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을 빼앗는 외계인"...소재는 흥미롭지만 빠져들기 힘든 기요시 월드 '산책하는 침략자'
"개념을 빼앗는 외계인"...소재는 흥미롭지만 빠져들기 힘든 기요시 월드 '산책하는 침략자'
  • 김준모 기자
  • 승인 2018.08.10 17: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리뷰] '큐어', '크리피'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작품 /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 감독상,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영화 '산책하는 침략자' 포스터. ⓒ 와이드 릴리즈(주)
영화 '산책하는 침략자' 포스터. ⓒ 와이드 릴리즈(주)


[루나글로벌스타 김준모 기자] <산책하는 침략자>를 보면서 두 편의 영화가 떠올랐다. 영화의 도입부, 외계인이 인간의 몸으로 들어가 살상을 저지르는 장면은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기생수>를 생각나게 만들었다. <기생수>는 어느 날 외계에서 온 생명체가 인간의 몸을 숙주로 삼아 정신을 지배하고 인간을 잡아먹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 속 세 명의 외계인이 지구로 온 이유는 사전조사다. 지구를 침략하기 전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개념을 모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들은 인간의 몸을 숙주 삼아 개념을 모은다.

두 번째로 생각난 영화는 국내에는 개봉하지 않은(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전작 <해안가로의 여행>이다. 실종된 남편이 귀신이 되어 나타나 아내에게 함께 여행을 제안하는 이 영화처럼 <산책하는 침략자>의 이야기도 실종된 남편이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남편 신지는 외계인에게 몸을 빼앗겼고 부인 나루미는 그런 남편을 여전히 사랑한다. 

외계인들은 낯선 지구에서 헤매지 않기 위해 가이드를 한 명씩 정한다. 가이드의 특권은 개념을 빼앗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는 두 명의 가이드를 중심으로 두 개의 이야기로 나뉘어 진행된다. 첫 번째 가이드는 외계인이 된 남편을 둔 나루미, 두 번째 가이드는 특종을 노리다 외계인 둘과 얽혀버린 기자 사쿠라이다.


외계인이 인간의 '개념'을 수집하다가 감정에 동화되기까지

영화 '산책하는 침략자' 스틸컷. ⓒ 와이드 릴리즈(주)
영화 '산책하는 침략자' 스틸컷. ⓒ 와이드 릴리즈(주)


이들을 통해 이야기하는 개념의 수집. 개념을 수집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인간을 이루는 건 흔히들 육체와 정신이라고 말한다. 정신에는 감정, 생각, 기억 등이 포함된다. 이 감정과 생각, 기억 등을 정리하는 핵심적인 요소가 개념이다. 어떤 단어의 개념을 안다는 건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더 명확히 정리하고 기억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즉 개념을 잃어버린다는 건 자신의 정신적인 능력을 잃어버린다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외계인들에 의해 개념을 빼앗긴 인간은 영혼이 빠져나간 거처럼 멍한 표정을 짓거나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이상 행동을 반복한다.

그렇다면 개념을 빼앗긴다는 건, 어떤 면에서는 행복과 발전을 의미하는 걸까. 영화 속 개념에는 두 가지가 있다. 인간을 '가두는 개념'과 '깨우는 개념'. 신지에게 개념을 빼앗긴 히키코모리는 오히려 자신을 가두던 생각에서 벗어나 집밖으로 나오게 된다. '자신'이라는 개념을 말하기 싫어하는 경찰은 자신이라는 개념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남들보다 훨씬 뒤처진 자신의 처지를 상기하기 싫어 발악한다. 이런 '가두는 개념'과 달리 신지가 얻은 '깨우는 개념'은 사랑이다. 그는 성직자를 만나 사랑이라는 개념에 대해 듣게 되고 이 개념에 호기심이 생긴다. 그리고 나루미를 통해 사랑을 알게 되자 다시 태어난 듯한 활력을 얻게 된다.
 

영화 '산책하는 침략자' 스틸컷. ⓒ 와이드 릴리즈(주)
영화 '산책하는 침략자' 스틸컷. ⓒ 와이드 릴리즈(주)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 속에서 인간이 지니고 있는 개념의 힘은 결국 감정이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그 증거는 신지와 아마노가 보이는 변화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영화를 보고 <기생수>를 떠올린 이유는 단순히 도입부와 인간의 몸을 빼앗는다는 설정이 같기 때문이 아니다. 작품 속 기생 생물들은 인간의 몸을 숙주로 삼으면서 인간의 이성이 아닌 감정에 물들게 된다. 그들은 인간이 지닌 가장 큰 힘이 감정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산책하는 침략자>에서도 외계인들이 감정에 동화되는 순간이 나타난다. 신지는 사랑이라는 개념에 대해 알기 전, 아내 나루미를 껴안는다. 이전까지 감정이 완전 배제된 영혼 없는 모습을 선보이던 그는 '남편'이라는 역할 속에서 '사랑'을 느낀다. 아마노는 가이드이기에 사쿠라이에게는 손을 대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함께 동행을 하면서 그와 가까워진다. 자신들의 편에 서겠다 말하는 사쿠라이에게 영광이라 말하며 웃는 아마노의 모습은 건조하고 이성적인 외계인들끼리의 대화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이런 영화의 전개는 멜로·로맨스라는 장르를 내세웠으나 장르적인 전개 방식이나 쾌감을 전혀 주지 못했던 <해안가로의 여행>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SF라는 장르에 개념을 빼앗는다는 흥미로운 소재에도 불구 그 재미를 살리지 못한다. 대신 이야기 안에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철학적인 메시지를 녹여낸다. 이 지점이 관객들에게 호불호가 갈릴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해안가로의 여행>이 국내에서 이름이 알려진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영화임에도 불구 개봉하지 못한 이유는 장르적인 문법에서 벗어나 만족도를 주기 힘들다는 점, 연출 스타일이 촌스럽다는 점이 이유였던 것으로 보인다.

줄거리 전개가 기존 영화 문법과 달라
 

영화 '산책하는 침략자' 스틸컷. ⓒ 와이드 릴리즈(주)
영화 '산책하는 침략자' 스틸컷. ⓒ 와이드 릴리즈(주)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연출은 다소 심심하고 포인트가 약하다. 관객이 어느 지점에서 재미를 느끼고 어느 지점에서 감동을 느껴야할지 알기 힘들다. 전개가 기존의 문법을 벗어나니 쾌감을 주는 방식도 다르다. 감독이 숨겨둔 자신만의 철학이 있지만 '쉽게 풀어 쓴 철학책도 많은데 굳이 난해한 철학책을 읽어야 하나' 하는 기분이다. 특히 코믹한 요소를 집어넣지만 웃음 포인트를 어디서 잡아야 좋을지 난감한 느낌을 준다.

기자는 기요시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이번 영화 역시 만족스럽다. 소재적인 측면뿐만이 아닌 전개에 있어 신선했고 신지와 나루미의 사랑에서 <해안가로의 여행> 속 미즈키와 유스케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가 떠올라 진한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관객들에게 관람을 추천하기는 힘들다. 

장르적인 재미가 덜하고 소재에 비해 전개는 느슨하고 진부하다. 여기에 뚝 떨어지는 용두사미의 결말은 허무함까지 더해진다. <해안가로의 여행>, <크리피>, <은판 위의 여인>까지. 최근 기요시 감독의 세 작품은 모두 평론가의 평이 어떻든 관객들은 만족을 느끼기 힘든 작품의 연속이었다. 이번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기요시 감독의 이야기와 스타일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관객이라면 상당히 힘든 선택이 되지 않을까 싶은 작품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