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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비극이 만들어 낸 부자의 정(情) 박성신, <제3의 남자>

 

6.25 전쟁 이후 남한과 북한은 서로의 체제 전복을 위해 보이지 않는 싸움을 지속해왔다. 그 과정에서 북한은 남한에 많은 수의 간첩을 보냈다.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하지만 그 실상은 독재다. 독재의 장점은 특정 계층에 의한 강압적인 통치가 가능하다. 북한이 간첩을 보내고 그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던 건 이 독재의 힘이 컸다. 누가 간첩을 하고 싶어서 할까. 암호명 은하수, 월출은 그리 생각한다. 김영하 작가의 <빛의 제국>을 보면 간첩이 어떤 교육을 받는지 나와 있다. 그들은 완벽하게 남한 말을 익히며, 그들이 가진 사상과 사고를 이해하기 위해 애쓴다. 동시에 강력한 군사훈련을 받는다. 대부분의 임무가 암살이기 때문이다. 남한에 건너가기 위해 잠수복을 입고 힘겹게 바다를 건너야 한다. 그들이 이런 고통을 인내하는 이유는 하나다. ‘가족’ 때문이다. 자신이 잘못하면 북에 있는 가족이 피해를 입는다.

대국은 예전에 잘 나가는 태권도 선수였다. 만약 그가 다리를 다치지 않았다면 아시안게임까지 출전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쓴 소설이 망하고, 부인에게는 이혼을 당하고, 고시원에 살지만 그 돈까지 밀려 사채업자들에게 쫓기고 폭행을 당하는 신세다. 한 마디로 개 같은 내 인생. 그는 한 남자에게서 아버지 희도가 총에 맞았다는 소식을 듣는다. 종합병원이 아닌 조그마한 병원에 누워 있는 아버지. 남자는 희도가 가진 수첩을 찾아주면 3억을 주겠다 대국에게 제안한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 수상한 남자의 제안을 거절하고, 아버지가 위험하다 판단, 경찰에 신고해야 될 것이다. 허나 대국의 처지를 생각하면 그가 제안을 수락하고 수첩을 찾아 나선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대국의 인생에 있어 희도는 도움이 되는 아버지가 아니었다. 작은 책방을 운영했으나 자금상 변변치 않았다. 또 그의 기억에는 아버지가 태권도 선수를 반대했고 몽둥이로 자신의 다리를 내리쳤다. 그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아버지를 자신의 인생보다 싫어한다. 차라리 아버지가 죽어 생명보험금이 나오기를 희망한다. 그러기에 막막한 현실이라도 타파해 보고자 수첩을 찾아 나선다.

월출은 남한에서 조그마한 책방을 운영한다. 간첩들은 동네에서 하나의 팀을 꾸려 행동한다. 허나 그들은 아주 좁은 범위로 서로에 대해서만 안다. 즉, 자기 위와 아래 한 명 정도, 그 이상은 정보를 알 수 없다. 어느 날, 그는 책방에서 책을 샀던 여자 해경이 시위에 휘말려 형사에게 붙잡히는 걸 목격한다. 괜히 경찰에 휘말리면 자기 정체가 들통 날 위험이 있기에 자리를 피하는 월출. 허나 갑작스러운 총격 소리에 그는 달려간다. 놀랍게도 해경이 총을 빼앗아 형사 두 명을 쏴버린 것. 월출은 기절한 해경을 집으로 데려온다. 허나 자신의 정체가 들통 날 수 있기에 조심스럽게 해경을 대하는 월출. 해경은 경찰의 표적이 되고 월출은 책방에 해경을 숨긴다. 순둥이 오형사는 속일 수 있으나 날카로운 직감에 동물적인 잔혹함을 지닌 서중태는 월출이 여자를 숨기고 있다고 여긴다. 점점 해경과 가까워지는 월출. 결국 월출은 자신의 정체를 해경에게 말한다. 그리고 어느 날, 서점에 불이 나고 해경이 사라진다.

