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우리 스타의 범죄 40화
[연재/소설] 우리 스타의 범죄 40화
  • 김준모 기자
  • 승인 2018.06.08 0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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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글로벌스타 김준모 기자]

차 선생님은 냅다 뺨을 후려갈겼다. 쩍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프랑스에서의 마지막 밤이 최악으로 치닫는 굉음이었다. 방금 전까지 울고 웃고 떠들고 했던 순간들이 욕조 속의 잡념처럼 여겨졌다. 반대쪽 팔이 다른 뺨을 갈겼다. 또 다시 또 다시 뺨을 때리고 또 때렸다. 고통이 느껴질 즈음에 손은 머리를 때렸다. 머리를 쥐어박고 또 쥐어박았다. 머리는 엉망이 되었고 문밖에서 예영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주 교만하구나. 교만하고 또 교만해. 네 꿈이 겨우 이 정도였니? 해외영화제에서 상 하나 받으면 끝난 거야? 네 배우 인생이 그걸로 끝이냐고!

-내가 배우를 그만하겠다고 한 게 아니잖아. 결혼만 하겠다고. 그게 그렇게 큰 잘못이야?

-그래, 잘못이야. 사람들이 널 왜 좋아할까? 연기를 잘해서? 캐릭터 표현력이 좋아서? 아니, 다 아니야. 네 얼굴 때문이야. 네 외모에서 판타지를 느끼는 거라고. 결혼은 현실이란다. 누가 현실을 좋아하겠니. 스타는 신비로워야 하는 거야. 집에 가서 아내랑 애랑 지내는 건 일상이야. 네가 일상에 빠지면 널 환상으로 여겨왔던 사람들은 떠날 거야. 그러니까 절대 안 돼.

-그래도 엄마, 나 상도 받았잖아.

-어린아이처럼 칭얼거리지 마렴. 넌 정상이 아니야.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받은 사람 중에 몇이나 스타덤에 올랐을까? 순간에는 빛이 났겠지. 그걸로 끝이란다. 명문대에 합격했다고 대기업이 보장된 게 아니잖니. 이 상은 네게 기회야. 네 필모그래피를 좋은 작품들로 채워나갈 기회라고. 그런데 그 기회를 한낱 사랑 놀음으로 날리겠다고? 내가 이러려고 너희 둘 교제를 허락한 줄 아니?

-사랑 놀음이라니. 말이 심하잖아.

-조용히 하렴. 지금 네가 어떤 생각에 빠져있는지 말해줄까? 일은 잡았다. 그러니 이제 사랑을 잡자. 둘 다 잡고 난 승승장구 할 거다. 왜냐. 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자니까. 하, 웃기지도 않지. 괜한 행복회로 돌리지 마렴. 칸 영화제는 매년 열린단다. 내년에는 또 다른 스타가 등장할지도 몰라. 그렇게 되면 넌 잊혀져. 그러기 전에 좋은 작품을 찍어야해. 진짜 스타가 되어야 된다고! 혼자 미쳐서 발광하지 말고 주는 대로 받아먹을 준비나 하렴.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새 드라마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혼한 유부녀를 좋아하는 재벌 2세 역할로 대박이 났다. 브라운관 속 나는 남의 아픔을 감싸주는데 현실의 나는 공기처럼 주변을 떠도는 예영이를 안을 수 없었다. 연애는 극히 제한된 환경에서 이뤄졌다. 스케줄이 있는 날이면 예영이를 만날 수 없었고 쉬는 날에도 집에서 데이트를 했다. 예영이가 우리 집에 오는 건 더 이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차 선생님 집을 가야만 했다. 염증이 생겼다. 작품에 대한 갈증과는 다른, 성공에 대한 고민과는 다른 하나의 인간으로써의 염증이.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매니저를 때렸다. 신발 끈을 늦게 묶는다는 이유로 구둣발로 얼굴을 걷어차고 손을 짓밟았다. 말리는 중년 조연배우의 목을 움켜쥐었다. 차 선생님이 없었다면 매장 당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때 매장당하는 게 좋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별이 아닌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 테니까.

 

-엄마, 나 혼자 지낼 곳이 필요해. 너무 답답해서 더 이상 못 견디겠어.

 

멍청한 정신과 의사는 몇 번 불안 증세를 보였다는 이유로 공황장애 초기라고 진단을 내렸다. 차 선생님은 산 속에 있는 별장을 사주셨다. 그곳에서 차기작이 정해질 때까지 쉬라고 말했다. 관리인은 조용한 노인이었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별채에서 보냈다. 내가 배우라는 것도 차 선생님의 존재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다. 차 선생님과 멀어진 나를 찾아온 건 몇몇 신인배우들이었다. 그들은 항상 옆에 여자를 끼고 있었다. 여자친구냐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말했다. 모델 또는 연예인 지망생인 그 애들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충동이 다가왔다. 누군가를 지배하고 짓누르고 마음대로 다루고 싶은 충동을 견뎌내기엔 난 나약했다.

 

*

 

-그때 걔도 김진석한테 대줬잖아. 그래서 광고 들어가서 스타된 거고. 내가 직접 데려갔는데 모르겠냐.

-와 걔도 김진석이랑 했어? 도대체 몇 명이랑 한 거야?

-심각하다, 심각해. 걔 쟤랑 사귀었잖아. 그때 처녀라고 하지 않았냐?

