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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숲속에서 품어낸 악의 씨앗의 완성...정유정 작가 <종의 기원>

 

[루나글로벌스타] ‘인간은 생존하도록 태어났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는 진화과정에 적응해야 했고, 선이나 악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었기에 선과 악이 공진화했으며, 그들에게 살인은 진화적 성공, 즉 경쟁자를 제거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이 무자비한 ’적응구조‘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우리의 조상이다.’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의 저서 <이웃집 살인마> 中

 

인터넷에 떠도는 짤 중 유명한 짤들이 ‘흑형의 위엄’이라는 짤이다. 이 짤들을 보면 미국의 흑인들이 엄청난 신체조건으로 같은 인간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운동신경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모든 흑인들은 이들처럼 신체적으로 우월한 유전자를 지니고 태어난 것일까?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이동시키던 노예선의 구조는 최악에 가까웠다. 더 많은 사람들을 나르기 위해 그들을 마치 짐처럼 배치시켰다. 사람 위에 사람을 둔 구조. 그들은 오랜 시간은 같은 자세로 보내야 했고 햇빛도 보지 못했다. 심지어 위에서 싼 배설물이 아래 사람에게 그대로 떨어지는 최악의 환경이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살아남은 ‘슈퍼 유전자’가 미국 흑인들의 ‘종의 기원’이다. 각각의 종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 왔다. 대표적인 예가 팬더다. 팬더의 경우 대나무를 소화시킬 수 있는 기관이 발달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대나무를 먹는다. 맛있어서 그런 걸까? 아니, 그보다는 생존에 대한 욕구 때문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천성이 게으르고 둔해 번식 활동도 잘 하지 않는 팬더에게 먹을 것을 구하는 작업은 힘든 일이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동물들이 손대지 않는 대나무를 먹기 시작했을 것이라는 게 개인적인 추측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인간은 어떻게 종을 번식시켜 왔을까?

 

인간은 동물과 다르다. 동물들은 각자의 몸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들을 몸에 지니고 태어난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물렁한 살이 전부다. 그런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무기는 바로 ‘두뇌’다. 인간은 두뇌를 통해 문명을 발달시켰고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다. 그리고 현재, 완전한 ‘포식자’의 위치에 선 인간은 모든 다른 종들을 ‘먹이’로 삼고 있다. 이런 인간에게 나타난 특이한 현상 중 하나가 개에 대한 애정이다. 다른 종을 잡아먹는 데에는 거리낌이 없는 인간이 유독 개에 있어서는 반감을 표하는 것이다. 같은 종도 아닌데 말이다. 이는 인간이 개와 친하기 때문이다. 개는 인간에게 충성할 줄 알고 인간을 사랑할 줄 알기에 보호받는다. 반면 다른 종들은 그런 교감을 할 수 없기에 먹이가 되고 만다. 이게 무슨 이기적인 생각이냐고? 모든 살아남은 인간은 이런 이기적인 생각 때문에 살아남았다. <종의 기원>은 ‘아주 나쁜 이야기’를 통해 인간 내면의 강력한 악, 그 악을 넘어 인간이라는 ‘종의 기원’에 대해 알아보는 범죄 소설이다. 주인공 유진은 전직 수영선수였으나 아시안 게임 대표 선발을 앞두고 간질이 재발하면서 결국 꿈을 접고 만다. 그는 자신의 꿈을 망친 게 엄마와 이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지독한 두 여자가 자신을 누르고 앉아 망가졌다며 탄식한다.

엄마는 공부를 잘하는 형 유민을 좋아했다. 뭐든지 혼자 할 줄 아는 어른스러운 유진보다는 아이 같은 유민이 더 엄마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여행 중 아버지와 유민이 바다에 빠져 죽은 후 엄마의 관심은 유진을 향한다. 유진은 이 갑작스러운 관심, 그리고 형을 대신해 형과 닮은 자신의 친구 해진을 입양한 엄마의 강압적인 태도에 진절머리가 난다. 여기에 정신과 의사인 이모는 그에게 간질 약 복용을 시키며 꼬치꼬치 상태를 묻는다. 이 두 여자가 자신의 삶을 억누르고 있다고 여기는 유진은 새로운 삶을 준비하기 위해 변호사 공부를 시작한다. 로스쿨 입학시험 결과가 나오기 전날, 유진은 해진의 전화에 잠에서 깨어난다. 주변을 둘러보던 그는 피투성이의 자신과 피에 젖은 방을 보게 된다. 그리고 1층에 엄마가 죽은 시체를 발견하고 기겁한다. 그들이 입주한 아파트 신도시, 이곳에 나타난다는 강도 소식, 그리고 아버지의 면도칼과 딱 들어맞는 엄마의 상처. 유진은 생각한다. 엄마를 죽인 건 누구지? 그건 나인가? 아니면 다른 누구인가?

