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우리 스타의 범죄 52화
[연재/소설] 우리 스타의 범죄 5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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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에 아역을 연기하란다. 어처구니가 없다. 아역은 아역인데 15살이다. 15, 까까머리에 아저씨 배낭 같은 가방을 메고 터벅터벅 흙길을 걸어가는 아이. 그 아이는 집을 떠난다. 원대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시궁창 같은 현실을 버리기 위해 집을 떠난다. 그 전에 아이는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한다. 아버지는 아이를 껴안고 말한다. ‘넌 안 된다. 넌 안 된다고.’ 그리고 부르는 이름은 은성이 아니다.

 

이 대본대로라면 난 끝장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연기를 할 수 없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이가 다 빠져버릴 거 같다. PD한테 전화를 걸어 간청했다. 아역을 쓰자고. 제발 아역을 쓰자고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박 작가가 내가 연기해 주길 원한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 김진석은 첫날 촬영도 빠졌으니 변명하지 않았으면 한다.

 

-, 이 병신아! 아빠 만나게 해주겠다면서! 언제 만나게 해줄 건데?

-좀 닥쳐 봐.

-싫어, 안 닥칠 거야! 네가 기다리라고 해서 기다렸잖아! 아빠 데려오란 말이야! 당장 데려오라고!

 

모세 놈이 달려든다. 떼어내려고 해도 필사적으로 붙잡는다. 주먹으로 얼굴을 치니 녀석이 손을 깨문다. 때리고 또 때려도 얼굴에 상처 하나 남지 않는다.

 

-당장 데려오란 말이야!

 

녀석에게 밀려 탁자에 몸을 부딪쳤다. 애새끼가 진짜, 아직 상처도 다 안 아물었는데. 놈이 내 위로 올라탄다. 주먹이 얼굴을 갈기려는 순간 겁에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 친다.

 

-....... 너는........

 

너 본 적 있구나. 이 집에 있으면서 한 번도 못 봤을 리가 없지. 이 응큼한 꼬맹이가 밤에 침실로 들어온 게 분명하다. 귀신이니까 뭐 문을 통과했거나 했겠지.

 

-인사해. 이놈은 어린 시절의 나야.

-, 넌 안 무서운 거야?

-무섭지. 매일 밤 몸이 뜯기는데 안 무섭겠어? 일부러 잠을 안자고 버텼을 때도 있었다고. 사람은 누구나 공포랑 동거 중이야. 폭력적인 아버지, 우울한 어머니, 자살충동에 시달리는 아들, 망나니 외삼촌, 다들 서로가 시한폭탄처럼 여겨지지만 그 폭탄을 안고 터지지 않을 거라는 헛된 믿음 하나로 살아가지.

 

표정이 완전 질렸다. 그만 들어가라고, 이 사악한 원귀(冤鬼).

 

-꼬맹아 너는 일찍 죽어서 모르겠지만 모든 사람들한테 예쁨 받으면서 살 순 없어. 완벽한 인간은 없어. 누구나 실수를 하고 남에게 상처를 주기 마련이야. 그런 순간 하나하나가 쌓이면 공포가 되고 위험이 되는 거야. 그걸 안고 살아가는 게 인생이란 거야, 인마!

 

네 아빠는 꼭 만나게 해주겠다는 각서를 써 주고서야 놈은 소파로 돌아갔다. 다시 힘을 내세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박작가 이 씨발년, 도대체 무슨 작정인 거야? 전화를 거니 통화음만 울린다. 그래, 차 선생님이랑 둘이서 잘 해봐라. 나라고 가만히 있을 거 같아! 고개를 돌리다 벽거울 속 모습과 눈이 마주쳤다. 이마가 미세하게 올라와 있다.

 

*

 

-아뇨, 안 돼요. 무조건 진석 씨가 하세용~ 저 분명하게 말했어요. 당장 카메라 앞에 서서 연기해요, 당장!

-박 작가, 장난치지 마. 내가 뭔 중학생 역을 연기해?

-진석 씨, 그냥 갑시다. 드라마에서 이러는 게 한 두 번이에요?

