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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우리 스타의 범죄 22화

-야, 요즘은 무슨 스탭 하나 다쳤다고 촬영을 중단시켜요? 촬영장에서 다치는 게 뭐 큰일인가? 안 그래요?

-그냥 다친 게 아니잖냐. 안 그래도 그 문제 때문에 할 이야기 있어서 불렀다. 저기 앉아봐.

 

왜 불렀는지 짐작은 간다. 경우 저 새끼, 장대표 옆에 앉아 입이 툭 튀어나와 있다. 장 대표가 현장에 있었다면 그 쥐방울만한 새끼를 왜 때렸는지 이해할 것이다. 스탭이 칼에 찔렸다. 소품담당이 신참을 찔렀단다. 소품 담당은 김진석 씨 매니저가 물어봐서 그랬다며 발뺌했다. 경우 놈은 쭈구리처럼 농구골대 아래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왜 물어보았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없었다. 이거 봐라? 다시 한 번 물어보니 눈을 치켜뜨고 째려봤다. 어쭈? 내가 너한테 묻고 있잖아! 녀석은 한숨을 내쉬더니 툭 내뱉었다.

 

-짜증나니까 말 걸지 마세요. 지금 보면 몰라요, 기분 나쁜 거! 분위기 파악도 못하나.

 

농구공을 녀석의 면상에 던졌다. 발로 몇 번 밟으니 경찰이 달려와 참으라며 말렸다. 자기들이 조사할 테니 그만 가라며 경우 놈을 데려갔다. 촬영은 무기한 중단을 선언했다. 하여간 이대한 PD, 진짜 새가슴이라니까. 장 대표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그 PD, 대역 수중촬영을 진행하다 엑스트라를 너무 고생시켜 응급실에 실려 가게 했다고 한다. 그 사건 때문에 한동안 언론은 물론 업계에서도 이름이 오르내렸나 보다. 그런데 할 이야기라는 게 뭐야? 설마 사과하라는 건 아니겠지?

 

-경우가 진지하게 할 말이 있대. 말해, 경우야.

-춘배가 누구죠?

 

춘배라니? 네 녀석 입에서 그 이름이 왜 나오는 거야? 어디서 들은 거야, 그거?

 

-차 선생님이 그랬어요. 배우님이 춘배를 죽였다고. 대체 누굴 죽이신 거예요? 말해줘요, 춘배가 누구에요?

-몰라, 새끼야. 차 선생님이 제정신인 분이냐? 네가 모르나 본데, 그분이 어떤 분이냐면.......

-나 다 봤어요! 선생님 앞에서 무릎 꿇고 비는 거 다 봤다고요! 변명하지 말아요. 그날 어땠는지 아세요? 차 선생님 매니저가 촬영장에 왔어요. 그 사람이 칼을 바꿔놨어요. 그 칼, 뭔지나 아세요? 어제 다예 씨가 배우님을 찌를 칼이었어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배우님을 죽일 계획이었다고요!

-경우가 경찰에는 대충 둘러댔단다. 문제는 너야. 너 이 작품 처음 들어갈 때부터 다예랑 차 선생님 때문에 싫다고 그랬잖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그리고 춘배는 도대체 누구야? 솔직히 말해줘. 너 그 사람들이랑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장 대표는 몸을 떨어대는 경우를 진정시키며 말한다. 장대표의 눈을 바라본다. 당신이 원하는 거 진실이야? 아니면 대충 덮을 수 있는 변명이야? 경우는 그새를 못 참고 또 입을 나불거린다.

 

-그 사람, 분명 죽일 거예요. 배우님 죽일 거라고요! 대표님, 저 무서워요. 저 죽을 뻔했다고요. 이 녀석이랑 같이 있으면 나 죽는다고요! 바꿔줘! 다른 새끼로 바꿔달란 말이야!!!

 

경우 녀석은 흥분해 소리친다. 차 선생님 매니저, 그 녀석인가? 덩치 큰 스포츠머리. 그놈이 왜 날 공격하려 든거지?

 

-장대표, 그 차 선생님 매니저에 대해 좀 알아봐 줘요. 그리고 박민주 작가, 그 여자에 대해서도.

-어디가려는 거야?