-처녀막 수술했겠지. 요즘 누굴 믿겠냐. 내가 더러운데 남한테 깨끗하라 강요하는 것도 웃기고. 근데 의외다. 김진석 소문난 건 하나도 없었잖아. 진짜 빽이 엄청난가 보네.

 

하, 내가 이래서 남자들이랑 대화하는 걸 싫어한다. 더러운 변태새끼들. 만날 누가 누구 따먹었다느니 누가 누구한테 먹혔다느니 그런 말들뿐이다. 대가리에서 24시간 섹스만 굴리는 걸까. 소속사에서 그러라고 너희들 성형시키고 시술시킨 거 아닐 텐데.

 

-다은이 넌 뭐 아는 거 없어? 너 김진석이랑 친하잖아?

 

남이사 친하거나 말거나. 친하지도 않아요, 이 새끼야. 저 인간은 방송에서는 젠틀한 척, 댄디한 척 다 하면서 입만 열면 자기 섹스 이야기만 한다. 촬영이 중단되지만 않았어도 이런 저질스러운 놈들이랑 만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소속사에서 간만에 단합회를 하자고 했고, 아람이는 몸이 아프다고 참석하지 않았고, 직원들 빠지고 배우들끼리 3차를 가자고 했고, 재수 없게 여배우는 이 자리에 나 하나고. 하, 진작 빠졌어야 했는데 너무 예의를 차렸다.

 

-야, 너 혹시 그거 알아? 왜 김진석이 예전에 사람 죽였다고 찌라시로 돌던 적 있잖아.

-에? 그런 적이 있었어요?

-너희들 모르는 구나. 예전에 한창 소문이 돌았었어. 지원이 알지? 걔가 김진석이랑 할 때 약하고 했었나봐. 김진석은 하지 않고 자기만. 하다 실신했는데 자기가 본 게 꿈인지 아닌지 모르겠는데 김진석이 차로 사람을 치었대. 친 여자를 안고 울고 있었다고 하더라고.

-약 때문에 환영 본 거 아니에요? 거기 산속에 있었다면서요. 그 산길에서 사람 칠 일이 어디 있다고.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지.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까 숲속에 있었다는 거야. 그러니까 걔가 약 기운 때문에 밖으로 나왔다는 소리가 되는 거잖아. 안 그래?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다. 이 인간들은 무슨 썰을 이렇게 많이 아는 걸까. 역시 인기 없는 연예인들은 남 이야기에 밝다. 할 게 없으니까 술자리에 자주 다니고 거기서 이것저것 주워듣는 거겠지. 허긴 이런 놈들한텐 예능 한 번 나가서 썰 푸는 게 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모으고 또 모으는 게 분명하다. 어차피 대본을 많이 외울 일도 없으니까 남는 뇌 공간에 업로드 시키는 거겠지.

 

-야, 야. 그건 좀 억지다. 사람을 죽였으면 그냥 넘어갔겠냐? 뭐라도 기사 한 줄 나왔겠지. 그리고 김진석은 소속사 옮겼잖아. 그러면 전 소속사에서 풀기 마련인데 왜 안 풀었겠냐.

-그것도 그러네. 넌 진짜 이상한 소문 좀 내지 마라. 이거 알고 김진석이 찾아오면 어떡하게. 지난 번에 걔 찌라시 냈던 기자 쳐 맞은 거 못 들었냐?

-내가 어디 가서 쳐 맞을 급은 아니잖아, 안 그래? 여기서 다은이 다음으로 유명한 게 난데. 그리고 다은이가 잘 쉴드 쳐 주겠지. 안 그래, 다은아?

 

안 쳐줄 건데, 병신아. 그냥 미소만 짓는다. 소속사는 어디서 이런 덜떨어진 것들만 모아왔는지 신기하다. 진석 오빠도 저렴하다. 깃털처럼 가볍고 솜처럼 붕 뜬다. 하지만 그 전에 친구가 되었다. 우정이란 건 참 신기한 감정이다. 남이라면 경멸을 느낄 감정도 무덤덤하게 만드니까.

 

-그런데 다은아, 궁금해서 그러는데 만약 진석이가 살인범이면 너 어떡할 거야?

-어떡할 거라니 무슨 소리에요?

-그러니까 계속 친구할 거냐고 아님 쌩깔거냐고. 마약범이나 성폭행범, 폭행범도 연예계 활동 계속하고 친구 관계도 유지되잖아. 그런데 살인을 했다. 만약 동료가 이런 사람이라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서.

-지금 두 가지를 착각하고 질문하는 거 같네요. 저 그 사람이랑 그렇게 친하지 않아요. 우정이다 뭐다 운운할 정도 아니에요. 그리고 제 성격 잘 모르죠? 전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아요. 그러니까 오빠들하고 여기 있는 거겠죠. 안 그래요?

 

표정들이 예술이다. 고개를 숙이고 목에 핏줄이 선 게 어지간히 빡쳤나 보다. 열 받으면 뜨던가요. 못 떴으면 겸손하고 예의바르기라도 하던가. 너희를 안 쓰는 이유야 뻔하지. 연기 못해, 얼굴이 진해, 매력도 없어. 겸손하지도 않아, 열심히 하지도 않아, 예의도 없어. 그러니까 누가 캐스팅을 해주겠니? 인터넷 뉴스를 보니 속보가 올라와 있다. DJ 다루 사망?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소식에 진석 오빠의 얼굴이 떠오른다. 설마 오빠가 죽인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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