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를 향한 어린왕자의 촉촉하고도 따뜻한 감성 '슬로우 웨스트'
서부를 향한 어린왕자의 촉촉하고도 따뜻한 감성 '슬로우 웨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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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표지. ⓒ 문학과지성

 

[루나글로벌스타 김준모 기자] *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양 한 마리만 그려줘.'

<어린왕자>의 주인공인 '나'는 비행기 조종사이다. 비행기 고장으로 사막 한 가운데 착륙한 그는 엔진을 수리하던 중 어린왕자를 만나게 된다. 어린왕자는 나에게 양 그림을 그려달라고 한다. 어린 시절 말고는 그림을 그려본 적 없는 나는 양을 그리지만 모두 어린왕자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그려준 상자를 보고 어린왕자는 '봐봐, 이 상자 안에 네가 원하는 양이 있어'라며 만족한다. 

<어린왕자>의 시작은 '나'가 어린 시절 가졌던 그림에 대한 환상을 어린왕자라는 다른 별에서 온 소년을 통해 공감하는 부분에서 시작된다. 이 작품은 지구 밖의 존재를 통해 지구의 생명체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지구인이 가지는 시선이 아닌 색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마치 순수한 어린아이처럼.

영화 <슬로우 웨스트>의 주인공 제이는 16살의 소년이다. 제이는 서부로 떠난 여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 스코틀랜드에서 미국 콜로라도로 향한다. 그는 밤하늘의 별을 쳐다본다. 별을 따라가면 여자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서부는 마치 어린왕자가 자신의 별을 떠나 여행한 주변의 별들처럼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아무도 없는 별에서 혼자 왕 노릇을 하는 사람, 자신은 지질학자라며 탐험가를 구하기 전까지 지도를 만들지 않는 사람, '바쁘다'를 연발하면서 의미 없는 숫자놀음을 하는 사람 등등 어린왕자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제이가 도착한 서부에는 가득하다. 그 대표적인 장면이 제이가 사막 한 가운데에서 한 여행가를 만난 장면이다. 제이에게 따뜻한 차와 모닥불을 제공하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준 로맨틱한 남자는 다음 날 모포 하나만을 남기고 제이의 짐을 모두 훔쳐 사라진다.
 

영화 '슬로우 웨스트' 스틸컷. ⓒ 더 픽쳐스


그런 제이가 만나게 된 인물이 사일러스다. 사일러스는 제이의 보디가드를 자처하지만 실제 목적은 제이의 여자 친구 로즈와 그녀의 아버지의 목에 걸린 현상금이다. <어린왕자>의 '나'가 엔진수리라는 현실적인 목표에 매달린 것처럼 사일러스 역시 현상금이라는 현실적인 가치인 '돈'에 열을 올린다. 

어린왕자가 별을 떠난 이유가 거만한 장미 때문이었다면 제이가 스코틀랜드를 떠난 이유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로즈의 아버지와 로즈를 찾기 위해서다(이 연관성은 '로즈'라는 이름에서 잘 드러난다). 장미가 강한 자존심과 투정으로 어린왕자를 별에서 떠나게 만들었다면 로즈는 사랑으로 제이를 스코틀랜드에서 떠나게 만들었다. 어린왕자가 별에서 장미를 지키기 위해 그녀의 까다로운 요구를 다 들어준 것처럼 제이 역시 로즈를 찾기 위해 수많은 바오밥 나무들과 싸운다.

공간을 '서부'로 옮긴 <어린왕자>의 바오밥 나무는 '폭력'이다. 미국의 역사는 피로 쓰여 졌다. 인디언들을 죽이고 그들의 터전을 파괴해 자신들의 국가를 이루었다. 피로 만들어진 역사인 만큼 당시 서부는 폭력이 지배하는 시대였다. 더 강한 자가 살아남고 약한 자는 죽을 수밖에 없는 양육강식의, 마치 동물의 왕국 같은 시대. 

