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위 다시보기 #1: 중경삼림
왕가위 다시보기 #1: 중경삼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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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 그래서 수많은 삶 그래서 수많은 인연

1994년 제작된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 [사진 출처: 다음 영화]​
1994년 제작된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 [사진 출처: 다음 영화]​

 

[루나글로벌스타 송승원 평론가] 왕가위 감독의 작품들은 이해의 영역이 아닌 수용의 영역에서 논의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리되지 않는 뭉텅이진 감정선과 평행선을 달리는 서사구조는 그 자체로 하나의 호흡과도 같다. 이를 어떻게 조목조목 해체한다는 말인가.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또한, 왕가위 감독 특유의 정제되지 않은 거친 촬영&연출 기법은 항상 눈에 띈다. 감독의 색채가 이토록 뚜렷하다보니 당연한 소리겠지만 왕가위 감독의 작품은 접할 때마다 항상 지독하게 '왕가위스럽다'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중경삼림> 역시, 지나치게 왕가위스럽다. 그러니 이번에도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우리는 항상 어깨를 스치며 살아가지만 서로를 알지도 못하고 지나친다. 하지만 언젠가는 가까운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왕가위 감독은 위의 나레이션을 서론으로 홍콩에 사는 분주한 사람들의 모습을 핸드헬드 쇼트(흔들림을 강조하는 촬영기법)로 보여주며 영화를 시작한다. 대도시의 역동성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끊임없이 충돌하게 함으로써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낸다. <중경삼림>은 두 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로 이와 같은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들 사이에 접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할 때, 바로 그 순간에 서로의 앞에 존재했을 뿐이다. 인연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떤 인연은 유통기한이 지나도 극복되지 않는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어떤 인연은 유통기한이 지나도 극복되지 않는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첫 번째 에피소드는 경찰 223과 마약중개인의 이야기다. 경찰 223은 만우절인 41일에 여자친구 '메이'에게 이별을 통보받았다. 이별을 만우절 농담이라 믿고 싶었던 그는 그 농담이 한 달만 가기를 바라며 한 달 동안 매일 '51'이 유통기한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모은다. 자신의 생일이기도 한 51일까지 연락이 없다면 사랑의 유통기한도 끝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이 자로 잰 듯 그렇게 깔끔하게 정리될 리가 없다. 누군가를 생각하고 아파야하는 시간이 유통기한이 있어 깔끔하게 정리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삶은 결코 그렇지 않다.

 경찰 223도 이를 알고 있다. 어쩌면 그에게 한 달은 메이를 기다리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메이와의 이별을 받아들이기 위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별에 대한 수긍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폐기처분하기에는 추억과 감정들이 너무 많다. 한때는 유통기한 따위는 없다고 믿어왔던 것들이었다. 4월의 마지막 날, 경찰 223은 여느 날처럼 편의점에서 51일이 유통기한인 통조림을 찾던 중 '유통기한이 다음날인 통조림을 파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짜증을 내는 편의점 직원과 말다툼을 벌인다.

 경찰 223통조림을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아느냐며 직원에게 따진다. 쉽게 만들어지는 인연은 없기에. 메이와의 인연이 그렇게 쉬운 것이었다면 경찰 223이 그렇게 필사적으로 통조림을 모으지도 않았을 것이다. 편의점을 수소문해 결국, 30개의 파인애플 통조림을 모은 경찰 223은 그것들을 한 번에 먹어치우고 게워낸다. 메이는 오지 않았고 유통기한이 지난 파인애플 통조림들은 이제 텅 비었다. 경찰 223은 이제 받아들인다. 이미 유통기한이 지난 인연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놓아줘야 한다는 것을.

 

51일 아침, 난 한가지를 깨닫게 됐다. 메이에게 있어 나는 이 파인애플 통조림과 다를 게 없었다.