 

촬영장을 빠져나왔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 새로 온 매니저는 빨리 촬영에 들어가자며 성화다. 차라리 경우 놈이 나았다. 그 새끼는 목소리라도 평범했지 이 인간은 저음인 게 재수 없다. 일단 카메라 앞에 섰다. 감정을 최대한 넣지 않으려 노력했다. 평범하게 대사를 내뱉으려 애썼다. 그럴 때마다 검은 영혼이 심장을 타고 올라 힘줄을 짓눌렀다.

 

-껌 사세요. 제발 껌 좀 사주세요. 부탁입니다, 제발.

 

무릎을 꿇는다. 아주머니 앞에 껌을 내밀고 애원한다. 아주머니가 눈길을 피하자 팔을 붙잡는다.

 

-이깟 껌 하나 사주는 거 뭐 어렵다고 지랄이야? 하나 사 달라고! 3천원만 달란 말이야!

 

아주머니는 겁먹은 얼굴로 왜 그러냐며 울먹인다. 팔에 힘이 강해질수록 주변 사람들의 표정도 험악해진다. 등산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가와 그러지 말라 타이른다. 그 남자에게도 껌을 사 달라 한다. 남자는 그냥 가라말하고 나는 제발 사 달라 말하고. 말투는 점점 협박으로 변하고........ 변하고........

 

-씨발, 사 달라고! 제발 사 달라고! 사 줘! 사 줘어~~~~~

 

바닥을 뒹굴었다. 스탭들의 당황한 표정이 보인다. 그래, 너희들은 모르겠지. 껌 하나 팔기 위해서 이런 쌩쇼까지 했던 거지새끼가 있었다는 걸.

 

-. , 김진석! 꼬장 부리는 거야? 뭐하는 거야, 지금?

 

너야 말로 뭐하는 거야? 이게 진짜 내 모습이야. 당시의 진짜 내 모습이라고. 현기증이 올라온다. 일어서려다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상처들이 다시 벌어진 기분이다. 스탭들이 달려와 부축한다. , 도저히 못해먹겠네. 박 작가 앞에서 대본을 찢어 얼굴에 던졌다.

 

-아역 써, 당장. 난 못 하니까 여기 있는 사람들 손가락 빨게 하고 싶지 않으면 어디 가서 애새끼 하나 데려와 촬영 시키라고.

-싫다면? 주연 배우가 책임감 없이 뭐하는 짓이야, 이게?

 

그러거나 말거나. 매니저 놈의 손을 뿌리치고 나왔다. 단역 대기실로 마련해 둔 직원 창고를 향했다. 단역들이 다 촬영장에 있으니 여기 자리 잡고 쉴 생각으로 말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 세 발자국쯤 걸었을까. 앉을 만한 상자까지는 아직 5걸음 더 남았는데 다리에 힘이 풀렸다. 방금 전 충격 때문이냐고. 아니, 무엇인가 등을 내리쳤다. 뒤를 돌아볼 틈도 없이 다시 무엇인가 등을 때렸다. 상처가 더 벌어진 기분이다. 겨우 두 대 맞았는데 정신을 못 차리겠다. 뒤를 돌아보려니 다시 한 방 내리친다. 구토가 올라온다. 다리에 힘이 완전히 풀려 움직이기 힘들다. 쿨럭이던 중에 바닥에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귀를 때린다. 그리고 발소리, 문이 열리는 소리, 공기가 가만히 허공을 맴도는 소리. 살짝 몸을 돌려 뒤를 바라보니 노가 있다. 저걸로 사람을 때릴 생각을 하다니, 대체 누굴까.

 

단역 배우들이 올 때까지 일부러 누워있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입에 손을 넣어 억지로 헛구역질을 했다. 다들 당황한 표정으로 날 일으켜 세웠다. 노로 누군가 폭행을 했다고 말했다. 역무원은 이쪽으로는 CCTV가 없어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늘 촬영은 도저히 불가능할 거 같다고 말했다. 한 명씩 눈을 마주쳤다. 이 중에 있는 걸까, 김동수의 조력자가. 그 녀석이 혼자 복수하려고 시도하는 걸까. 오늘 촬영장에 차 선생님은 오지 않았다. 양다예는 저녁 촬영이라 차에서 대기 중이다. 그럼 누굴까. 대체 누가 날 노로 팬 걸까.

 

-당신, 정말 안 찍을 거야?

-안 찍는다고요. 작가님이 다시 쓰던가 아니면 아역 배우를 쓰세요. 왜 자꾸 도돌이표를 만듭니까.

