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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우리 스타의 범죄 38화

[루나글로벌스타 김준모 기자]

식사 시간은 즐거웠다. 엄마는 말이 많았고 진석이라는 사람은 웃음이 맑았다. 어느새 승조 오빠도 내 옆에 앉아 같이 떠들어댔다. 오빠는 그 남자의 볼을 만지거나 같이 셀카를 찍으면서 ‘진석이 귀여워 죽겠어~’를 연발했다. 확실히 엄마랑 좋아하는 사이는 아니구나-또는 엄마를 스폰으로 삼으려는 족속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런데 예영 씨는 대학생이세요?

-어머, 얘~ 예영이 작가야. 딱 봐도 감수성 넘쳐 보이지 않니?

 

부끄러움에 미소를 짓고 고개만 끄덕였다. 엄마가 수정해 주길 바랐지만 한술 더 떠서 작품이 나오면 책 한 권 선물해 주겠다고 말했다. 전에 라디오에서 들은 적이 있다. 한 발라드 가수가 게스트로 출연했는데 그 가수는 서울대에 나왔다고 소문나 있던 가수였다. DJ는 그 가수에게 질문을 던졌다. ‘서울대 나왔어요, 안 나왔어요? 예 아니오로만 대답하세요. 하나 둘 셋!’ 그 가수는 계속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알고 보니 그 가수는 배재대 출신이었다.) 그때 내 심경이 그랬다. 오해해 줬으면 했다. 잘 보이고 싶었다. 스쳐가는 인연이라도 기억 한 구석에 좋은 이미지로 남게.

 

-처음에는 배우 지망생인 줄 알았어요. 너무 예뻐서요.

-어머, 얘! 당연하지! 누구 딸인데.

-유전자가 어디 가겠니.

 

문밖에서 소리를 들었다. 화장실에 갔다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함께 하고 싶었다. 그를 더 만나고 싶었다. 엄마는 김진석을 좋아했다. 아니,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함께 쇼핑을 나갔을 때 엄마한테 물었다. 왜 그 사람을 그렇게 신경 쓰는지.

 

-닮았잖니, 네 아빠랑.

 

그가 엄마랑 같은 소속사에 들어가면서 우리 집에 오는 횟수는 더 늘어났다. 그는 툭하면 집에 와서 밥을 먹었다. 겉절이, 오이소박이, 깻잎에 된장국을 좋아했다. 몰래 그의 사진을 찍곤 했다. 조그마한 핸드폰 화면으로 보면서 웃곤 했다. 엄마 앞에서는 티내지 않았다. 마음대로 재단할까 두려웠다.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이 엄마에 의해 완성되는 걸 원치 않았다. 한 번은 반찬을 사들고 그의 집을 향했다. 집에 있는 밑반찬에 한솥도시락에서 산 밥과 반찬을 통에 담았다. 촬영이 없는 날이라서 그런가. 아침부터 눈 아래에 다크써클이 진하게 파이고 볼이 쏙 들어간 게 며칠은 밤을 지새운 사람 같았다. 입맛이 없다는 그를 강제로 앉히고 밥을 퍼 입에 넣었다.

 

-어때요, 맛있죠?

-아, 네. 밥은....... 씹다 보면 달아 지죠. 튀김 좀 주실래요?

-튀김 어때요? 제가 직접 튀긴 건데. 맛있죠?

-아, 뭐, 그렇죠. 튀김은 항상 맛있죠. 튀긴 건데.

 

뭔 정신이 그리 없는지 자기가 웃통을 입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거처럼 보였다. 푹 파인 복근과 넓게 벌어진 어깨가 자꾸 눈에 들어왔다.

 

-차 선생님께 고마워요.

-네?

-너무 고맙다고요. 작품 하나 같이 했을 뿐인데 잘 대해주잖아요. 아무 조건도 없이, 기대도 없이 남에게 사랑을 주는 건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래서 그쪽이 부러워요.

-별로 부러워할 것도 없어요.

 

대화는 잠시 끊겼다. 침묵이 어색해 밥을 한 숟갈 퍼서 그의 입에 넣었다. 겨울잠을 준비하는 다람쥐처럼 양볼 가득 음식을 넣은 모습이 귀여웠다. 밥을 먹는 동안 집을 구경했다. 빈 공간이 너무 많았다. 짐이 정말 없는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탁기도 없는지 흙이 묻은 옷이 바구니에 담겨 있었다. 바지를 들춰보니 아래에 놓인 셔츠에 피가 묻어 있었다. 그는 코피가 자주 난다고 말했다.