영화 속에서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식료품점 장면이다. 가난한 부부가 식료품점에 들어오고 그들은 점원을 죽이고 물건을 훔친다. 하지만 그들은 그 자리에 있던 사일러스와 제이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식료품점을 나온 두 사람은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거지꼴의 아이 세 명과 마주친다. 이런 거친 서부라는 배경은 <어린왕자>의 공간성과도 연결된다.
 

영화 '슬로우 웨스트' ⓒ 더 픽쳐스


외딴 별에서 온 어린왕자는 작품이 가지는 동화적인 신비함 때문에 가려져 있지만 사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인물이다. 그가 사는 별에는 어떠한 위험도 없고 고통도 없으며 고민도 없다. 그가 별을 떠난 이유가 장미 때문인데 그가 떠난 이유를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장미의 까탈스러운 성격 때문이다. 즉, 혼자 살던 어린왕자는 갑작스러운 소통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고 장미의 요구사항을 다 들어주다가 혼자 지쳐서 떠나버린 것이다. 

제이 역시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지역의 유지였고 아버지 품에서 온전히 보호받으며 자랐다. 그래서 그는 로즈가 속해있는 거친 세계에 어울릴 수 없기에 그녀의 식구들이 집에 돌아올 때면 침대 밑에 숨어 있었다. 어린왕자와 제이는 사랑하는 존재 때문에 온실 속을 떠났고 거친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어린왕자>는 이를 동화적인 성격을 빌려 모순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타냈고 <슬로우 웨스턴>은 서부라는 피로 얼룩진 역사로 표현하였다.

하지만 <슬로우 웨스턴>은 <어린왕자>의 색깔에만 머무르는 작품이 아니다. 이 작품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처럼 서부극이 가진 고정된 형식을 부인하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바로 '사랑'이다. 서부극의 사랑은 거친 남자들의 로맨스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총을 쥔 이유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또는 그녀에게 피해를 입힌 상대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다. 

한 마디로 '상남자'의 사랑이 서부극의 로맨스이다. 한데 이 작품은 순수한 소년의 사랑을 다룬다. 그의 사랑은 누군가를 지키고 싶다는 욕망이 원천인 서부극의 사랑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차이라면 이 사랑으로 인한 누군가의 변화다. 전형적인 서부극 인물인 사일러스가 제이로 인해 가지는 변화가 이 작품의 포인트라 할 수 있다.

 

영화 '슬로우 웨스트' ⓒ 더 픽쳐스


현상금을 노리던 사일러스는 로즈를 지키기로 마음먹는다. 그 계기는 제이가 가진 순수한 사랑이다. 그의 사랑이 사일러스의 마음을 움직이면서 서부극이 가진 본연의 색깔을 지워버린다. 순정만화에나 나올 법한 순백의 사랑이 거친 남자들의 세계에 들어와 그 중 가장 남성적인 캐릭터를 변화시킨 것이다. 기자는 이 선택을 통한 작품의 방향이 피와 폭력으로 얼룩진 서부극의 의미를 부정하고 사랑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향한 발걸음을 보여줬다는 생각이 든다. 돈을 위해, 명예를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누군가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즉, 인류 전체를 향한 사랑을 지키기 위한 여행으로 작품이 포장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사일러스라는 인물은 <어린왕자>의 '나'와 같은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린 시절 보아뱀을 집어삼킨 코끼리 그림을 그렸고 아무도 이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후 '나'는 어른들이 원하는 일만을 했고 가장 현실적인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그가 어린왕자를 만났을 때, 그는 마음속에 품어왔던 '모자 그림(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어른들이 모자 같다고 한 그 그림)'을 그릴 당시의 마음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사일러스 역시 어린 시절 그런 순수함을 가진 소년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서부라는 공간이 총을 쥐게 만들었고 남을 죽여 돈을 버는 법을 가르쳤을 것이다. 제이를 만난 순간 어린 시절 품어왔던 그 순수했던 마음이 다시 살아난 것이 아닌가 싶다. 어린 아이만이 가질 수 있는 '조건 없는 사랑'이라는 감정 말이다.
 

