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처럼 갈라지고 무너진 인간의 인격을 말하다 '13번째 인격'
지진처럼 갈라지고 무너진 인간의 인격을 말하다 '13번째 인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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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집' 기시 유스케 작가의 데뷔작 / 제3회 일본 호러소설 대상 장편부 가작

Ⓒ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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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글로벌스타 김준모 기자] 한신대지진이 일어나고 무려 6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다. 건강한 사람도 버티기 힘든 재해 현장에서 한 할머니는 정부의 미온한 대처에 한탄한다. 헌데 이 한탄은 겉으로 내뱉는 게 아닌 마음속에 품은 말이다. 다중인격부터 유체이탈까지 일어나는 이 엄청난 소설에서 왜 이 부분이 자꾸 마음에 남는 걸까. 작품 속 한신대지진 피해자들은 연신 '괜찮다'는 말과 '고맙다'는 말만 내뱉는다. 어느 누구도 '아이구, 나 죽는다!'라는 소리를 입밖으로 내지 않는다. 하지만 엠파스(empath – 과도한 감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일반적인 과학이나 심리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다른 사람들의 감성을 감지할 수 있는 사람을 뜻하는 용어(네이버사전)) 능력자인 유카리가 들여다 본 이들의 마음은 모두 고통과 시름으로 얼룩져 있다.


엠파스 능력자인 유카리는 자신의 정신적 문제로 고통을 받는 가족 때문에 가출을 감행한다. 그녀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으로 성매매 업소에서 카운슬링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본인의 삶에 대한 의미와 방향에 대해 고민한다. 한신대지진 소식을 듣고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그녀는 그곳에서 치히로라는 소녀를 만나고 그녀가 다중인격자라는 걸 알게 된다. 문제는 그녀의 인격 속 13번째 인격, 이소라가 알 수 없는-그리고 기분 나쁜 존재라는 점이다. 이소라에게서 살의를 느낀 유카리는 치히로의 치료를 돕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의 보호자인 숙부는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유카리는 숙부가 치히로를 성적으로 학대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그녀를 돕기로 결심한다.

<검은 집>, <크림슨의 미궁>으로 유명한 기시 유스케 작가의 첫 데뷔작인 <13번째 인격>은 다중인격과 임사 체험, 유체이탈이라는 세 가지 소재를 흥미롭게 섞은 작품이다. 이 세 가지 핵심소재를 능란하게 섞을 수 있었던 비결은 <검은 집>에서 봤듯 작가 특유의 엄청난 심리학적 정보량에 기인한다. 그가 그려낸 다중인격 치히로의 인격들은 그 하나하나에 있어 섬세하고 확실하다. 주요 인격이 있긴 하지만 모든 인격에 확실한 캐릭터를 부여하며 독자로 하여금 어떤 인격 때문에 치히로가 문제를 겪고 있는지 추리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또 한자 사전을 통해 치히로의 인격에 이름을 부여하면서 각각의 인격의 탄생 비하인드를 추론하는 재미도 준다.

하지만 다중인격 하나만으로 줄 수 있는 재미에는 한계가 있을 터. 작가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두 가지 요소를 활용한다. 첫 번째가 임사체험이고 두 번째가 유체이탈이다. 글에는 따로 분리해 언급했지만 작품 안에서는 이 두 가지를 하나로 활용한다. 야요이가 실현하고자 하는 임사체험 연구의 핵심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다. 야요이는 추녀라는 점, 자신은 어떻게든 사회의 주류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지만 외모 때문에 그 어떠한 노력도 무시 받는다는 점에서 본인의 육체에 대해 혐오와 염증을 지닌 인물이다. 육체가 지닌 한계 때문에 정신마저 오염 받고 있는 야요이는 임사체험에 관심을 가진다. 만약 육체와 영혼이 분리될 수 있다면 인간은 다른 영역에 한 발짝 다가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기존 인간의 영역에서 야요이의 존재는 한계를 지닌다.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서글서글하게 굴어도 육체가 지닌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정신이 분리될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 그녀는 새로운 세계에 접어들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작가는 옛 기담들을 차용한다. 바로 생령과 악령이다. 인간의 몸에서 영혼이 분리될 수 있다면, 이 영혼이 악한 악령이라면 육체는 내버려 두되 영혼만이 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지 않을까. 육체를 잃어버린 야요이는 다중인격을 지닌 치히로의 몸속에서 13번째 인격 이소라가 된다. 이소라는 육체에서 분리되어 살인을 저지른다. 이 지점에서 감독은 중요한 질문을 하나 던진다. 그렇다면 정신이라는 것은 온전하게 분리된 영역인가. 그러니까 착한 부우와 나쁜 부우로 분리된 <드래곤볼>의 마인 부우처럼 착한 마음과 나쁜 마음으로 분리될 수 있느냐는 소리다.