 

-촬영이란 게 되게 힘들더라고요. 저 같은 신인은 촬영장에서 배워야 된다면서 쉬지도 못하게 하니까 금방 피곤해지더라고요. 제가 치울 테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그의 집에 종종 드나들었다. 책상 앞 보드에 포스트잇으로 붙여둔 비밀번호를 보았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번호를 외우지 못했었나 보다. <중경삼림>의 페이가 된 기분이었다. <몽중인(夢中人)>을 들으면서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하고 글을 썼다. 손빨래라는 것도 처음 해보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우리 집에 왔고, 석박지에 물을 말아 밥을 먹었고,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갔다.

 

유튜브에 올라온 짜깁기 영상을 보았다. 김진석 발연기 스폐셜. 하회탈 우는 연기부터 로봇처럼 밥 먹는 연기까지 엉망진창이었다. 그도 아빠와 같다. 좋아하는 일에 재능이 없다. 어쩌면 엄마는 그래서 더 도와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인간은 동물과 다르니까. 열등하단 이유로, 헛된 꿈을 품었다는 이유로 무리에서 내쫓지 않으니까. 문을 여니 문 앞에 그가 있었다.

 

-오늘은 늦게 가네요.

-사랑해요.

 

얼떨결에 본심이 튀어나왔다. 네? 라는 표정을 짓는 그의 자기주장 뚜렷한 이목구비를 향해 더 강하게 내 이야기를 내뱉었다.

 

-사랑하니까 만날 와서 청소고 밥이고 한다고요.

 

반찬은 시장에서 사오지만 밥은 내가 한다. 햇반을 데워서 전기밥솥에 넣는 것도 요리라고 할 수 있으니까.

 

-아, 네, 저도 그쪽 좋아해요.

-그, 그럼 우리 사귀어요.

 

귓볼이 빨개졌다. 이게 무슨 순정만화 같은 전개야? 스스로에게 낙제점을 주고 싶었다. 이러고도 작가라고 떠벌리고 다니다니. 누가 본다면 비웃을 것이다.

 

-예영씨 엄마한테 듣지 못했나 보네요. 우린 사랑할 수 없어요. 잠깐만요.

 

그는 책상 서랍에서 서류를 하나 꺼냈다. 그 서류를 들고 내뱉은 이야기는 신비롭다기보다 요상했다. 집에서 도망쳐 나왔고 거지처럼 길거리를 전전했다. 소매치기도 하고 앵벌이도 해봤다. 껌을 팔다 학생들한테 줘터지기도 했다. 그러다 우연히 오디션을 보게 되었고 사우나랑 미용실에 간 덕분인지 합격했단다. 엄마의 도움으로 집을 얻었고 소속사도 얻었다. 술에 취해 엄마한테 진실을 이야기했고 엄마는 그에게 아버지를 만들어줬단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엄마의 동생이다. 즉 우리는 법적으로 친척 관계인 것이다. 그것도 아주 가까운.

 

-처음 만났을 때 차 선생님이 그러셨잖아요. 자기 아들이라고. 저도 예영씨 좋아해요. 그런데 관계가 이러니까.......

-거짓말.

 

입은 뇌의 허락을 받지 않고 마음의 말을 출력했다. 그의 흔들리는 눈동자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다음 말을 찍었다.

 

-사랑하지 않잖아요. 좋아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뤄져야죠. 이딴 종이쪼가리 하나 때문에 사랑을 포기해요? 웃기고 있네. 그래요, 방송국 드나들면 예쁜 애들 많겠죠. 그러니까 나 같은 건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 거잖아요. 그래요, 완성품이 있으면 불량품도 있기 마련이죠. 인형도 못생긴 인형이 있잖아요.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친구도 없어요. 1인분도 못하는데 살고 있는 게 민폐죠. 세상에는 없어도 되는 사람도 있는 거예요. 이런 사람이 사랑을 갈구하니 동정이 생긴 거죠? 그렇죠?

 

지나친 자기비하라고 뇌가 말했다. 마음은 칼 같이 통로를 잘랐다. 뇌의 말은 내장 위에 떨어졌고 입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랐다. 그는 머뭇거리는 기색 없이 몸을 틀어 날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거 알아요? 모두가 싫어하는 소리는 존재하지 않는데요. 그래서 덜 좋아하는 음악은 있지만 못 만든 음악은 없다고 해요. 못생긴 인형도 귀엽다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사람은 제품과 달라요. 완성된 설계도라는 게 없거든요. 그러니까 불량품은 나올 수 없어요. 예영씨가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도 예영씨를 좋아하는 사람은 있을 수 있잖아요. 그 사람에게 예영씨는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존재에요.

 

그의 눈동자에 내 얼굴이 비쳤다. 사랑을 주체하지 못하는 나약한 여자의 표정이 적나라하게.

 

-내게 세상은 눈동자에 담을 수 있을 만큼 작아요.

김준모 기자  press@lunarglobalsta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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