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히지 않는 따뜻한 가족의 맛, '불량가족, 행복의 맛'
잊히지 않는 따뜻한 가족의 맛, '불량가족, 행복의 맛'
  • 김준모 기자
  • 승인 2018.09.08 15: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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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4회 브졸국제아시아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 / 9월 13일 개봉예정

 

<불량가족, 행복의 맛> 포스터ⓒ 하준사


[루나글로벌스타 김준모 기자] 나른한 오후 남자친구와 방에서 섹스를 하던 요시코는 할아버지의 부고 전화를 받는다. 아버지는 보지 못하는 할아버지의 사후 모습을 바라보며 요시코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할아버지가 생을 마감하는 그 순간, 자신은 쾌락에 젖은 섹스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량가족, 행복의 맛>은 상반되는 제목의 의미처럼 동전의 앞면과 뒷면 같은 가족을 말하는 영화다. 먼저 이 영화에 등장하는 가족들은 불량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장례식에서 다툼을 일으키며 각자의 삶 역시 순탄하지 못하다.
 
요시코의 아버지 세이지는 정리해고로 실업자 신세이며 세이지의 형 아키오는 술 때문에 이혼을 당했다. 두 사람은 아버지의 장례 문제부터 티격태격 거리며 유치한 이유로 싸움을 반복한다. 아키오는 딸이 몇 살인지도 모르며 히키코모리인 아들을 도둑으로 오인해 뺨을 때리기도 한다. 요시코의 두 사촌은 자기 자신도 주체하지 못하면서 쿨병에 걸려 반항과 냉소를 반복한다. 이런 가족들의 모습에 요시코는 염증을 품는다. 그리고 이 염증은 요시코가 느꼈던 죄책감이 담긴 섹스와 연결된다.
 

영화 <불량가족, 행복의 맛> 스틸컷ⓒ 하준사



요시코와 요시코의 오빠가 기억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건강하고 성실한, 그리고 따뜻한 사람이다. 열심히 농사를 짓고 어린 손자와 손녀에게 밥과 용돈을 준 사랑으로 가득한 두 사람. 이 두 사람과 다르게 남겨진 가족들은 건강보다는 불량스러운 맛이다. 할아버지의 시신을 앞에 두고 다툼과 싸움을 반복하는 아버지와 큰아버지, 조부모가 준 사랑이 무색하게 시니컬한 사촌들의 모습이 요시코에게는 할아버지의 죽음 중 행한 자신의 섹스와 동일선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이 작품의 불량스러운 맛은 요시코의 기억에 기인한다. 그녀의 기억 속 조부모를 생각할 때 지금 가족들의 모습은 배신감이 느껴지며 실망스럽다. 이는 본인도 마찬가지다. 요시코의 죄책감은 단순히 섹스라는 행위에 기인하지 않는다. 부고의 전화를 받는 순간 그녀는 잊혔던 할아버지를 기억해낸다. 망각의 순간이 그녀에게는 무섭게 다가온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를 요양시설에 보낸다는 아버지의 말에 그녀는 집에 고양이가 있다는 이유로 할아버지네 강아지를 데려오지 않는 거처럼 할머니도 어디에 맡길 생각인 것이냐며 날이 선 말을 내뱉는다.
 
장례식에서 울지 않고 서로의 약점만 잡고 물어지는 또는 서로의 마음 따위는 배려하지 않는 가족의 모습은 조부모가 베푼 사랑을 생각할 때 야속해 보인다. 이 야속함을 가속시키는 존재는 할머니다. 세이지와 아키오는 각자의 사정을 들먹이며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시설에 보내고자 한다. 이런 가족의 불량스러운 맛이 ‘행복’의 맛으로 바뀌는 순간은 요시코가 장례식을 위해 온 스님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을 때이다. 섹스에 대한 죄책감을 말하는 요시코에게 스님은 답한다.
 
 

영화 <불량가족, 행복의 맛> 스틸컷ⓒ 하준사


아무리 슬픈 일이 있어도 사람은 맛있는 음식을 허겁지겁 먹을 수도 있고, 영화를 보고 웃거나 울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성관계를 할 수도 있다고. 그게 인생이기 때문에 죄송할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슬픔은 항상 울고 고통스러워하는 게 아니다. 한국의 장례문화를 보면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 슬픔을 공유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웃고 떠들며 죽은 사람을 추모한다. 눈물과 고통만이 슬픔을 담아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생이란 게 그렇기 때문이다. 슬프기 때문에 울고 있을 수만은 없고 아프기 때문에 주저앉을 수만은 없다.
 
세상에 문제없는 가족은 없다. 멀리서 보면 부러워 보이는 가족도 그 내부를 보면 썩어 문드러진 지점이 보인다. 그럼에도 가족은 살아간다. 불량스러운 겉껍질 속에 부드러운 크림 같은 행복의 맛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완벽해만 보였던 싱글레이디인 고모도 워커홀릭에 걸려 결혼을 안 한 게 아니라 때를 놓쳤다. 그런 고모의 삶은 겉모습만 보면 노르스름하게 잘 구워낸 빵이지만 속은 텅 비어 있다. 그래서 고모는 달콤한 크림이라는 가족의 사랑을 마지막 순간 선택한다.
 
슬픔과 우울함이 가득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건 따뜻한 가족의 맛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들 사정없는 사람 없고 아픔 없는 사람 없다. 그런 순간의 연속에서 가족의 의미를 잠시 잊어버리지만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 따뜻함이 있기에 살아간다. 할아버지의 죽음은 가족들의 마음을 바꿔놓은 게 아니라 잠시 잊고 있었던 그 느낌을 되살린 거라 할 수 있다.
 
<불량가족, 행복의 맛>은 ‘섹스 중 죄책감’이라는 독특한 감정을 통해 가족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현대 사회의 모습을 다룬 가족영화들이 바쁜 일상 속 사라져가는 가족의 사랑을 담았다면 <불량가족, 행복의 맛>은 겉으로 표출할 시간이 적을 뿐 가족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는 울림을 준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남편에 대한 사랑은 끝까지 잊어버리지 않은 것처럼 일상 때문에 망각되었다고 여기는 가족 간의 애정이 살아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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