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우리 스타의 범죄 54화
[연재/소설] 우리 스타의 범죄 5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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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글로벌스타 김준모 기자] 장 대표한테 전화가 왔다. 말을 더듬어대는 게 어지간히 화가 났나 보다. ,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나도 장 대표 못지않게 화가 났으니까. 새 매니저라는 놈은 촬영장 이탈부터 양다예랑 같은 차에 타고 있었다며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댔다. 스타라는 의식이 없다는 둥, 자꾸 이러면 곤란하다는 둥. 저 나이 먹을 때까지 연예인 매니저나 하는 이유가 눈에 보였다. 대단한 성인군자라도 되는 양 가르치려 드는 저 말투. 청학동에나 어울릴 법한 훈장 새끼한테 차를 멈추라고 했다. 잠시 만두나 같이 먹자며 먹자골목으로 들어갔다. 내가 좋아하는 만두집은 2년 전에 사장님이 중풍으로 일을 그만두면서 문을 닫았다. 그래서 이 골목으론 아무도 오지 않는다. 주먹질을 시작으로 발길질, 목조르기, 니킥, 어퍼컷까지 아는 기술을 다 동원해 때렸다. 몇 대 때리지도 않았는데 숨을 헐떡이더니 일어나지 못했다. 장 대표에게 전화를 거니 다른 사람을 보냈고 난 혼자 집으로 차를 몰았다.

 

-그런데 대표님, 저기 미안한데 지금 내가 전화를 받을 상황이 아니야. 집이 진짜 큰 일 났거든요.

 

사람에게는 그런 심리가 있다. 내꺼면 더 아끼고 싶고 남의 거면 더 막 다루고 싶어 하는 썩어빠진 심리가. 왜 내 여자는 뻐드렁니도 사랑스럽지만 남의 여자는 턱 밑에 난 조그마한 점 하나도 보기 싫지 않나. 모세 놈이 유령이라고 너무 방심했다. 태평하게 있었다고 하는 표현이 좋을 것이다. 녀석이 뭘 하겠어, 해 봤자 냉장고에서 음식이나 어질러 놓겠지. 그런 마음은 문을 연 순간 쏟아지는 물줄기와 함께 젖어버렸다. 몸도 뇌도 마음도 흠뻑 젖어버렸다. 더 이상 물이 흘러나오지 않을 때까지 마당에 멍하니 서 있었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지하 창고를 향했다. 예상했던 대로 물에 푹 잠겨 있다. 어찌해야 되지? 1층만이라도 사람을 불러서 치워야 하나. 물은 2층까지는 올라가지 않았다. 물 내음과 지린내가 진동한다. 온몸에 힘이 빠지는데 순간 다리가 넘어졌다.

 

-망할 새끼! 이제 왔냐?

 

뒤를 돌아보니 모세 놈이 보인다. 본능적으로 뺨을 후려치려는 순간 시선이 위를 향한다.

 

-오랜만이네. 많이 말랐다. 요즘 힘든 가봐?

 

*

 

망할 모세 놈은 2층 옷 방에 집어넣어 버렸다. 닌텐도를 쥐어줬으니 조용히 있을 것이다. 예영이는 내 방으로 들어가더니 플라스틱 약통들을 유심히 바라본다.

 

-너 우리 엄마한테 그랬다며? 어차피 아무 쓸모도 없는 년 행복하게 만들어줬으니 고마워하라고.

-내가 그랬나. 기억이 잘 안 나네.

-허긴 톱스타니 대사 외우기도 바쁘겠지. 현실이랑 카메라 속이랑 막 헷갈리고 그래? 그거 되게 중증인데. 너도 정신병원에 입원해 보는 건 어때?

-미쳤냐. 차 선생님은 최악의 선택을 하신 거야. 그만큼 힘드셨겠지. 자기 커리어를 스스로 단절 내 버렸으니 이렇게 구차 한 방법으로 복수하는 걸 테고 말이야.

-이제 엄마라고 안 부르는 구나. 양심이란 게 있긴 있네.

 

있으니까 이렇게 괴롭겠지. 넌 모를 거야. 매일 어떤 악몽에 시달리는지.

 

-솔직히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 난 당신 집에 갈 수 없는 상태였어. 그래서 다시는 당신을 만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 그 날 이후로 말이야.

 

기억한다. 차 선생님이 입원한 후 집을 찾아갔을 때, 그때 예영이와 눈이 마주쳤다. 진득한 피를 흘리는 그 애의 눈은 슬픔으로 가득했다. 그때 무서워서 도망쳤다. 그 애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현관문 밖으로 튀어나갔다.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돼. 귀신은 지박령이야. 어느 한 공간에 박혀서 빠져나오지 못하지. 차라리 그게 나을 수 있어. 갈 곳 없는 귀신은 길을 떠돌다가 식귀들한테 잡아먹혀 버려. 그 순간 세상에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되어버리지.

 

예영이가 다가온다. 내 옆으로 다가와 손을 잡는다. 우리는 침대 위에 눕는다. 함께 천장을 바라본다.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어. 예영이가 말했다. 이건 기억이다. 우리가 처음 손을 잡았던 날,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본 날, 서로가 아닌 다른 곳에서 사랑을 느낀 날. 그날 왜 나는 다른 곳을 바라봤던 것일까.