유카리의 캐릭터에 대해 말해보자. 그녀는 감성을 읽을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 마나베와 이야기하던 중 그의 생각에 약간은 실망하게 된다. 마나베는 인류를 눈부신 발전으로 이끈 이성의 발달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해 보이는 감성의 발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감성이란 건 집단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인간을 비롯한 사회성이 발달한 동물들은 이 감성을 통해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기에 뭉칠 수 있었고 이러한 발전을 이룩했다고 말이다. 이 점에 대해 유카리는 의문을 제기한다. 그렇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공감능력은 순전히 남을 위한 능력인가. 나라는 개인을 위해서는 별다른 쓸모가 없는 능력인가. 생각해 보니 그녀는 이 능력을 남을 위해 사용했을 때는 유용함을 느꼈지만 막상 자신을 위해서는 제대로 써 본 적이 없다. 남의 감정에 공감하고 위로를 해줄 때에만 이 능력을 빛을 발하였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왜 할머니가 지진에 대한 정부 정책의 불만을 마음으로만 내뱉는 그 장면이 마음에 걸렸던 걸까. 그건 치히로가 다중인격자가 된 이유와 연관되어 있다. 치히로는 숙부와 숙모의 강압 하에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였다. 치히로라는 아이는 부모의 죽음에 대해서도 제대로 슬퍼할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그리고 사회는 그런 치히로의 마음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치히로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인격들을, 숙부와 숙모의 학대로부터 버티기 위한 인격들을 만들어야 했다. 그 인격들의 역할은 상대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그러니까 남을 위한 인격들이었다. 불행하게도 치히로가 자신을 위해-그러니까 보호가 아닌 반격을 위해 만들어낸 인격들은 사회적으로 용인 받을 수 없는 행위를 하는 살인을 하는 인격이다.

작품은 치히로 스스로가 살인을 하는 인격을 만들어낼 시에 극단적인 결말을 향할 수 있기에 유체이탈과 다중인격을 더한 야요이의 영혼이 사쿠라의 몸속으로 들어와 13번째 인격이 된다는 흥미로운 설정을 택하였다. 하지만 이런 설정은 결말에 이르러 최악으로 다다른다. 이 13번째 인격의 영향으로 새로운 인격이 탄생하고 이 인격은 이소라의 상위버전이라 할 만큼 강력해진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다른 인격들은 이소라의 영향을 받게 된다. 똑똑하고 이성적인 인격들조차 살인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런 결말의 선택은 사회의 발달과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우리는 정이나 배려, 친절에 대해 필요하다 말하지만 이를 굳이 실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감성보다는 이성에 치우친 사고가 더 중요하며 과한 친절과 애정은 손해를 본다고 여긴다.

그러면서 자신은 소외되고 외롭다 여기며 애정을 갈구한다. 자신이 애정을 줄 생각이 없으면서 남은 그러기를 바라는 것이다. 노인들은 마음속으로는 고통을 느끼지만 그 고통을 내뱉는 것이 이성적이지 못한 사고라 여기기에 참는다. 자신의 마음과 동떨어진 행동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가면을 잘 쓰는 사람을 프로패셔널(professional)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가면을 번갈아 가며 쓰는 사람에게 진정한 자신은 누구일까. 그건 또 다른 인격의 생산이요, 수많은 인격 속 소외된 진정한 자신을 웅크리고 웅크리다 결국 극단을 향하는 인격으로 변형시키는 잘못된 수양일 뿐이라고 본다.

기시 유스케는 다음 작품 <검은 집>을 통해 현대 젊은이들의 사고를 꼬집은 적이 있다. 소위 '쿨하다'라고 말하는 사고에 대해 지나친 이성으로 모든 문제를 자기중심으로 바라보는 싸이코패스적 기질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이다. 치히로의 숙부와 숙모는 치히로를 오직 돈으로만 바라보았고 히로코는 논리적인 근거를 내세워 치히로를 적극적으로 구해주고자 하는 의지를 사전에 차단했다.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국가의 도움을 기다리는 게 최선이라 여기며 내면의 고통을 참았다. '당하는 사람이 용기가 없다'는 변명에 대비해 작품은 못생긴 외모에도 사회성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나 결국 본질적인 한계를 느끼는 야요이의 캐릭터를 보여준다. 기시 유스케가 바라보는 사회는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가식과 위선으로 가득한-그래서 또 다른 자신들을 만들어 그 속에 숨어 있어야만 하는 잘못된 세상이 아닌가 싶다. 지진으로 무너진 땅과 건물처럼 현대인의 마음 역시 여러 갈래로 갈라져 무너져 내렸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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