-차 선생님. 직접 만나봐야 되겠어.

-무슨 소리야? 차 선생님이 널 죽이려고 든 거잖아? 미쳤어? 호랑이 굴에 들어가서 뭐하게? 접시 위로 올라갈 거야?

-아니, 차 선생님이 아니야. 그러니까 형, 내 부탁 꼭 좀 들어줘. 꼭 도와줘야 해.

-너한테 다 맡겨도 되는 거야? 무슨 일 일어나는 거 아니지?

 

답을 줄 수 없다. 나도 모르겠으니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차 선생님이 아니다. 그럼 대체 누구일까? 나를 원망할 만한 사람, 날 죽여 버리고 싶어 하는 사람, 내 심장을 으깨고 두개골을 씹어 먹고 싶어 하는 사람이 대체 누구일까. 응, 대체 누구일까요, 차 선생님?

 

선생님은 빨대를 저어댄다. 휘핑크림이 너저분하게 녹아든다. 누런 커피 위로 둥둥 뜬 하얀 크림이 역겹게 느껴진다. 차가움은 아무것도 껴안을 수 없다. 심장을 찌를 듯 톡 쏘는 탄산만을 녹일 뿐이다. 창밖을 보던 선생님은 주름진 손으로 잔을 잡아 한 입 홀짝인다.

 

-죽어도 우리 집에 들어가고 싶진 않나 보구나.

-거긴 추억이 너무 많아서요. 가서 말만 많아지지 뭐, 말 많아지면 뭐가 좋겠습니까. 시간만 죽어나지. 그리고 그 추억이란 게 좋지 않은 애들만 덕지덕지 붙은 게 영.

-그땐 좋아했잖니, 안 그러니? 넌 추억 속에 살지 않는구나. 아니면 아직 지워지지 않은 추억 중 하나가 지금까지 널 고통스럽게 만드는 건 아니니?

-그럴지도 모르죠. 기억은 지우고 싶다고 지워지는 게 아니니까요.

-기억이 아니라면?

 

가식적인 미소를 짓는다. 어디서 했는지 이빨이 새하얗다. 저 나이에도 라미네이트를 하나? 차가운 눈이 삐뚤어진 입에 시선을 둔다.

 

-......... 뭐, 그래, 좋아. 그나저나 용케도 알았구나. 난 네가 난리칠까 두려웠단다. 촬영에 빠지지는 않을까 염려스러웠고. 가장 걱정스러웠던 건........

-죽을까봐였겠죠. 아닌가요? 제가 죽어버리면 선생님 복수는 완성되지 않으니까요. 그 썩어빠진 육체로 여기까지 온 것도 다 그런 이유잖아요.

-호호, 썩어빠지다니. 안 본 사이에 말이 심해졌구나. 사람은 다 늙는단다. 수고한 내 인생의 보답이 이 형편없는 주름이고. 넌 안 그럴 거 같니? 그래, 들어보자. 날 부른 거 보면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겠지?

 

커피에서 손을 떼고 물을 마신다. 몇 가지 말을 삼키고 몇 가지 말을 게워낸다.

 

-선생님을 의심 안 했던 것도 아닙니다. 촬영장에서 사고가 난다면 그건 선생님 소행일 거다 생각했죠. 그런데 그러기에는 미스가 너무 많았어요. 먼저 촬영장소입니다. 박민주 작가는 쪽대본을 돌려요. 각각의 배우에게 필요한 대본만을 써서 보내죠. 저와 다예는 같이 촬영하는 장면이 많아 서로의 장면을 알지만 원섭이나 다은이는 아예 모르는 장면이 많습니다. 반대로 우리는 그 둘이 나오는 장면을 모르고요. 박 작가가 미리 선생님께 귀띔해 주었다는 추리도 가능했지만 그럴 수 없었어요.

-다예 때문이구나, 그렇지?

-맞아요. 선생님이 다예한테 그럴 순 없는 거니까요. 마지막은 방법입니다. 절 죽일 거라면 5년 전에 쥐도 새도 모르게 죽였겠죠. 그때도 선생님은 살인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죽어버린다면 선생님이 가장 싫어하는 일이 벌어지겠죠.