아버지의 수첩을 찾아 나선 대국은 서점을 향한다. 아버지가 70이 넘은 나이까지 운영 중이던 꼬질꼬질한 고서점. 그는 아버지 지인들을 중심으로 찾아 나서던 중 아버지와 같은 절음발이였던 철물점 류씨네를 찾아간다. 허나 그곳에서 발견한 건 언제 죽었는지 알 수 없는 자살한 듯한 류씨의 시체, 그리고 발견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라이터다. 그는 류씨의 자살에 의문을 품는다. 류씨는 아버지처럼 진짜 절음발이가 아닌 보조금을 타먹기 위해 절음발이 행세를 했던 것. 그런 사람이 왜 진짜 절음발이인양 낮은 자세로 자살하는 법을 택한 걸까. 서점에서 라면을 먹던 대국은 국물이 흘러들어간 비밀 통로를 발견한다. 사람들이 잘 지나가지 않는 길로 이어진 비밀 통로. 그는 그곳에서 윤숙희라는 가수의 앨범들을 발견한다. 조사를 통해 윤숙희가 아버지 시대의 인기가수임을 알게 된 대국. 허나 그를 더 놀라게 한 사실은 이 윤숙희가 정부의 비밀공작원으로 정부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소문’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월출은 해경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오자 당황한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윤숙희라는 인기가수. 그가 해경의 집에 몰래 잠입했을 때, 해경에게 가족끼리 점 찍어둔 의대생 결혼예정자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 그리고 간첩이라는 자신의 신세를 생각했을 때 월출은 해경을 포기했다. 하지만 그 아련한 목소리에 그의 마음은 다시 해경을 찾아 나선다. 사람에겐 지울 수 없는 감정이 있다. 바로 사랑이다. 마음이 하는 사랑은 거짓말을 할 수 없다. 그 사랑의 감정이 월출을 자극한다. 북에 두고 온 가족에게 느끼는 사랑처럼 해경에게도 지켜주고 싶은 그런 감정이 생긴 것이다. 월출의 위인 춘삼도 마찬가지다. 그는 당의 지령으로 남한의 국회의원까지 선출된다. 하지만 사랑하는 여자를 만난 그는 남한에 정착할 생각을 한다. 그리고 새로 온 대장은 춘삼을 죽인다. 죽는 순간, 춘삼은 월출에게 말한다. 북에 있는 네 어머니와 누나, 이미 죽었다고.

처음에는 좀 지루했다. ‘또 간첩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대국이라는 캐릭터에게는 흥미가 갔으나 교차로 월출과 대국의 이야기를 펼치는 구조가 집중력을 떨어뜨렸다. 그럼에도 장점은 뚜렷했다. 이야기가 200페이지를 넘어가면서 힘을 낸다. 앞에 쌓아둔 아버지, 그리고 아들의 이야기가 접점을 만들고 하나 둘 풀리면서 <수난이대>처럼 ‘국가의 비극’이 ‘부자의 비극’으로 나타나는 강력한 슬픔을 표출한다. 작가는 초반에 흥미가 떨어지더라도 월출과 해경의 관계를 써 내려가는데 많은 시간을 소모한다. 그 이유는 이 두 사람의 감정을 독자들이 느껴야 이후 이어지는 대국의 아픔이 더 강렬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들의 아픔이 시대의 아픔임을 강조하기 위해 서로의 독재정권 하에 있었던 만행들을 균등하게 표현한다. 이 표현이 가지는 효과는 크다고 본다. 월출의 아픔은 단순 월출이 간첩이기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니다. 남과 북이 서로의 독재를 위해 국민들을 억압하고 폭력을 휘두르면서 생긴 상흔이다.

아쉬운 점은 정유정 작가가 이 책을 극찬하면서 말한 ‘락발라드’의 느낌이다. 딱 이 느낌이다. 서스펜스의 강렬함과 아련한 사랑의 감성이 조화를 이루었다. 허나 이 조화가 적재적소에서 이루어졌는지는 의문이다. 끌어당기는 마력은 있지만 강렬하지 않다. 감성의 경우도 ‘그래서 그렇구나’ 정도에 머물 뿐, 그 이상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무엇보다 대국의 이야기를 통해 월출의 이야기가 풀렸을 때 느껴지는 쾌감이 없다.(적어도 나는 못 느꼈다.) 노래로 따지자면 버즈나 FT아일랜드의 노래, 그러니까 어떨 땐 가슴을 내리치는 강렬함을 주고, 또 어떨 땐 마음을 아리는 감성을 기대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잔잔하게 마음에 물결을 일게 하는 크라잉넛의 명동콜링을 들은 기분이다. 이야기 자체는 재미가 있다. 허나 최근 소설의 트렌드인 소설의 영상화(그러니까 소설을 읽으면서 머리로 영상을 그려나가는 재미)를 생각했을 때 효과적인 장면들을 만들어내지 못한 작품이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 [루나글로벌스타]

김준모 기자  press@lunarglobalsta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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