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듣기 싫은 변명도 있는 법이다 '악의 고백'
세상에는 듣기 싫은 변명도 있는 법이다 '악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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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육 범죄를 저지른 사가와 잇세이의 작품, '악의 고백'과 다큐 영화 '카니바'

사가와 잇세이 '악의 고백' 표지 ⓒ 하나북스
사가와 잇세이 '악의 고백' 표지 ⓒ 하나북스

 

 

[루나글로벌스타 김준모 기자]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당시 관람 후 가장 후회했던 영화가 <카니바>였다. 이 영화는 1981년 파리 유학중 한 여학생을 살해한 후 그 신체 일부를 먹는 범죄를 저지른 사가와 잇세이와 그 동생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카니바>는 어두운 화면과 인물의 클로즈업, 잇세이와 그 동생의 이상성욕과 잇세이가 네덜란드 유학생이었던 르네를 죽인 뒤 인육을 먹은 일을 그린 만화 등을 보여준다. 이 작품을 보면서 든 생각은 대체 이들의 이야기에서 무얼 느끼느냐는 것이었다.
 
영화에서의 어두운 이야기는 불쾌한 감정과 찜찜한 여운을 준다. 이런 감정을 선호하는 이들이 있기에 이런 감성의 영화는 만들어진다. 반면 다큐멘터리는 감성을 주는 영화와 다르다. 사실의 전달 또는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드러나야 한다. 이 작품이 사가와 형제가 어떻게 사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면 그들 얼굴의 클로즈업이나 대사가 주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르네의 사건을 자세히 보여주고 잇세이가 일본에 돌아온 뒤 있었던 이야기의 전달에 더 신경을 썼을 것이다. 어린 시절 두 형제의 모습과 그들이 겪는 이상 성욕에 집중한 건 이들이 겪는 생각과 감성의 공감을 의도로 내세운 것이라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 이 작품이 영화라면, 그러니까 픽션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다큐는 실화다. 머릿속으로 하는 반사회적인 상상을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는 건 예술이라 할 수 있지만 이를 실제로 시행하는 건 범죄다. <카니바>는 범죄자를 보여주면서 그의 감정을 보여준다. 공감하기 싫은 역겨운 감정에 동화되라는 듯 어두운 분위기와 클로즈업을 남발한다. 한 마디로 역겹다. 이런 감정을 책에서 느낀 건 사가와 잇세이가 쓴 <악의 고백>이라는 작품을 읽었을 때였다.
 
당시 기자는 스마트폰이 없었다. 대학교 도서관에서 어떤 작품인지도 모르고 책을 골라서 읽곤 했는데 일본 범죄 추리 소설을 좋아해서 제목만 보고 그런 장르라 생각하고 빌렸다. 작고 볼품없는 일본 청년은 프랑스 유학 중 르네라는 큰 키에 아름다운 금발의 외국 여성을 좋아하게 된다. 르네는 문학에 관심이 많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일본 청년과 친해지게 된다. 르네가 품었던 호의와 다르게 일본 청년은 자신이 품은 비정상적인 성적 욕구 때문에 그녀를 먹을 생각을 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카니바'의 사가와 잇세이 ⓒ Norte Productions



일본 청년은 자신이 품은 이상성욕에 대해 세세하게 털어놓는다. 이런 디테일한 묘사와 결말에 이르기 전까지 펼쳐지는 촉촉한 감수성, 충격적인 결말은 하나의 이야기로써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작품을 다 본 뒤 뒤에 적힌 작품설명과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것이 이야기가 아닌 수기라는 걸 알게 된 뒤 긍정적으로 여겼던 감정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문학이 아름다운 건 다양한 감정들을 아우르는 표현과 깊이 때문이다. 그 표현과 깊이가 상상 속에 있기에 문학은 보호받을 수 있다.
 
상상이 아닌 실제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실제 그 일에 종사하거나 경험을 한 사람이 감정과 디테일에서 뛰어난 건 당연하다. 다만 이를 위해 반사회적인 행위, 특히 법을 어기는 행위를 했다면 그 작품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떤 예술도 질서와 도덕 위에 위치해선 안 된다. 사가와 잇세이는 예술을 한 게 아니라 살인을 한 것이다. 살인을 예술로 포장하려는 그의 행동은 저급하며 혐오스럽기만 하다. 사가와 잇세이가 <악의 고백>이라는 책을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사회가 지닌 족쇄가 풀리면서 생겨난 관심에서 비롯되었다.
 
범행을 자백한 잇세이는 정신 감정을 위해 병원으로 보내졌는데 이때 의사가 그가 1살 때 앓은 장염을 뇌염으로 오인해 심신상실 판정을 내려 불구속기소 처분을 받게 되었다. 이후 정신병원에 무기한 입원 조치된 그는 14개월 후 국외 추방 되었으며 일본으로 돌아와 입원하지만 1년 만에 퇴원한다. 당시 일본 경찰은 그를 체포해 경찰에 회부할 예정이었지만 프랑스 경찰 측이 불기소처분 된 사람의 수사 자료는 제공할 수 없다며 수사자료 인도를 거부하면서 사가와 잇세이는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일본 사회는 관심을 보였다. 사가와 잇세이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스테이크 광고를 찍었다. 저급한 AV에 출연하기도 하였으며 자신의 살인 과정을 다룬 만화를 그리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인격모독은 웃음거리로 소비되었다. 법의 처벌이라는 족쇄가 풀린 범죄자는 살인이라는 끔찍한 범죄를 가십거리로 팔아넘겼고 일본 사회는 비난과 매도 대신 관심으로 그를 맞이하였다. <카니바>는 이런 관심이 끝나고 이제는 동생 집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음지의 범죄자를 다시 양지로 끌어 올려 관심을 유도한, 한 마디로 그 의도가 좋지 못한 다큐멘터리라 할 수 있다.
 
<악의 고백> 역시 마찬가지다. 이 책의 내용은 그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태어날 때부터 이런 욕망을 가지고 태어나 어쩔 수 없이 저지른 살인이라며 감수성 짙은 문체에 숨어 이해해 달라 변명한다. 세상에는 듣기 싫은 변명도 있는 법이다. 모든 변명이 의미를 갖고 모든 변명이 귀를 기울일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베스트셀러라는 이유로, 이야기가 흥미롭다는 이유로, 이상 성욕에 대한 심리를 연구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가치가 있다 말하기 힘든 책이 <악의 고백>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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