독자들은 ‘범죄 소설’이라는 장르에 속아 생각할 것이다. ‘대체 범인은 누구일까?’하고 말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 작품의 범인에 대한 힌트를 이미 제목에서 주었다. ‘종의 기원’. 그래, 이 작품은 흥미로운 범죄 소설이 아니다. 한 남자가 자신 내면의 깊은 ‘악’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그린 심리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악’이 되는 과정은 간단하다. 머릿속에 담아두었던 나쁜 생각을 현실로 옮기면 그 사람은 악인이 되어버린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의 깊은 무의식 속에는 금지된 행위에 대한 환상, 원초적 폭력에 대한 환상이 숨어 있다고 한다. 이 욕망을 해동으로 옮기는 자가 사악한 인간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그런 사악한 욕망을 옮기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인가? 그렇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쁜 녀석의 변명을 듣는 것인데 그게 대체 무슨 재미가 있으며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작가 정유정은 한 인간의 악을 표현하기 위해 두 가지 단어를 사용하였다. 첫 번째는 포식자, 두 번째는 사랑이다. 앞서 이 글에서는 미국 흑인과 노예선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동물 중에서도 더 강한 동물이 있듯 인간 중에서도 더 강한 인간이 있다. 흔히 학교에서 ‘짱’ 노릇을 하는 애들의 경우는 태어난 순간부터 그런 기질을 지니고 태어난 것이다. 뛰어난 신체조건,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속성, 그리고 높은 단계에서야 발현되는 흥분.

작품에서는 그런 사람을 포식자라고 말한다. 싸이코패스라는 용어가 정립되기 이전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쓴 용어지만 개인적으로 싸이코패스가 지닌 기질을 정확하게 설명해 주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라. 주인공이 일을 망칠 때 드러나는 특징은 그들의 감정이다. 마음이 물러서 제대로 된 결정타를 날리지 못한다. 반면 악당들은 망설임이 없다. 그들은 침착하고 정확하게 주인공 일행에게 공격을 가한다. 유진은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그는 엄마의 도움이 필요 없었다. 엄마는 그걸 그저 ‘성숙하다’라고 생각했다. 유진은 성숙한 게 아닌 강했던 것이다. 그는 뛰어난 신체조건과 높은 단계에서 흥분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 그를 흥분시킬 수 있는 건 운동, 그리고 여성에게 가하는 위해다. 우리는 여성들에게 공격을 가하고 남성들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분노조절장애자들에 대해 선택적 분노조절장애라며 비난을 가한다. 헌데 난 그들의 그런 습성이 포식자의 습성이라 생각한다. 포식자는 먹이만 노린다. 먹을 수 없는 먹이는 공격하지 않는다. 자신이 먹힐까봐 몸을 사리는 게 그들의 습성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런 철저하고 악독한 ‘이성’은 상대의 감성을 공격한다. 그게 바로 사랑이다.

