를 위해서다. 시체를 죽인 장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두면 세 사람 다 알리바이상 변명이 가능한 트릭을 형성할 수 있다. 나오키는 야스코를 죽이고 다쿠야는 운반을 한다. 그리고 하시모토는 시체를 처리한다. 맞물리는 톱니바퀴처럼 완벽하게 흘러가야만 하는 이 일은 첫 톱니바퀴부터 망가지면서 일을 망치기에 이른다. 실컷 시체를 옮겨온 다쿠야는 하시모토에게 전달할 때야 알게 된다. 그들이 옮긴 시체는 야스코가 아닌 나오키라는 걸 말이다.

 

소수의 인간 다수의 기계

 

개인적인 생각이다. 난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가 소수만이 인간의 ‘특권’을 누리고 다수의 인간을 ‘기계’와 같이 취급한다고 생각한다. 시대가 흐르면 흐를수록 사회는 인간에게 더 강력한 ‘완벽함’을 추구한다. 학점은 최상위에 가까워야 하며, 온갖 자격증과 영어시험 점수, 해외연수 경험과 인턴 경력, 수상 경력까지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모든 욕망을 억제한 채 오직 ‘성공’을 향해서만 달린다. 자연스럽게 성공에 방해가 되는 모든 요소 ‘사랑, 우정, 신의, 믿음’ 등을 다 쓰레기통에 박아둔다. 마치 기계처럼 모든 욕망을 억제한 채 공부와 일에만 열중한다. 그리고 인간의 마음을 져버린 기계가 되어버리고 이를 당연하게 여긴다.

‘인간은 소모품에 불과하다’ 기성세대가 아닌 오히려 젊은 세대들이 생각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능력이 있으면 올라가지만 아니면 버림받는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퇴출당하는 게 당연하다. 그 과정에서 인간됨이 없어도 상관없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하지만 그런 그들이 누리는 게 무엇인가. 해봤자 ‘결혼’을 통한 신분상승의 욕구만을 꿈꿀 뿐이다. 다쿠야와 야스코. 그 둘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욕망이다. 사회적인 성공을 누리고 싶은 욕망. 둘은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통감한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결혼이다. 다쿠야는 호시코를 통해 니시나 가문에 들어가기를 희망하며 야스코의 뱃속의 아기 아버지가 상류층의 자식이 될 가능성이 있기에 2번의 낙태경험에도 아기를 지우지 않는다.

참으로 비극적인 현대인의 모습이다. 아무리 기계처럼 살아도 ‘정말 기계’ 취급을 받는다. 인간이 쓰다 쓸모없어지면 버리는 기계처럼. 그래서 이들과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호시코의 캐릭터가 인상적이다. 그녀는 하고 싶은 말, 부리고 싶은 성질 다 부리면서 산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물건을 고를 때 남에게 ‘이거 어때?’라고 물어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가장 큰 힘은 주체성에 있다. 인간은 기계와 달리 프로그래밍 될 필요가 없고 허가나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다. 호시코는 이 작품에서 가장 ‘인간됨’을 누린다. 남에게 허락받지 않고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이는 니시나 도시키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결말부분에서 소름끼치는 모습을 선보인다. 작가가 그의 캐릭터를 이 시점까지 감춘 이유는 분명하다. 그는 ‘인간이 기계를 부리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핵심캐릭터기 때문이다. 그는 다쿠야가 수사선상에 오를 것으로 보이자 무네가타를 시켜 호시코와 다쿠야 사이를 떨어뜨리게 만든다. 이 말은 반대로 하자면 호시코와 다쿠야를 붙여놓은 건 도시키라는 소리다. 그는 기계를 조작하듯 모든 상황을 조작한다. 그리고 죽은 나오키를 대신해 ‘새 아들’을 들일 준비도 한다. 내가 상류계층에 지니는 염증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그들은 하류계층을 ‘기계’처럼 취급하며 조종하려고 든다. 그리고 자신들만이 ‘인간된 권리’를 누린다.