영화 '슬로우 웨스트' ⓒ 더 픽쳐스
영화 '슬로우 웨스트' ⓒ 더 픽쳐스


작품의 결말 역시 <어린왕자>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왕자가 독사에게 물려 자기 별로 떠난 것처럼 제이는 로즈가 쏜 총에 맞고 죽는다. 이 장면에서 왜 영화는 제이를 죽인 사람을 '로즈'로 설정했을까? 이 부분에서 책 <어린왕자>의 결말이 떠올랐다. 어린왕자가 별을 떠난 이유는 장미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시 별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도 장미를 별에 혼자 두고 왔기 때문이다. 제이를 서부로 안내한 로즈가 그를 서부에서 내보내는(그 형태가 죽음이라 할지라도)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다른 하나는 무게다. 어린왕자는 자신이 죽어야 되는 이유에 대해서 자신의 별에 돌아가기에는 너무 무거워졌다고 말한다. 그의 별은 너무나 가볍기에 여행을 하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된 자신의 '육체'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 여긴 것이다. <슬로우 웨스트>는 <어린왕자>와 반대로 제이가 아닌 로즈가 무거워졌기에 돌아갈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에서 현상금 사냥꾼들과 맞서 싸우는 건 제이가 아닌 로즈와 그 가족들이다. 즉, 그들은 이미 서부의 세계에 익숙해졌고 자신들을 지키는 방법을 터득했다. 반면 제이는 그러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작고 순박한 소년이다. 장미가 무거워지면 어린왕자는 장미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다. 그가 사는 별은 너무나 작기 때문이다. 제이 역시 마찬가지였을지 모른다. 그라는 존재는 로즈를 품기에는 너무나 여리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의 결말에서 <어린왕자>가 보인 게 아닌가 싶다. 

<어린왕자>에서 여우는 어린왕자에게 자신을 길들여달라고 말한다. 후에 여우는 어린왕자와 헤어질 때 슬퍼한다. 이에 어린왕자는 말한다. '이렇게 슬퍼할 거라면 왜 길들여달라고 했느냐'고. 여우는 답한다. '얻은 게 있지. 저 밀밭을 보면 네가 떠오를 거야. 네 머리색이 저 밀밭과 비슷하니까.' 그리고 어린왕자는 장미들을 찾아가 말한다. '너희는 내 장미와 전혀 비슷하지 않다'고. 수많은 여우들 중 '그' 여우가 나와 관계를 맺으면서 내게 하나 뿐인 여우가 된 것처럼 내 장미 역시 나에게는 하나 뿐인 장미라고 말이다.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사람도 결국 하나의 부속품이라고. 세상을 구성하는 일부라고 말이다. 그건 '관계'의 중요성을 모르기 때문에 내뱉는 소리다. 사일러스에게 제이는 그가 서부에서 죽여 온 수많은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용하고 버리고, 돈만 타고 죽여 버리면 그만인 존재들. 여느 서부극들이 그래왔다. 죽이고 또 죽이고. 주연배우를 제외하면 누군가 죽는 것이 그 시대, 총이 전부인 시대에 당연하게 여겨져 왔다. 하지만 사일러스가 제이와 관계를 맺는 순간, 그를 길들이기 시작한 순간 제이는 그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그를 지켜주고 싶고, 그가 생각하는 가치를 소중하게 대해주고 싶은 그런 존재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 영화의 촉촉한 감성은 여기서 온다. <어린왕자>가 이야기했던 관계의 특별함. 소모되는 것이 아닌 생산하는 것이 인간이라고 말하는 특별한 감정. 서부극에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이야기가 황량한 공간 속을 이슬비 같이 적셔주며 톡톡 마음을 건드린다. <용서받지 못한 자>가 충격적인 결말을 통해 서부극의 종말을 알렸다면 <슬로우 웨스트>는 공간의 의미와 감성을 흔들면서 서부극이 주었던 쾌감을 부정, 그 종말을 알렸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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