 

 마약중개인은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그녀는 언제 비가 올지 몰라 항상 레인코트를 입고, 언제 햇빛이 날지 몰라 항상 선글라스를 쓴다는 과장된 설정으로 빚어진 존재다. 시종일관 변화가 없는 그녀의 표정처럼 그녀는 짐작하기 어려운 넌센스 퀴즈 같다. 겉으로는 세련됐지만 문법에 맞지 않는 영어를 사용할 정도로 미숙하고, 냉철하지만 바로 뒤에서 직원들이 단체로 상품을 가지고 도망가는 것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다. 타인을 해석하는 시선은 이처럼 불안정하다. 우리가 보는 것은 항상 그 사람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는 나레이션을 통해 "사실, 한 사람을 이해한다고 해도 그게 다는 아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니까"라고 말한다. 관객으로서 그녀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듯 그녀 역시, 믿었던 동업자들에게 배신당한다. 그녀는 권총 한 자루를 들고 동업자들을 찾아가 복수를 하고 도망치고 도망쳐서 어느 술집에 들어간다. 그곳에는 자신의 실연을 곱씹는 경찰 223이 있다. 메이를 잊어보고자 문을 열고 처음 들어오는 여자를 사랑하겠다고 생각하는 찰나에. 사랑이든, 우정이든 인연은 항상 어떠한 개연성도 없이 맺어진다. 생각하지도 못한 방식으로.

 경찰 223이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면서 두 사람은 짧은 대화를 나눈다. 그러나 왕가위 감독은 이들의 인연을 두 사람이 처한 상황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경찰 223은 메이를 떠나보냈지만 아직 실연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마약중개인은 복수를 함으로써 발생한 문제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또한, 왕가위 감독은 두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명확한 결론을 내지 않는다. 관객에게 주어진 최종적인 정보는 상이한 두 사람이 서로의 삶에 딱 한 번 스쳤다는 것뿐.

 

 왕가위 감독이 이번 에피소드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통제할 수 없는 인연의 불규칙성' 아닐까. 이미 결론지어진 인연의 맺어짐과 끊어짐은 결코 우리의 노력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나. 경찰 223이 메이가 돌아오기를 바라며 파인애플 통조림을 모으는 행위가 마냥 부질없게 비춰졌던 것도 같은 이유다. 모든 것은 부패한다. 인연까지도. 기한을 넘은 인연은 그 시점부터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부패된다. 보관하는 것보다는 폐기하는 것이 더 어렵다. 친숙했던 농도에 비례해 우리를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파인애플 통조림인 셈이다.

 

누군가를 필요로 할 때 서로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누군가를 필요로 할 때 서로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두 번째 에피소드는 경찰 633과 그가 자주 찾는 식당의 종업원 페이의 이야기다. 경찰 633의 이야기는 특별하지 않다.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있었고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 떠나갔을 뿐이다. 그러나 당사자에게 평범한 이별은 없다. 이별의 아픔을 감내해야하는 그 순간만큼은 모두 비운의 주인공이 된다. 경찰 633은 비누에게 왜 이렇게 야위었냐며 혼잣말을 하는가 하면, 수건에게 그만 좀 처져있으라며 물기를 짜내 창틀에 걸어놓기도 한다. 얼핏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는 연출임에도 거부감이 들지 않는 이유는 왕가위 감독이 우리의 기억 어딘가에 방치된 이별에 대한 보편적인 정서를 정확하게 건드렸기 때문이리라.

 식당에서 일한지 얼마 되지 않은 페이는 그런 경찰 633에게 처음 본 순간부터 호감을 느낀다. 그와 나누는 짧은 대화에 기분이 좋아졌다가도 그가 여자친구 얘기를 꺼내기만 하면 금세 시무룩해지는 그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일대 변화가 생긴다. 경찰 633이 이별한지 며칠 뒤, 그의 여자친구가 식당에 찾아와 그에게 전해달라며 편지봉투를 놓고 떠난다. 봉투 안에는 모진 이별의 말들이 적힌 편지와 경찰 633의 집 열쇠가 들어있다. 페이는 그날부로 경찰 633의 열쇠를 사용해 이따금씩 몰래 그의 아파트를 찾아가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다. 엄연한 범죄행위지만 왕가위 감독은 이에 대한 문제를 '영화적 허용'으로 슬쩍 덮어버린다.

