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우리 스타의 범죄 53화
[연재/소설] 우리 스타의 범죄 5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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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잠들었나 보다. 다연 언니랑 대본 리딩을 주고받은 기억이 마지막이다. 언니는 보이지 않고 반쯤 먹다 남은 비타민워터가 손에 잡혀 있다. 새 촬영이 시작된 날 김진석은 오지 않았다. 차 선생님은 이를 악물었다. 박 작가랑 둘이 이야기를 하시더니 일찍 가버렸다. 오늘 촬영은 중간에 스케줄이 변경되었다. 김진석의 과거가 들어가면서 내 촬영 분은 뒤로 밀리게 되었다. 차 선생님은 촬영의 마지막 날이 복수의 날이 될 거라고 하셨다. 김진석은 마지막 명작을 남기고 떠나게 될 거라고. 떠난다면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이런 꿈을 꾼 적이 있다. 김진석이 바닥에 누워 있다. 숨을 헐떡이는 꼴이 죽어가는 게 분명하다. 그를 집으로 데려와 입혀주고 먹여주고 재워준다. 그 시체 같은 남자를 곁에 두고 같이 살아간다. 차 선생님과 다연 언니한테는 하지 못한 말이 있다. 김진석을 만나기 전, 복수에 성공하면 녀석을 죽이려고 했다. 그 결말이 어찌되건 놈을 죽이는 건 내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나도 죽을 예정이었다. 거울에 비친 새 얼굴을 보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이 얼굴로는 스타성을 갖추기 힘들다. 얼굴은 배우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이번에는 주인공이 되었지만 복수가 끝나면 그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면 이 꺼져버린 거품을 견뎌낼 수 있을까. 그럴 바에야 아픈 과거를 품고 죽어버리자. 그리 결심했다.

 

그를 만나고 모든 게 바뀌었다. 내 마음에는 아직 그 남자의 이름 세 글자가 남아있다. 난 그를 가질 수도, 버릴 수도 없다. 그럴 바에야 실컷 망가진 고장 난 인형을 품는 게 어떨까. 뭉개지고 찢어진 아무도 관심 없는 인형이 내 것이 되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을까. 차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심장이 멎을 거 같다. 김진석이 서 있다. 돌아서려는 그를 잡기 위해 문을 연다.

 

-시츄 머리 매니저는 어디 갔냐?

-다연 언니? 저녁 먹으러 갔겠지. 난 잠깐 잠들어서. 그런데 내 차에는 무슨 일이야?

-네 차는 무슨. 회사 차겠지.

 

그가 문을 닫는다. 자위를 들킨 소녀처럼 부끄러움이 올라온다.

 

-양다예, 너 나 싫어하지?

-, 당연하지! 그걸 말이라고 하냐?

-너 나 용서할 마음 없지?

-그래, 없다! 왜 자꾸 물어?

-복수에 성공하고 나면 뭐하고 싶냐?

 

망상이 극장에서 상영된 것만 같다. 방금 전까지 하던 생각이 본능적으로 튀어나오지 않게 입을 막는다. 생각해, 생각해 보자. 가장 현실적이고 평범한 생각을 해보자. 뭐라 답해야 하지. 뭐라 답해야 좋을까.

 

-, 카페 차릴 거야. 다연 언니랑 둘이.

-피디 놈은?

-헤어질 거야! 어차피 좋아하지도 않는 거 너도 알잖아. 언니랑 둘이 카페 차려서 살 거야.

-그 카페 내가 차려줄게. 아니, 너랑 푸들 매니저 둘이 평생 먹고 살 돈, 내가 줄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회유하는 건가? 아니, 할 거면 내가 아니라 차 선생님이나 박 작가를 해야 정상 아닌가. 왜 나한테 이러는 거지? 배신의 대가치고는 너무 크잖아.

 

-난 말이지, 네가 생각한 거 이상으로 극한의 상황에 몰려 있어. 그러니까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나야만 해. 내가 원하는 결말을 먼저 말해주지. 난 너랑 차 선생님, 두 사람 다 더 이상 날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예전처럼 가까워지기 힘들다면 차라리 남이 되길 원한다고. 보복하거나 그럴 생각은 1도 없어.

 

그를 망가뜨려야 할까. 아니면 지켜줘야 할까. 그저 방관자로 남아 결말을 지켜보는 게 좋은 걸까.

