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비극을 품은 격조 있는 스릴러 '킬링 디어'
신화의 비극을 품은 격조 있는 스릴러 '킬링 디어'
  • 김준모 기자
  • 승인 2018.07.09 23: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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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2일 개봉예정 /칸 영화제 각본상 수상 / '송곳니' '더 랍스터'의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루나글로벌스타 김준모 기자] <킬링 디어>는 에우리피데스의 연극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를 모티브로 삼은 작품이다.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는 위기에 처한 트로이 정벌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연합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과 클리타임네스트라의 딸 이피게네이아의 숭고한 희생을 다룬 비극이다. 영화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비극을 현대에 재현하고자 한다. 이런 특징이 나타나는 게 연좌제 그리고 신탁의 운명론과 같은 구조이다. 외과의사인 스티븐이 과거에 한 잘못으로 가족들이 저주의 대상이 된다는 이야기는 선대의 잘못이 후대에 영향을 끼치는 신화의 이야기를 보는 듯하다. 또 소년 마틴이 내리는 저주는 신탁의 운명론처럼 스티븐이 아무리 애를 써도 빠져나오기 힘들다.

 

 

 

이런 기본 골격 속에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전작 <송곳니><더 랍스터>가 생각나게 만드는 연출을 보여준다. 첫 번째는 속박이다. <송곳니>는 집이 <더 랍스터>는 사랑이 사람들을 속박하는 소재로 활용되었다. <킬링 디어>에서는 가족이 이런 존재가 된다. 스티븐은 잘 나가는 외과 의사인 반면 마틴은 어머니와 단 둘이 살아가는 학생일 뿐이다. 헌데 가족의 죽음 예고는 그를 빠져나올 수 없는 속박의 그물로 붙잡는다. 두 번째는 인간에 대한 염증과 공포다. 그의 영화들은 주어진 속박 속에서 또는 그 속박을 지키기 위해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지고 나약해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를 통해 관객은 인간의 존재 혹은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염증을 품게 된다. <킬링 디어>는 이런 염증을 더 심화시키는 요소가 있다. 바로 죽음을 둘러싼 가족 간의 눈치 게임이다.

아버지는 자녀들이 다니던 학교에 찾아가 누가 더 우수한가에 대해 묻는다. 자신도 죽음의 범위에 들어간 어머니는 나도 당신도 애 하나 정도는 더 낳을 수 있다고 말한다. 심지어 자신은 시험관 아기라도 낳을 수 있다 어필한다. 이는 두 아이 중 하나를 선택해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리는 <소피의 선택>의 소피를 생각할 때 불편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모습은 부모들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다. 자식들 역시 마찬가지다. 아들과 딸은 아버지에게 조금이라도 더 자신들을 어필하기 위해 노력한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신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 익숙하고 굴곡이 적은 스토리를 택했다는 점에서 지루해질 수 있는 작품을 독특한 연출을 통해 극복해 낸다.

 

 

 

첫 번째는 소리다. 영화는 잡음이 많다. 음악이나 대화 같은 잡음이 아니다. 고장 난 기계음과 같은 잡음들이 영화 곳곳에 등장한다. 이는 전체적인 분위기를 무겁게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음악이 줄 수 있는 가벼움이나 침묵이 줄 수 있는 지루함을 벗어나 긴장감과 스릴감을 느끼게 하는 역할을 한다. 두 번째는 카메라의 구도다. 영화는 유독 크게 구도를 잡는다. 대표적인 장면이 밥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다 쓰러지는 장면이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 보는 또는 위에서 전체를 바라보는 구도는 마치 신이 되어 인간세상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신화적인 요소를 카메라 구도로 잡아줌과 동시에 인물의 세세한 표정을 잡는 컷들과 대조적인 느낌을 주면서 강약을 살리는 리듬감을 준다.

마지막으로 작품의 주제에 대해 나름의 생각을 써볼까 한다. 원제 <The Killing of a Sacred Deer>가 의미하듯 이 작품은 신성한 사슴의 죽음을 이야기한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와 연관되어 있다. 아가멤논은 출정식 전 아르테미스 여신의 사슴을 죽였고 이에 대한 벌로 딸을 산 제물로 바치라는 신탁을 받게 된다. 잘못을 저지른 건 아가멤논이지만 신탁에 의해 저주는 자식세대가 물려받게 된다. 그리고 이피게네이아의 희생은 아가멤논 가문의 저주의 시작이었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아가멤논은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헌데 아가멤논 가문은 처음부터 저주를 받은 가문이다.

 

 

 

그의 증조할아버지인 탄탈로스가 아들 펠롭스를 죽여 음식으로 만든 뒤 신들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내놓았던 그 순간부터 가문의 저주는 시작되었다. 영화의 처음 심장이 등장하는 장면과 쓰레기통 위로 떨어지는 피 묻은 수술 장갑 장면은 이런 지점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스티븐은 능력 있는 의사지만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듯 음주 후 수술을 하곤 했다. 그는 뛰어오르는 심장처럼 강한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존재지만 동시에 쓰레기통처럼 한 사람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다. 그는 신들의 능력을 시험하려다 나락으로 떨어진 탄탈로스처럼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려다 사고를 치고 만다. 그리고 그 피는 자식 세대를 향해 스며들어간다.

아가멤논 역시 주변의 조언을 무시한 채 사슴을 잡았다는 점에서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의사의 금기를 어긴 스티븐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이들의 죄는 생명과 연관되어 있으며 이에 따른 저주는 희생을 통해 풀리기 때문에 신성의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신성은 함부로 범접하거나 다가설 수 없기에 인간의 힘으로는 풀 수 없다. 스티븐은 이성을 잃고 날뛰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신은 운명의 밧줄을 더 세게 조른다. 감독은 고대의 운명적 비극론을 현대로 가져오면서 인간의 나약함과 교만함, 이로 인한 염증과 혐오를 긴장감 넘치게 스크린으로 옮겨 놓는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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