 이처럼 경찰 633의 사연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서사임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페이의 감정선에 초점을 기울이게 되는 까닭은 왕가위 감독이 그녀를 표현하는 방식 때문이다. <중경삼림>의 시그니처 씬이라고 할 수 있는 The Mamas & The Papas'California Dreaming'에 맞춰 페이가 춤을 추는 모습은 형언하기 어려운 그녀의 자유로움과 발랄함을 보여준다. 왕가위 감독의 스타일 중 하나는 이와 같이 작품 속에 주인공의 춤사위를 삽입시킨다는 것이다. <아비정전>, <해피투게더>에서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춤사위는 <중경삼림>만큼이나 유명하다. 그는 왜 그렇게 춤사위에 집착했을까. 삶은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하나의 몸짓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페이의 자유분방함과 발랄함은 시종일관 어두웠던 영화의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그녀는 경찰 633의 집을 찾아가 그의 전 여자친구의 흔적이 배어있는 사물들을 자신의 취향대로 바꿔놓는다. 슬리퍼부터 침대 커버까지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정작 경찰 633은 눈치 채지 못한다. 관찰력이 좋아져 주변 사물을 주의 깊게 살펴보게 됐다고 좋아할 뿐이다. 그러나 이 대사는 단순히 사물을 보는 관찰력이 좋아졌다는 표면적인 의미를 넘어서 전 여자친구에 대한 상념 때문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인연 즉, 페이를 바라볼 수 있게 됐다는 중의적인 대사로도 해석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하나의 생각, 사람에게 사로잡혀 주변의 많은 인연을 놓쳤다고 느껴질 때가 있지 않나.

 결국, 경찰 633은 페이의 만행을 알게 되지만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데이트를 청한다. 첫 단추가 잘못 채워졌지만 두 사람은 그렇게 인연을 맺는다. 두 사람은 다음날 8시에 '캘리포니아'라는 술집에서 만나기로 하지만 페이는 오지 않는다. 경찰 633은 한참이 지나서야 페이가 일하던 식당의 사장에게서 그녀의 편지봉투를 건네받았을 뿐이다. 봉투 안에는 휴지에 그려진 조악한 비행기 티켓이 있다. 시간은 1년 후. 목적지는 지워졌다. 그렇게 1년이 지난다. 경찰 633은 페이가 일하던 식당을 인수해 개업을 준비 중이다. 그런 그 앞에 승무원이 된 페이가 나타난다. 떠난 이유는 진짜 캘리포니아를 가보고 싶었을 뿐이었다고. 이 비양심적일정도로 자유분방함이라니.

 

 경찰 633은 페이에게 묻는다. 지워진 목적지가 어디였냐고. 그런 경찰 633에게 페이는 질문하고, 경찰 633은 또 답한다. 그들만의 아니, 왕가위 감독만의 화법으로. 어떤 인연은 유치하지만 이렇게 자유롭고 쿨하기도 하다. 90년대에 박제돼버린 홍콩의 정서는 그렇게 우리에게 기억된다.

 

"어딜 가고 싶어요?"

"당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영화의 제목인 중경삼림(重慶森林)에서 중경은 홍콩에 위치한 '중경맨션'을 의미한다. 중경맨션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머무르는 곳으로 분주함과 번잡함의 표상이다. 따라서 중경삼림은 다양한 인간군상이 한데 모여 형성된 번잡한 시공간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결코 멈추지 않는 그 시공간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수많은 삶을 형성하고 그 수많은 삶은 서로 부딪치며 수많은 인연을 빚어낸다. 그 과정에서 어떤 인연은 잊혀지고, 어떤 인연은 엇갈리며, 어떤 인연은 비로소 시작된다. 왕가위 감독은 4명의 주인공을 통해 이토록 다양한 인연의 단면들을 하나하나 보여준다. 왕가위 감독이 그려낸 파편화된 그 인연의 단면들은 언젠가 우리의 삶을 통해 기억될 것이다. 마약중개인의 선글라스와 레인코트처럼, 페이의 발랄한 춤사위처럼. 그렇게 오래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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