 

기계가 되어버린 인간, 인간이 되어버린 기계

 

작품은 니시나 가와 사야마로 대표되는 형사들, 그리고 유미에 세 파트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이 중 유미에의 이야기는 약간 생뚱맞게 느껴져 반전을 쉽게 눈치채는 포인트가 된다. 하지만 이 유미에의 파트를 주제의식을 이해함에 있어 굉장히 중요하다. 초반 프롤로그에는 유지라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는 교대근무로 일을 하는데 그가 일하는 공장에 인간은 유지 한 명뿐이다. 그는 기계들이 일하는 공장의 인간 관리자이다. 하는 일이라고는 기계가 오작동을 일으키면 고치는 일이 전부다. 그러다 보니 점점 삶이 피폐해진다. 하루의 절반을 기계와 보낸다. 그들과는 소통도, 감정의 교류도 불가능하다. 이는 유지만이 느끼는 감정이 아니다. 그와 교대근무를 하는 고로 역시 마찬가지다.

고로는 유지를 죽인다. 그와 유지는 유미에를 좋아했다. 하지만 먼저 고백한 유지가 유미에를 차지했고 그 덕분인지 결혼을 앞두고 있어 부서이동이 받아들여진다. 고로는 이때의 일을 유미에에게 고백하면서 덧붙인다. 그때 나는 인간이 아니었다고. 그런 환경에서 어찌 인간됨을 유지할 수 있었겠느냐고 말이다. 겨우 부서이동 하나 때문에, 사랑하는 여자를 빼앗겼다는 이유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는 건 합당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기계라면, 이 사람을 죽이면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 여기는 기계라면 이에 맞게 행동할 것이다. 무인자동차를 생각해 보라. 만약 탑승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설계된 무인자동차라면 보행자의 ‘희생’이 몇이나 되건 상관없이 탑승자의 안전을 위해 사고를 낼 것이다. 유지는 평범한 인간이 ‘기계’가 되면 어떤 비극을 일으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인물이다.

반면 이와 반대를 보여주는 인물이 있다. 바로 다쿠야다. 그는 아버지 때문에 인간됨을 버리고 기계처럼 살아왔다. 기계는 프로그래밍을 벗어나지 않는다. 철저하게 자신의 패턴 안에서 행동한다. 그런 기계에게 감정이 생긴다면, 마치 인간과 같은 사고를 지니고 욕망을 품는다면 인간과 같은 실수를 저지를 것이다. 다쿠야의 ‘실수’는 야스코를 죽이면서부터다. 호시코를 넘보는 건 그의 인생계획이었다. 기계가 인간이 되기 위한 퀘스트와 같았다. 맨 처음 ‘릴레이 살인 계획’은 나오키라는 주인의 지시였다. 이 역시 하나의 퀘스트로 이해할 수 있다. 반면 야스코의 살인은 본인이 스스로 택한 행위다. 그는 범인을 야스코로 결정지었고 그녀가 자신을 죽이기 전에 먼저 죽여야 된다는 생각에 살인을 결정한다. 그리고 이 살인을 기점으로 그는 기계가 아닌 ‘인간’이 된다. 유미에가 지닌 사고일지에 호기심을 나타내는 게 그 증거다.

그는 인간처럼 자신과 연결된 사건이 아닌 다른 사건에 호기심을 내비친다. 호기심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으로 인간이 가진 큰 힘이자 재앙이다. 호기심으로 인해 인류는 크나큰 발전을 이루었지만 성서 그리고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면 호기심이라는 감정 때문에 인간의 근원적인 고통이 생겼음을 이야기한다. 다쿠야의 호기심은 그를 파멸로 직행하게 만든다. 그는 고로의 정체에 대해 알게 되었으며 그가 살인 릴레이의 ‘조커’였음을 인지한다. 그리고 택한 결말은 지나치게 거만하며 교만했다. 합리적으로 위험을 최소화하는 기계가 아닌 위험마저 무릅쓰고 과신을 택하는 인간처럼.