 

-박민주 작가, 대체 누구야. 저 여자, 내 과거에 대해 모두 알고 있어. 차 선생님은 저 여자를 통해 복수를 계획하고 있는 거야. 내 머릿속에 없는 유일한 인물을 통해 말이지. 상대를 알면 대처할 수 있지만 안개에 가려져 있으면 이리 저리 헤매다 상처투성이가 되어 죽기 마련이야. 그러니까 양다예, 부탁할게. 박민주 작가, 대체 어떤 사람이야?

 

뭐라 답해야 할까. 진실을? 거짓을? 아니면 선택적인 정보만을? 그가 날 찾아온 이유를 알겠다. 눈치 챈 것이다. 내가 좋아한다는 걸. 아직 마음을 두고 있다는 걸. 그래서 입을 열어줄 것이란 걸. 마음을 누를 만큼 양다예란 여자는 강하지 않다. 축하해, 네가 이겼어.

 

-박민주는 차 선생님이 정신병원에서 만난 색정증 환자야.

 

*

 

모세는 집을 나섰다. 생각이 바뀐 건 전날 밤이었다. 진석이 코끼리 똥 같이 생긴 친구와 전화를 하는 걸 몰래 들었기 때문이다. 긴 통화의 마지막에 진석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래, 잘 아는 무당말이야. 집에 귀신이 있어서 지옥으로 쫓아버리려고. 잘은 모르는데 꼬맹이 같아. 앵앵거리는 소리가 말이야.

 

개새끼! 그럴 줄 알았다. 아빠를 만나게 해주지 않을 줄 알았어! 모세는 일부러 자는 척했다. 씩씩거리며 화를 내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 집에서 나가자. 그리고 아빠한테 가자. 아빠 집에서 사는 거야. 아빠를 보기만 해도 행복하니까. 집을 나서며 전신사진이 걸린 커다란 액자를 부셔버렸다. 매직 팬으로 소파에 욕 도배를 해 놨다. 휴지로 배수구를 막고 수도꼭지를 틀었다. 마지막으로 대변을 누고 물을 내리지 않았다.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아빠를 금세 찾을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귀신이 되면서 지니게 된 알 수 없는 일곱 번째 감각이 길을 안내해 줄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몸은 힘들지 않았지만 마음이 지쳐갔다. 걷고 걷다 울적해져 바닥에 주저앉았다. 검은 눈의 개와 눈이 마주쳤다. 개는 무언가를 씹고 있다. 모세는 천천히 다가갔다. 어차피 유령인데 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는 고개를 돌려 모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손이 물린 모세는 당황했다. 강한 이빨의 힘이 세 개의 손가락을 잘랐다. 눈에 비친 건 잘근잘근 씹힌 사람의 얼굴이었다. 머리가 반쯤 날아갔으면서 숨을 쉬고 있는 게 이 사람도 귀신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망치고 싶었으나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굳어버린 모세는 다가오는 강아지 앞에 눈을 감았다. 만약 누군가의 손이 모세를 잡아당기지 않았다면 최후의 육신은 갈기갈기 찢겨 영혼이 소멸되었을 것이다.

 

-괜찮니, 꼬마야?

 

겁에 질린 모세는 눈물 젖은 얼굴로 여자를 바라보았다. 단발머리에 하얀 피부를 가진 여자의 머리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다.

 

-누나도 유령이야?

-그래, 누나도 유령이야. 넌 사는 집이 없니? 길 위를 돌아다니는 건 위험해. 식령견들이 떠돌이 귀신들을 청소하거든.

-아냐, 난 집이 있어. 몰라서 못 갈 뿐이야. 누나, 혹시 김원중이라고 알아? 우리 아빠인데 엄청 유명한 가수야.

-....... 미안한데 누나가 죽은 지 꽤 되어서 잘 모르겠어. 집 주소 아니? 누나가 데려다 줄게.

-몰라. 아빠가 보고 싶은데 집 주소를 몰라. 아빠가 집을 이사해 버렸어! 그리고 김진석이, 김진석이 데려다 주지 않아.

-? 누구라고?

-김진석! 김진석 말이야! 그런 놈이 있어. 배우라고 싸가지 없는 새끼. 그 새끼가 날 죽였어. 날 죽여서 이렇게 만들었단 말이야! [루나글로벌스타 김준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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