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금이란 인간의 머리에 걸린 현상금인가,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
보험금이란 인간의 머리에 걸린 현상금인가,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
  • 김준모 기자
  • 승인 2018.04.16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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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글로벌스타] 외식을 할 때면 그런 집이 있다. 맛도 좋고 배도 꽉 차서 포만감을 주지만 속이 불편해서 이후 일정에 불편함을 주는 집이 말이다. 예술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작품은 감상이 끝난 후 그 온전한 멋에 빠지지만 몇몇 작품은 불편한 기분에 밤잠을 설치게 만든다. 기시 유스케의 <검은집>은 딱 그런 작품이다. 책을 끝낸 이후에도 소름이 돋는다. 단순히 묘사와 장면이 무섭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작품이 서술하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 더러울 정도로 불편하기 때문이다. 만약 2007년 개봉한 한국영화 <검은집>을 보지 않았더라면 난 이 작품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을 고통 속에서 지냈을 것이다.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두 가지라고 본다. 1. 감정 없는 인간이란 존재할 수 있는가? 2. 보험이란 인간의 머리에 걸린 현상금인가? 먼저 두 번째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자. 작품은 앞서 100페이지 정도를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주인공 신지의 보험 회사 이야기에 소비한다. 즉, 100페이지 전까지 본격적인 공포는 시작되지 않는 것이다. 이 지루한 시간을 작가는 보험 회사 이야기로 소비한다. 아니, 명확히 말하자면 소비는 아니다. 작가는 이 과정을 통해 보험이 지닌 속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신지는 선배 요시오와 단 둘이 보험 조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 업무에 단 두 사람만이 배치된 이유는 아주 힘든 업무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자. 자동차 보험이 보편화되기 전, 차 사고만 나면 운전자 두 명이 밖으로 뛰쳐나와 뒷목을 잡고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요즘은 그럴 필요가 없다. 보험 회사가 올 때까지 차에서 기다리면 그만이다. 이런 모습만 보자면 보험이라는 돈의 흐름에 인간의 감정이나 주장은 배제된 거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보험 사기꾼들 때문이다.
  
이런 보험 사기꾼들과 감정적인 접촉을 반복하는 업무가 신지, 그리고 요시오가 하는 일이다. 그들은 인감도장으로 사기를 치는 사업가를 상대하고, 모럴 병원에 누워 하루하루 보험금을 타 먹는 이들에게 보험 해지를 권유한다. 돈은 인류가 찾은 가장 ‘안전한 가치’라는 말이 있다. 인종, 종교, 사상 등으로 끊임없이 전쟁을 반복해 왔던 인류는 ‘돈’을 통해 이런 위험을 최대한으로 축소시키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돈이 절대적인 가치가 되면서 이전의 가치들이 소모시켰던 문제와 똑같은 문제를 반복하고 있다. 돈 때문에 일어나는 살인과 상해이다. 여기서부터 첫 번째 질문을 더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신지가 만나게 되는 ‘감정이 없다’ 여겨지는 이는 고모다이다. 신지는 서비스 문제로 자신을 부른 고모다네 집을 향한다. 이 낡고 더러운 검은집에서 신지는 고모다의 아들 가즈야가 목을 맨 시체를 발견한다. 그런데 이 순간, 고모다는 죽은 자기 아들이 아닌 신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반응을 살펴본 것이다. 이후 고모다는 신지에게 매번 찾아오는 건 물론 음성이 담기지 않은 음성 메시지를 남기면서 빨리 보험금을 납부해 줄 것을 강요한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용어가 ‘싸이코패스’다. 보험사기 사례를 조사하던 신지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정 없이 그들의 주변인(심지어 가족)을 해치고 자신의 신체를 훼손했는지에 대해 알게 된다. 그리고 고모다라는 남자 역시 이전에 손가락 사건이라고 자신의 엄지를 자른 후 보험금을 타낸 사기 사건에 연류 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다. 빈곤에 시달리는 고모다는 이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거액의 보험금을 든 것이다. 부부와 아들의 이름으로. 
  
여기서 흥미로운 건 이런 고모다를 분석하는 두 사람, 가나이시와 메구미의 태도이다. 메구미는 신지의 대학 후배이자 여자 친구이며 가나이시는 노리코 교수의 조교이다. 노리코 교수에게 고모다의 심리 분석을 부탁한 신지는 이후 가나이시가 지나치게 고모다에게 관심을 가지자 불안해한다. 그리고 가나이시는 신지에게 직접 바라본 고모다의 모습에 대해 말해준다. 가나이시가 서술하는 싸이코패스의 특성은 한 마디로 요약된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려다 주지 않으면 고양이는 제 주인도 상관하지 않고 공격한다.’ 신지는 고모다가 자신을 노리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경찰이 자살이라고 결론을 내리지 않았기에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거뿐인데 왜 내 목숨을 노릴까? 헌데 가나이시는 그 이유를 이 간략한 문장으로 완벽하게 설명해 낸다. 싸이코패스에 대한 기사를 보면 그들의 행동은 ‘아주 이성적’이나 행동의 동기는 ‘아주 이성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동기가 이성적이라면 공격의 대상은 신지가 아닌 형사를 향해야 할 것이다. 헌데 신지를 압박하는 건 눈에 보이는 대상이 신지이기 때문이다. 고양이가 화가 나면 주인이라는 계산도 없이 물어뜯는 거처럼 싸이코패스 역시 마찬가지다. 상황에 대한 이해보다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인간에게 화를 푼다. 영리하고 똑똑한 사람은 감정이 풍부하다. 그래서 남에 대한 이해심이 높으며 남을 조종할 줄 안다. 정치인들이 괜히 헛소리를 하는 게 아니다. 그 헛소리에는 나름의 계산이 있으며 감정을 자극해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효과가 있다. 헌데 싸이코패스는 아니다. 감정이라는 거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니 이를 이용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 
  
