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디기 힘든 90분의 역겨운 시간 ‘카니바’ [BIF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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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상영작] / '악의 고백' 사가와 잇세이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루나글로벌스타 김준모 기자] 필자는 대학교 2학년 때 처음 스마트폰을 샀다. 대학교 1학년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면 아무런 정보 없이 제목이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골랐다. ‘악의 고백역시 단순히 제목에 끌려 빌린 책이다.

처음에는 이 작품이 소설인 줄 알았다. 섬세하게 자신의 페티쉬를 고백하는 심리묘사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말 역시 충격적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작가 사가와 잇세이가 실제로 행한 행동을 적은 글이라는 걸 알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1981년 파리 유학 중 네덜란드 유학생 르네를 총으로 쏴 죽인 뒤 그 시체를 먹었다. 그는 카니발리즘 환자였고 이전에도 유학 생활 중 다른 집에 침입해 식인을 하려다 실패한 전적이 있다. 사가와 잇세이는 정신병원에 몇 년 수용된 것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 이는 프랑스와 일본의 법적 절차 문제로 이후 그는 일본에 들어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스테이크 광고도 찍게 되면서 큰 논란이 된다.

한동안 잊힌 사가와 잇세이의 이름은 2012년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된다. 그것도 국내에서 말이다. 정재영과 박시후가 주연을 맡은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가 사가와 잇세이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살인범이 공소시효가 지나자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는 영화의 내용은 실제 사가와 잇세이의 삶과 같다. 그리고 2018, 부천 국제 판타스틱영화제에서 다시 한 번 이 남자의 이름이 등장했다. 30년째 처벌 받지 않고 동생과 은거 중인 그의 이야기가 다큐멘터리로 등장한 것이다.

작품은 대부분의 시간을 사가와 잇세이를 클로즈업 하는데 할애한다. 화면을 가득 채운 그의 얼굴, 초점을 알 수 없이 흐릿해지는 화면, 쩝쩝거리는 입의 소리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역겨움을 준다. 왜냐하면 이 관람은 카니발리즘이라는 이상 성욕을 지닌 잔인한 살인범을 가장 가까이서 바라보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사가와 잇세이는 일본으로 돌아와 소설 <악의 고백>을 쓴 것 뿐만 아니라 그녀를 죽이는 장면을 그린 만화도 그렸다. 이 만화의 장면은 참으로 역겨운데 그가 가슴이나 엉덩이 살을 잘라 먹는 장면이나 죽은 르네의 목을 잘라 들고 발기가 된 모습을 그린 장면은 동생인 사가와 준도 보기 힘들다 말한다. 준은 형의 이상 성적 페티쉬를 이해해 주는 거처럼 말하나 마지막 순간 결론은 항상 그래도 죽이는 건 아니야라는 답을 내린다. 그는 죽지 않고 자신의 살을 내 줄 희귀 성욕을 지닌 여자가 있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에 동조하는 잇세이에게 그래도 형은 여자를 죽였을 거잖아라며 결론적으로 형은 살인자라는 답정너 식의 말을 건넨다. 준이 어느 정도 사가와 잇세이의 심리에 동조하는 이유는 그 역시 이상 성욕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준과 잇세이의 어린 시절 영상에서 둘은 마치 쌍둥이처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행동을 한다. 잇세이는 AV에 출연했고 준도 AV를 보는 거처럼 말한다. 이들은 같은 교육을 받고 같은 가정환경에서 자랐기에 같은 이상성욕을 소유하고 있다. 준은 자신의 팔에 상처를 낸다. 그 상처가 주는 쾌감이 그의 성욕을 충족시킨다.

이들 형제는 공통적으로 외유내강이다. 겉모습은 나약해 보이지만 내적인 성적 욕구는 그 어떤 남성보다 강하며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형태를 취해야 한다. 이는 그들의 가정환경과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잇세이는 디즈니나 지브리의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지만 동시에 여자를 먹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인다.

그의 마음은 부유했던 가정의 밝은 면과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암적인 부분이 충돌을 거듭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충돌의 근거는 사가와 잇세이 뿐만이 아닌 사가와 준 역시 비슷한 성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이들은 불안하다. 내면의 불안은 이상을 낳는다. 사가와 잇세이는 <악의 고백>에서 서술했듯 자신의 외형적인 왜소함에 대해 열등감이 있었고 이 열등감은 서구권에서 더 강박으로 다가왔다. 작품은 이런 불안을 초점 없는 클로즈업으로 대변한다. 영화의 불안한 구도는 악을 틀에 가두기보다는 풀어놓으면서 익숙함을 배반한다.

익숙하지 않은 악과의 대면에서 관객들은 불쾌함과 역겨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이상 성욕에 대한 이해 또는 해결을 촉구하는 작품이 아니다. 그 성욕을 실현한 범죄자를 바라보며 불안과 혼란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다큐멘터리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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