 

*

 

-예영아, 무슨 일 있어? 요즘 얼굴이 너무 우울해 보인다, ~

 

엄마의 말 때문일까, 아니면 같은 아픔을 간직한 것에 대한 보호 작용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단순히 스타의 삶에 도취된 거뿐일까. 그가 산 속의 오두막으로 떠난 후 내 삶은 공허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아침은 우울했고 밤은 무서웠다. 엄마는 몇 번이고 그를 찾아가는 걸 만류했다. 찾아가 봐야 좋을 게 없다는, 그가 알아서 돌아오기를 기도해주자는 말만 반복했다. 승조 오빠네 가게를 다시 찾기 시작한 건 엄마가 드라마에 들어가면서다. 난 다시 혼자가 되었고 무력한 삶에 빠졌다. 승조 오빠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이 유일한 하루의 일정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어머, 어머, ! 누구야?

-근데 그 사람이 더 이상 절 좋아하지 않는 거 같아요. 절 피하려고 하거든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마음이 서로 같은지 확신을 못 하겠어요.

-, 사귀는 사람 있구나? 누군지 몰라도 부럽네. 우리 예영이 마음을 사로잡고. 그런데 왜 확신하지 못하겠다는 거니? 잠깐 서로 힘들어서 그런 거일수도 있잖아.

-맞아요. 깊은 터널 속에 들어간 기분이에요. 어두워요.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그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분명 이 어둠 어딘가에 있어야 하는데 보이지 않아요. 그걸 아는데 어둡다는 핑계로 점점 암흑으로 들어가고 있어요. 빠져나오고 싶어요, 오빠.

-좋아하는 사람은? 어둠 속에서 장님으로 살아가라 내버려 두게?

 

오빠는 혼자 있다. 혼자 어둠 속에서 살고 있다. 엄마가 막아버린 두 눈 때문에 더 이상 빛을 보지 못하자 알아서 어둠 속으로 향해버린 것이다.

 

-진짜 그 사람을 사랑하면 예영이 네가 직접 끌고 나와. 사랑은 기다려주지 않아.

 

승조 오빠는 사랑 때문에 방송을 포기했다. 그깟 사랑, 포기하고 다시 시작하는 사랑, 언제고 바뀔 수 있는 사랑이라는 이름 때문에 7년을 어둠에서 살았다. 오빠는 그 어둠이 외롭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늘 위의 별 보다 더 밝은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행복을 느꼈다고 한다. 나도 그러길 바랐다. 경기도 외곽지역의 산장을 향할 때, 산 속의 길을 걸어갈 때, 불이 켜진 산장 앞에 도착했을 때까지 그런 희망이 있었다. 문을 연 순간, 서로의 눈이 마주친 순간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탁상 위에는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마약과 양주들이 가득했고 바닥에는 콘돔과 속옷, 성인기구들이 지저분하게 나뒹굴고 있었다. 붉은 조명 아래 커다란 TV화면은 포르노 영상을 비추었고 소파에 앉은 오빠의 위에는 이름도 모를 여자가 눈이 풀린 채 스스로 허리를 흔드는 중이었다. 그보다 더 마음을 때린 건 오빠의 눈이었다. 흔들리지 않는 그 뻔뻔한 눈빛에 치가 떨려왔다. 입술은 떨림을 움켜쥐고 말이란 걸 내뱉었다.

 

-뭐하는 짓이야, 지금?

 

오빠는 여자를 내팽개쳤다. 바닥에 대자로 뻗은 여자보다 콘돔도 끼지 않은 성기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지금이 아니야. 여기 올 때부터 이랬거든. 미래에도 이럴 거고 말이야.

 

몇 마디 말싸움 후 그는 뛰쳐나갔다. 나는 그의 팔을 움켜쥐었다.

 

변명을 하고자 했던 건 아니다.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독소처럼 담긴 몸속의 교만이 썩은 오물처럼 더러운 말만 내뱉었다.

 

-그래, 거지새끼 하나 구해주니까 공주라도 된 거 같지? 착각하지 마. 넌 고결하지 못해. 더러운 뒷방 오타쿠 무능력자가 너야. 공통점이라면 살면서 한 번도 자기 손으로 돈 못 벌어본 게 전부겠지.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난 오빠 구해주러 왔어! 여기서 나가자! 우리 같이 나가자고!

-싫어! 싫다고! 내가 왜? 내 얼굴을 봐. 불행해 보이니? 아냐. 난 이제야 삶의 고도에 올라왔어. 너라는 짐 때문에 바닥으로 가라앉기 싫다.

-이게 바닥이야!

 

나도 모르게 그의 뺨을 때렸다.

 

-이게 바닥이라고! 모르겠어? 오빠 얼굴을 보라고. 억지로 웃고 있잖아.

 

무언가 심장을 관통했다. 그 얼굴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었다. 팔을 뿌리치고 차를 탔다. 어디든 가고 싶었다. 예영이와 차 선생님이 없는 어디든.

 

차를 막아섰다. 오빠를 구하고 싶었다. 스타란 이름에 가려진 썩어빠진 삶의 아픔을 지워주고 싶었다.

 

시동을 걸었다. 예영이는 비킬 것이다. 저 애에게는 용기란 게 없다.

 

막을 것이다. 오빠는 겁쟁이다. 절대 날 치고 갈 수 없다.

 

그녀는 비킬 것이다.

 

그는 멈출 것이다.

 

그녀는 비킬 것이다.

 

그는 멈출 것이다.

 

마지막이다. 그녀는 비킬 것이다.

 

그는 멈추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그에게 남기고 싶었다. 사랑한다고.

 

*

 

그날 내 눈앞에 비친 건 용서받을 수 없는 최악의 결과였다. 눈물과 콧물은 뇌의 명령을 잊은 채 주구장창 흘러내렸고 무릎은 땅을 파고들 만큼 깊게 뿌리내렸다. 마지막 그 애의 입술이 한 말을 기억한다. 사랑한다고. 난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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