왜 엄마는 아들이 포식자라는 걸 알면서도 입원을 시키지 않은 걸까? 어린 시절, 유진은 예쁜 여자아이들을 골라 그 애들의 머리가 잘린 그림을 그려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두고 그 애들이 당황하거나 우는 모습을 보며 즐겼다. 그건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이나 장난이 아니었다. 유진이 한 번도 걸린 적이 없으니까. 그는 일부러 그 애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그런 행동을 한 것이다. 악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높은 집중력을 지닌다. 그 집중력을 통해 철저하고 교묘한 계획을 세운다. 일반인이라면 가슴이 뛰어서 못할 짓들을. 유진은 자신을 신고하려는 마음을 지닌 엄마를 한 마디로 무력화 시킨다. ‘엄마, 사랑해요.’ 똑똑한 악인은 남의 감정을 이용한다. 마음에 죄책감과 책임감을 부여하고 이를 지키라 강요한다. 상대가 이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자신은 그런 상대를 이용해 먹는다. 싸이코패스의 또 다른 말은 극단적 이기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철저하게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기에 상대를 자신에게 맞추려고 든다. 상대가 자신에게 지닌 1g의 애정이라도 이용해 먹으려는 게 그들이다. 이런 유진의 심리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 해진에게 자신의 정체가 들통 났을 때이다. 이 순간, 놀랍게도 유진은 억울함을 느낀다. 웃기게도 그는 해진이 자신을 보내줄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그의 이런 심리는 이런 계산에서 비롯되었다. 1. 그와 나는 절친이자 입양을 통해 맺어진 형제다. 그는 나를 사랑하기에 보내줄 것이다. 2. 그가 나를 신고한다 하더라도 달라질 건 없다. 어머니와 이모는 이미 죽었다. 나를 감옥에 가둔다 하더라도 달라질 건 없다. 그러니 보내줄 것이다. 참으로 이기적이면서 계산적인 생각이다. 반면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해진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1. 감히 어머니와 이모님을 죽여? 이 나쁜 새끼. 2. 죗값은 치러야 되지만 그래도 형제인데....... 차라리 자수시켜서 형량이라도 조금 줄여보자. 이는 유진이 기대했던 사랑의 반응과 다른 반응이었다. 마치 치킨을 사줄 것이라 여겼던 엄마가 몸에 안 좋으니 같은 닭인 삼계탕을 사주었을 때 느끼는 어처구니없는 억울함이랄까. 이 두 가지 단어에 의한 표현으로 작가는 완벽한 ‘악’을 구현해 냈다. 이 작품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깊은 숲속에서 품어낸 악의 씨앗의 완성’라고 할 수 있다. 한 인간의 내면을 깊게 파헤치면서 그 과정에서 흘러나오는 악을 통해 씨앗에 양분을 준다. 그 양분을 통해 성장한 씨앗을 통해 독자들은 완전한 ‘악’과 대면하게 된다.

이 작품이 지닌 유일한 약점은 김이 빠진 콜라였다고 생각한다. 독자들이 처음부터 이놈이 ‘나쁜 녀석’이라는 걸 안다면 그 뒤부터는 지루한 고백을 듣는 과정이 되기 때문이다. 검게 물든 달콤한 유혹에 톡 쏘는 김이 빠지면 입속만 찝찝한 설탕물일 뿐이다. 그래서 작가는 프롤로그에 속임수를 집어넣는다. 어린 시절, 미사를 받던 중 유진이 쓰러지는 장면을 통해 그가 진짜 간질 환자라고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사람들은 ‘아픈 사람’이 ‘나쁜 사람’일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장애를 지닌 사람은 무조건 착하며 병실에 누워 임종을 준비하는 사람은 모든 악이 빠져나간 착한 사람일 거라 여긴다. 이런 ‘편견’을 이용, 작가는 씨앗이 싹을 돋우고 하나의 완전한 악으로 피어날 때까지 독자를 혼란에 빠뜨린다. ‘진짜 범인’이 누구인가 하는 혼란을. 그리고 그 범인을 알아냈을 때 함정에 빠진 사이 이미 완전히 자라버린 절대 악과 마주보게 된다. 정유정 작가는 이 한 편의 ‘범죄심리소설’을 완성시키기 위해 아주 기나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라 생각한다. 수많은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피드백을 받으며 한 남자의 ‘완전한 악의 심리’를 구축해냈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나쁜 생각이 자리 잡았다 해서 자책할 필요 없다. 그것을 밖으로 내보내느냐 아니냐에 따라 악인과 범인(凡人)은 결정된다. 인간은 분명 악을 통해 성장해 왔다. 수많은 전쟁과 생체실험을 통해 인류는 발전을 거듭했으며 인간을 제외한 모든 종에 적대감을 표하며 지구를 그들만의 행성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항상 인류는 1%의 포식자에 의해 지배당하고 억압되어 왔다. 오랜 축적의 역사를 하루아침에 부정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악은 결국 악이다. 그러하기에 역사적으로 부정을 당해왔고 나쁜 것으로 취급되어 왔다. <종의 기원>은 그런 악과 인류의 역사에 대한 보고서이며 이 보고서를 읽고 내리는 결론은 모든 사람들이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김준모 기자  rlqpsfkx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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