-그래, 한국의 제임스 딘의 탄생이겠지. 넌 리버 피닉스를 좋아했지? 젊은 나이에 요절한 배우들은 신격화되기 마련이란다. 네가 그렇게 되는 건 내가 가장 원치 않는 결말일 테고.

-기억력이 많이 나빠지셨네요. 알 파치노입니다. 암튼 뭐 이런 저런 이유를 생각하면 선생님이 범인이 아니란 건 알 수 있었죠. 그리고 오늘 제 매니저가 범인에 대해 말해주더군요. 선생님 매니저가 칼을 바꿨답니다.

 

손가락이 컵을 때린다. 손톱이 부딪히는 소리가 따갑게 귓가를 꼬집는다. 그래, 동공이 커진 거 보니 몰랐구나. 이제 슬슬 본론을 꺼낼 타이밍이다.

 

-선생님, 그 매니저, 그리고 박민주 작가는 대체 누굽니까? 선생님이 아니라면 매니저에게 그날 촬영 분을 공개할 사람은 박민주 작가밖에 없습니다. 선생님, 말해주세요. 제 목숨이 달린 문제입니다. 선생님이 노리는 제가 죽을 지도 모른다고요.

 

차 선생님은 웃음을 터뜨린다. 마치 물에 처음 뜬 어린 해달처럼 해맑게 박수를 친다. 룸이 아니었다면 모두들 우리를 쳐다봤을 것이다. 경박한 웃음을 끝낸 선생님은 다시 차갑게 입술을 오므린다.

 

-<검은 피>니? 네가 널 인질로 잡다니 참 기가 막히다. 복수를 위해서 상대의 목숨마저 걱정해줘야 한다. 어쩌다 우리가 이런 사이가 되었니? 박민주 작가에 대해서는 말해줄 수 없어. 매니저는 나도 잘 모른단다. 회사에서 배정해 줬으니 모르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니? 오히려 너한테 묻고 싶구나. 정말 모르는 사람이니? 모르는 사람이 왜 널 죽이려고 들까, 응?

-......... 죄 많은 놈한테 어려운 걸 물으시네요.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나 다름없단 거 아시잖아요.

-그럼 뛰어다녀 보렴. 바늘이라면 찔리지 않겠니? 찔리고 나면 알겠지. 그 바늘이 왜 널 찌르기 위해 숨어있었는지.

 

계산을 하려는데 차 선생님이 먼저 카드를 내밀었다. 선생님은 쿠폰을 꺼내 도장도 받았다.

 

-언제 집에도 한 번 오렴. 예영이가 보고 싶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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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 엄마 어딨어? 엄마아~ 엄마아아아아~~

 

차 선생님은 뛰쳐나왔다. 내 얼굴을 붙잡고 눈물을 닦아주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사고를 쳤다고 말했다. 그때는 열 받아서 아무 생각 없었는데 차타고 오다 보니 아드레날린이 꺼지면서 정신이 들었다. 큰일을 저질렀다며 울먹이며 말했다. 내가 다예를 발로 찼고, 다예 얼굴이 다 찢어졌다. 그 애가 신고하면 내 배우 인생은 끝난다. 무섭다. 너무 무섭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모르겠다. 엄마, 나 어떡하지?

 

-아들, 아들 진정하고 엄마 말 잘 들어. 엄마가 다 해결할게. 그러니까 아들은 가만히 있어. 이 엄마가 다 알아서 해줄 테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아무도 우리 아들 건들지 못해. 엄마가 지켜줄 거야. 그러니까 진정해, 응, 아들.

 

그날 차 선생님은 다예를 설득했다. 그 애의 사랑을 건드려 나를 보호하도록 유도했다. 망나니 같은 폭력도 사랑의 형태 중 하나라 포장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리고 다음 날, 언론에는 김진석의 김 자도 등장하지 않았다. 그때는 알았을까? 사랑하는 아들이 비수를 꽂을 거라는 걸. 머리 검은 짐승을 거둔 순진한 미망인 때문에 한 가정이 파멸에 이를 거라는 걸 말이다.

 

* 우리 스타의 범죄 22화 (루나글로벌스타)

김준모 기자  rlqpsfkx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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