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혁명을 넘어 J호러의 혁명을 꿈꾸다 ‘오컬트 볼셰비즘’ [BIFAN]
영적 혁명을 넘어 J호러의 혁명을 꿈꾸다 ‘오컬트 볼셰비즘’ [BIF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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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상영작] / '링' '여우령' 각본 타카하시 히로시 감독, '좋아해, 너를' 칸 하나에 주연

 

[루나글로벌스타 김준모 기자] 한 무리의 남녀가 모여 원을 이룬다. 이들은 돌아가면서 그들이 현실에서 경험했던 혹은 꿈에서 경험했던 기묘하고 무서운 체험을 말한다. 무서운 이야기를 하나씩 할 때마다 촛불을 끄는 영적체험인 하쿠모노가타리를 진행 중인 이들의 목적은 또 다른 세계와의 연결이다. 이 연결의 영매(靈媒)인 유키코는 어린 시절 수개월 간 행방불명된 적이 있다. 모임에 모인 이들은 카미카쿠시라 불리는 신의 영역에 숨겨짐-그러니까 또 다른 세계에 숨겨진 것으로 보이는 유키코를 통해 신의 영역에 다가서고자 한다. 그리고 이들이 모인 장소의 벽에는 볼셰비키로 대변되는 레닌 그리고 그의 후계자인 스탈린의 사진이 걸려 있다.

<>, <여우령>의 각본가로 유명한 J호러의 전성기를 이끈 타카하시 히로시는 이 작품의 아이디어를 영적 볼셰비키라는 단어에서 가져왔다고 말한다. 1995년 사이비 종교인 옴진리교의 신도들이 교주의 종말론을 실현시키기 위해 지하철역에 독가스를 살포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 당시 이들은 영적 혁명을 통해 강력한 유대감으로 결속되었다. 영적 볼셰비키는 혁명을 통한 영적 영역의 정화, 이 정화를 느낀 사람들 간의 강력한 유대감, 이 유대감을 통해 실현되는 극단적인 행동과 잘못된 믿음의 결과를 의미한다. 레닌과 스탈린의 사진은 이런 볼셰비키를 상징하며 이 자리에 핸드폰과 영적 매체인 염주 등을 가져와서는 안 되는 이유는 영적 결속에 있다. 외부 세계와의 연락과 보편적인 믿음은 집단의 혁명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런 혁명적인 소재를 더 혁명적인 방식으로 풀어낸다. <오컬트 볼셰비즘>의 전개는 굉장히 생소하다. 하쿠모노가타리의 방식을 차용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영화에서는 기존 공포영화에서 보여주었던 클리셰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음악의 사용, 관객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장면의 전환, 괴기스러운 장면의 연출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심리적으로 조여 오는 맛이 일품이다.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인물들은 표정과 어투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시각적인 공포 대신 심리적인 공포를 극대화 시킨다. 대표적인 장면은 유리코가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이 장면에서 그녀는 자신의 방에 있던 인형, 그 인형이 스스로 걸어 다녔던 장면을 묘사한다.

이는 기존의 J 호러가 심령사진의 시각적인 연출을 추구하며 유령을 어떻게 관객 앞에 보여주어야만 무서울 수 있는가를 고안했던 방향성과 궤를 달리한다. 영화가 관객에게 공포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관객이 스스로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관객은 인물들이 하는 이야기를 강제로 들어야 하며(기존의 공포영화들이 강제로 무서운 장면을 보여주는 거처럼) 그 장면들을 통해 장면을 상상하는 두려움을 경험하게 된다. 수학여행이나 극기훈련 때 듣기 싫은 무서운 이야기를 강제로 듣고 밤잠을 설치는 경험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시각화해내는데 성공한 영화라 할 수 있다.

감독은 영적 볼셰비키라는 단어를 어떻게 하면 혁신적으로표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 거 같다. 최대한 클리셰적인 측면을 피하고 싶다는 감독의 말처럼 관객의 예상을 뛰어넘는 전개가 인상적이다. 다만 기존의 시각적인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 J호러하면 역시 귀신의 등장이 아니겠느냐고 여기는 관객들이라면 약간은 실망할지도 모른다. 또 결말에 있어 감독의 선택이 무얼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어렵기에 난해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색다른 공포체험을 원하는 관객들, 기존의 답습적인 J호러에 지겨움을 느낀 관객들에게는 특별한 선물이 될 거라 여기는 영화다. 마지막으로 타카하시 히로시 감독은 이 영화를 이해함에 있어 한 가지 힌트를 주었다. 그는 이계(이 세계와 또 다른 세계)를 다루어 왔던 다른 공포영화들과는 달리 이 세계도 저 세계도 결국 현실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항상 불안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의미를 전달했던 <바바둑>을 생각해 본다면 그의 영화를 더 알차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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