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랑, 하기 싫다...사랑의 염증을 보여주는 영화 '나라타주'
이런 사랑, 하기 싫다...사랑의 염증을 보여주는 영화 '나라타주'
  • 김준모 기자
  • 승인 2018.07.11 2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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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 아리무라 카스미 주연

 

[루나글로벌스타 김준모 기자] 흔히 강할수록 지는 게 사랑이라고 한다. 그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 더 강할수록 내가 더 상처 입게 된다. 이런 감정을 나쁘게 말하면 집착이라 할 수 있다. 원래 사랑은 집착이다. 아무런 조건 없이 마음을 주는 그 감정을 집착 말고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 <나라타주>는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 특유의 느린 호흡과 달리 격렬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흐름만 느릴 뿐 흐르는 감정은 소용돌이처럼 요동친다. 사랑은 인류가 겪은 최초의 불평등이라 한다. 내가 그 사람에게 아무리 잘 대해주고 헌신을 다해도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원하는 결실을 얻을 수 없다. 헌데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랑은 누구나 추구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랑받고 싶어 하며 사랑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다. 이 영화의 집착은 이런 심리에서 비롯된다.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세 가지 측면에서 비판한다. 첫 번째는 하야마 선생의 어장관리, 두 번째는 오노의 데이트 폭력, 세 번째는 하야마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즈미의 답답함이다. 먼저 세 번째 답답함-어찌 생각하면 긴 영화의 흐름을 더 느리게 만드는 이 요소는 마지막 결말부에 다다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이 과정까지 가는 길이 힘들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관객은 이 인내를 굳이 감내할 필요가 없기에 영화에 답이 나와 있음에도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고 난 관객들은 하야마 선생에게 큰 분노를 느낀다. 그가 어장남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야마 선생은 정신적으로 문제를 겪은 아내가 집 창고에 불을 낸 뒤 별거 중이지만 엄연한 유부남이다. 하지만 그는 자꾸만 이즈미에게 여지를 준다. 딱 잘라 그녀를 거부하거나 완벽하게 마음을 받아주지 못한다. 이즈미가 다가서면 물러나고 이즈미가 물러서면 다가간다.

 

 

하야마는 사랑이 두렵지만 동시에 사랑받고 싶어 한다. 그는 아내를 버렸다는 사회적인 질타가 두렵지만 더 이상 아내를 사랑하지 않기에 합치고 싶지 않다. 하야마는 아내의 문제로 힘들었고 겉으로는 밝고 따뜻한 선생을 연기하며 사랑을 주었지만 받지는 못했다. 그에게 이즈미는 확실한 사랑을 준 존재이며 그 역시 사랑을 느끼기에 떠나보내고 싶지 않다. 그 역시 사랑받고 싶고 사랑할 수 있는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흔히들 말하는 어장관리와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장관리는 얘도 아깝고 쟤도 아까워서 자기 어항에 가둬놓고 구경하는 걸 말한다. 하지만 하야마의 심리에는 그런 관조의 여유 따윈 없다. 그는 사랑이 고프고 사랑에 갈증을 느낀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보았을 때 지탄 받을 행동이지만 이를 멈출 수 없다.

 

 

오노의 경우 데이트 폭력을 행사하는데 그의 사랑은 굉장히 일방적이다. 큰 키에 잘생긴 얼굴을 가진 오노는 여자 선배들의 고백을 받을 만큼 인기남이다. 그는 그런 구애들을 거부했다고 말한다. 오는 사랑을 다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가 원하는 사랑만 하는 사람이 있다. 후자인 오노는 자신이 원하는 사랑인 이즈미를 손에 넣었다 생각했으나 그녀가 하야마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낌새를 알아차리자 집착하기 시작한다. 오노는 사랑에 있어 어설픈 모습들을 보인다. 화를 내다 너는 내꺼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강압적인 섹스를 시도한다. 헤어질 때의 장면은 어떤가. 무릎이라도 꿇으라는 말에 무릎을 꿇으니 당황하고 자신이 준 신발을 두고 가라는 말에 진짜 신발을 벗자 놀란다. 그는 떠나가는 상대를 붙잡을 만한 필살기 하나 제대로 가지고 있지 못하다. 사랑에 있어 경험이 적고 어리숙하며 이기적이기에 내가 준 사랑만큼 받고 싶어한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봄의 눈>, <클로즈드 노트>로 일본을 대표하는 로맨스 영화감독이지만 특유의 느린 전개로 호불호가 갈리는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의 작품답게 전개가 굉장히 느리다. 이런 느린 전개를 택한 이유는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인물 심리를 명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 영화화에서 크게 재미를 보지 못하는 이유는 글로 서술하듯 풀어내는 심리를 컷이라는 작은 화면과 짧은 시간에 담아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감독은 이즈미의 내레이션과 인물 간의 장면을 많이 집어넣어 심리에 있어 공감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벌고자 한다. 두 번째는 제목 나라타주의 의미를 살리기 위한 연출법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라타주는 내레이션(Narration)과 몽타주(montage)의 합성어다.

 

 

사랑에 대해 참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드는 제목이라 할 수 있다. 사랑은 하나하나의 장면(몽타주)을 자신만의 언어(내레이션)로 풀어내는 과정이다. 그래서 사랑의 추억은 사람마다 다르다. 같은 장면이라도 서술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내레이션의 혜택을 얻은 이는 이즈미다. 그러하기에 이 사랑 이야기는 그녀의 시점만으로 쓰여 있다. 하지만 서술트릭을 쓰고자 하는 의도는 드러나지 않는다. 몽타주는 해석할 여지를 준다. 그리고 몽타주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매체가 영화다. 감독은 수많은 장면 속 인물들을 통해 이즈미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동시에 하야마와 오노의 모습도 바라보라 말한다. 만약 이즈미를 중심으로 빠른 템포로 영화가 진행되었다면 정말어장남과 폭력남 사이에 낀 답답녀의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감독은 정말 하기 싫은 사랑을 그려보고 싶었다고 한다. 마츠모토 준과 사카구치 켄타로라는 두 미남 배우를 데리고 하기 싫은 사랑이라니. 얼굴만 봐도 사랑에 빠질 것만 같은 두 남자는 감독의 의도대로 참 곁에 두기 싫은 사람을 연기한다. 울적한 어장남 하야마와 미성숙한 폭력남 오노. 이 둘의 연기도 돋보였으나 무엇보다 내레이션이라는 큰 중책을 맡은 아리무라 카스미의 연기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이즈미라는 여성 그 자체를 온전하게 보존하고 그녀의 캐릭터를 관객들에게 깊게 각인시킬 수 있었던 건-무엇보다 이즈미를 통해 사랑의 염증을 통렬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건 아리무라 카스미의 연기력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사랑의 집착은 인간의 본성이다.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 한다. 다만 그 사랑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어야만 한다. 사랑은 운명처럼 다가오고 우연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 순간의 감정을 기나긴 변명으로 바라보는 영화가 <나라타주>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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