-진짜 후회 안 해? 강철 심장일수록 깨지면 조각이 더 깊게 파고들 텐데.

-뜨거운 열이 가해지면 모를까 그런 차가운 말투로는 더 단단해질 거 같은데?

 

미안한 얘기지만 원섭이가 빠진 게 큰 도움이 되었다. 박 작가는 함부로 주인공을 바꿀 수 없다. 날 빼버리거나 분량을 줄이면 작품은 망한다. 새 배우를 투입하기에는 위험요소가 많다. 탑급 중에 들어올 놈도 없으며 신인을 띄우자니 부담이 크다. 협박은 할 수 있겠지. 하지만 폭로전은 가지 않을 것이다. 그건 차 선생님의 스타일이 아니며 무엇보다 예영이에 대한 예우가 아니니까. 폭력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이쪽도 가만있진 않을 거다. 장 대표는 우스워도 장 회장은 무서우니까.

 

-진석아, 촬영을 거부했다면서?

 

차 선생님, 그런 부드러운 미소 짓지 마세요. 역겨워요. 당신은 더 이상 내 엄마가 아니잖아요. 선생님은 박 작가가 나간 문으로 들어오더니 맞은편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하필 스탭들이 휴게실을 흡연실로 잡아서 밖에서 안이 다 보인다. 우리 둘이 이러고 있으면 친한 줄 알겠어요.

 

-막 가자는 거니? 조금은 실망인데? 배우가 연출과 작가 말을 듣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내가 침이 마르도록 말했는데 전혀 배우질 못했구나.

-저도 배우 짬밥이 10년이나 되었는데 고집 좀 부려도 되는 거 아니겠어요.

-군대는 빼야 되지 않겠니? 암튼 굉장히 실망했어. 네 연기에 말이야. 뒤에서 다 지켜보고 있었거든. 정말 못하더구나. 전에 그러고 살았었나봐. 내가 구해주기 전에.

-, 선생님이셨구나. 사람 등짝을 노로 스매싱 갈긴 게. 그리고 말 똑바로 하세요. 구해준 건 저죠. 우울증에 히키코모리 같은 당신 딸내미 잠시나마 인간 대접 해줬잖아.

 

선생님, 이 악문 거 다 보입니다. 조금은 더 솔직해져 보시죠.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화를 내 보라고요. 이젠 당신 마음대로 안 될 겁니다. 폭주해 보세요. 난리 쳐 보세요. 그럴수록 당신만 목이 졸릴 겁니다.

 

-그딴 말 내뱉으면 내가 화낼 줄 알았니.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 수면제를 미친 듯이 준단다. 치료라는 게 별 거 없어. 상담 몇 번 하고 하루 종일 재우는 거지. 그러다 보면 온몸에 기운이 다 빠져버려. 놀라운 건 그 과정에서 감성은 다 죽어버리고 이성만 남는단다. 이성적인 사람은 감성을 더 냉정하게 바라보지. 난 내 복수계획을 위해 한 가지 카드만 준비한 게 아니야. 복수에 불타서 계획이 실패하면 극단적인 방법을 쓸 생각은 애초에 1도 하지 않았단다.

 

차 선생님은 자신의 핸드폰을 내 앞으로 내민다. 헉 소리가 나려는 걸 가까스로 집어삼켰다. 본능적으로 일어섰다. 흥분보다는 몸으로 영상을 가려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차 선생님은 병원 침대에 누워만 있던 게 아니다. 자신을 떠난 아들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아는 지인들을 총 동원해 들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저급한 계획을 세웠겠지.

 

-너랑 민주 섹스 비디오, 공개되면 어떻게 될까. 남자라서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 민주는 가명을 써서라도 뒤에서 글만 쓰면 그만이야. 그런데 넌. 깃털이 다 빠진 새가 추락하면 살 수 있을까. 말투부터 행동까지 저질스러운 침대 위의 왕을 대중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잘 생각해. 이 작품의 마지막에서 넌 끝장 나. 하지만 지금 끝장나면 마지막도 남지 않아. 더 싸워 볼 기회도 남지 않고 끝나는 거야. 침대 위에서 쓸 힘, 카메라 앞에서 써 보렴. 혹시 아니? 기적이 일어날지[루나글로벌스타 김준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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