 

브루투스와 카이사르

 

작품에서 브루투스는 다쿠야가 만든 로봇의 이름이다. 다쿠야는 인간보다 로봇이 더 우등하다 여긴다. 로봇은 성실하며 로봇은 게으르지 않고 로봇은 무능하지 않다. 로봇의 오작동은 결국 인간의 실수며 무엇보다 로봇은 인간처럼 열등하지 않기에 배신하지 않는다. 그는 무네가타와 유지의 사고 이야기를 하는데 이때 무네가타는 기계 오작동으로 유지가 죽은 거 같다며 이런 말을 한다. ‘기계에는 심장이 없으니까’ 한 마디로 감정이 없기에 물건이 아닌 ‘인간’이 들어와도 일을 시행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다쿠야는 반박한다. 기계에 오작동은 없다. 그건 인간의 실수다. 이런 그의 로봇에 대한 맹신은 브루투스를 신뢰했던 카이사르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카이사르는 왜 암살당했는가. 그는 황제를 꿈꾸었다. 황제는 독재자를 의미한다. 맨 꼭대기에 선 인물. 그래서 아랫사람들을 부리기만 하고 자신은 아무런 견제나 제재도 받지 않는 인물 말이다. 하지만 공화정을 꿈꾸는 반대파에 의해 그는 암살당했는데 이때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가 브루투스다. 후에 각색이 좀 있었다고 하지만 카이사르는 브루투스를 양아들처럼 여기고 신뢰했기 때문에 그가 칼을 들고 자신에게 다가왔을 때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참고로 이 말은 후세의 창작이라고 한다.) 다쿠야는 상류사회를 꿈꾸었다. 그의 욕망은 황제를 꿈꾸었던 카이사르에 비견 될 만하다. 그는 나이든 간부들을 보며 ‘무능하고 얼빠진 돈만 좀먹는 족속들’이라 여기며 호시코와 결혼한 후 다 잘라버릴 거라 다짐한다. 또 자신에게 막 대하는 안전관리부 직원을 보고도 같은 생각을 품는다. 그는 명백히 회사의 ‘독재자’가 되기를 꿈꾼다.

그가 자신이 믿던 ‘로봇’ 브루투스에 의해 최후를 맞이한다는 점은 카이사르의 이야기와 같다. 헌데 중요한 차이점이 하나 있다. 바로 ‘심장’이다. 카이사르는 공화정을 꿈꾸는 브루투스의 ‘뜨거운 심장’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다. 반대로 다쿠야는 로봇 브루투스의 ‘차가운 심장’에 죽음을 맞이한다. 만약 브루투스가 인간이라면 어땠을까. 진짜 ‘심장’을 가진 인간이었다면 다쿠야를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로봇은 명령에 따르고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행동만을 한다. 이 작품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요즘 젊은이’라는 말을 반복한다. 이는 단순한 ‘꼰대기질’ 때문에 나오는 말이 아니다. 뜨거운 심장을 잃어버린 차가운 젊은이들, 그러면서 함께사는 세상이 아닌 남을 밟고 올라가는 행동만을 반복하는 젊은이들에게 브루투스의 ‘검’으로 훈계를 내린 것이다.

경쟁사회의 잘못은 단순 어른세대에게만 있지 않다. 젊은 세대들이 힘을 합쳐 ‘경쟁이 싫다!’고 말한다면 세상은 바뀔 수 있다. 하지만 마치 그 명령어는 입력되어 있지 않다는 ‘기계’처럼 차갑게 위로 올라갈 생각만 품고 살아간다. 그래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극단적인 결말을 택한다. 어느 인물도 행복하지 않다. 그저 ‘그래도 잘 살아갈 수 있는’ 상류층(인간)만을 남겨둔 채 모든 하류층(기계)에게 고통을 심어준다. 인간다운 변화를 택하지 못한 세대에게 가해지는 이 충격이야 말로 이 작품이 가진 가장 큰 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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