싸이코패스에게 우선시 되는 건 자신의 감정이다. 남에 대한 이해란 게 없다. 감정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중심이며 남은 자신을 위해 일해 주는 존재다. 헌데 메구미는 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녀는 세상에 감정 없는 인간이란 없다고 자부한다. 그녀는 고모다가 저리 되어버린 건 어린 시절 결손 된 가정환경 때문에 사랑을 받지 못해 사랑을 알지 못하는 거라 말한다. 즉, 사회가 말하는 싸이코패스란 결손에 대한 케어를 주지 못하는 사회적 구조 때문에 발생한 슬픈 존재들이라는 게 메구미의 생각이다. 이런 메구미의 생각을 보여주는 반전이 바로 범인의 존재 치환이다. 만약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이 지점에서 심장이 떨어졌을 것이다. 신지가 싸이코패스라 여겼던 고모다는 그저 애정결핍에 시달리는 남자일 뿐이었다. 그런 그를 뒤에서 조종하는, 마치 수컷이 번식을 끝내면 잡아먹어 버리는 어느 거미 같은 부인 사치코가 진짜 ‘싸이코패스’였던 것이다. 이 변화의 과정이 무서운 건 심리적인 분석 때문이다. 노리코는 초등학생 시절 사치코가 쓴 작문을 통해 그녀에게 감정이 없음을 발견해 낸다. 그리고 신지도 알게 된다. 그 지루했던 100페이지, 사치코가 신지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신지의 반응이 사치코에게 가져온 변화를 말이다. 신지는 사치코가 자살을 꿈꾸고 있기에 생명보험의 보험금 수령에 대해 물었다 생각했다. 그리고 그 자살을 막기 위해 형의 자살에 대해 말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의 슬픔에 동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들을 죽이기로 결심한 이 여자는 무서운 생각을 한다. 남을 이용해 먹기를 좋아하는 포식자, 싸이코패스 다운 생각을.
  
‘이 사람 정신적으로 약하네? 이놈한테 아들 시체를 발견시키면 일이 쉽게 진행되겠는 걸?’ 이쯤 되면 왜 사치코가 신지를 압박하는 건 물론 그를 죽이려 들었는지 알 것이다. 싸이코패스의 가장 큰 특징은 일이 틀어지면 극도의 분노를 느낀다. 그리고 그 분노를 그 대상에게 풀려고 한다. 신지는 몰랐다. 자신이 사치코의 부품이라는 걸. 그래서 그를 죽일 수도 있다는 가나이시의 말에 크게 위협을 받지 않았다. 사치코는 부품이 불량이라는 걸 알고 화가 난 것이다. 그녀는 심지어 메구미를 납치하기에 이른다. 메구미는 온갖 고초를 겪었음에도 사치코 역시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 주장한다. 단지 가정폭력 때문에 사랑을 받지 못했을 뿐이라고. 헌데 영화의 결말은 첫 번째 질문과 두 번째 질문, 그리고 제목이 지닌 의미를 결부시킨다. 감정 없는 인간이 보험을 사람의 목을 노리는 현상금으로 바꾸는 것인가, 아니면 보험이 사람을 감정 없는 현상금 사냥꾼으로 만든 것인가? 이런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검은집을 만든 건 자본주의 시스템을 정착시킨 국가인가? 아니면 선천적으로 타고난 문제가 있는 개인들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정녕 없는 것일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묘한 질문을 던졌으나 이에 대한 답은 닭과 달걀의 질문처럼 흥미롭거나 유쾌하지 않다. 우울하고 무섭기 짝이 없다. 전자도 후자도 답이 없다. 답이 없는 거로 끝나면 좋다. 문제는 답이 없기에 신지 같은 인물은 또 다시 검은집을 향해야만 한다. 검은집은 두 가지 이유로 탄생한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감정 없는 인간으로 대변되는 타고난 싸이코패스들, 두 번째는 보험이 현상금이 되어버린 빈곤층을 양산하는 사회의 시스템이다. 문제는 검은집을 없애고 싶지만 이 두 가지 다 손대기도 힘들고 해결할 수도 없는 문제라는 점이다. 결국 검은집이 스스로 악취를 내며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기다려야 되며 누군가는 이 오물을 처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된다는 소리다. 끔찍하고 잔혹한 이야기를 실감나게 설명하는 문체와 심장을 졸이는 사건의 전개가 책을 읽는 동안의 두려움을 가져온다면 이런 절망적인 현실에 대한 인식은 이후의 깊은 암흑의 여운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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