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송자의 문학감상] 죽비 (竹篦)
[류송자의 문학감상] 죽비 (竹篦)
  • 류송자
  • 승인 2018.01.10 20: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류송자 수필가님.

 

따르릉! 아침 친구의 전화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남편과 심각하게 다투었고 집 떠나 조용한 곳에서 4~5일 쉬고 싶은데 갈만한 곳이 있느냐고 묻는다. 순간 떠오르는 곳이 있다. 도봉산 성불사라는 조그만 사찰이 있는데 친구가 불교 신자이니 그곳엘 가보자고 했다. 나는 불자는 아니지만 동네 친구 따라 등산 갔다가 하산할 때 그 절에 들려서 맑은 물 한사발을 대접받은 일이  있었다. 친구는 그 절에 20년을 다녔다고 한다. 목마를 때 마신 맑은 물 한사발 때문인지 얼른 그곳이 생각나서 우리는 그 절에 갔다. 친구는 이름을 적고 며칠 묵어서 가겠노라고 스님께 말씀드려 승낙을 얻었다. 스님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다.

 다음 날 아침공양 후 절 마당 나무아래 평상에 앉았다. 추석 전 가을 날씨라 쾌청하고 숲은 아름다웠다. 숲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시름이 가시듯 마음이 정화됐다.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우리와 비슷한 50대 후반의 여인 한분이 회색 절복을 입고 올라오고 있다. 첫인상이 맑고 정갈해 보였다. 수인사(修人事)를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절 뒷산에 풍광 좋은 곳이 있으니 그리고 가자고 해서 우리 셋은 자리를 옮겼다.

 그 곳은 전망이 좋고 뒤로는 숲이 우거져 있어 아늑했다. 세상을 조금은 알게 된 50대 후반이니 이야기꽃이 쉽게 피어났다. 그 보살님은 우리가 오랜 지기(知己)처럼 느껴져 자기 인생담을 내놓고 싶다고 했다. 어린 딸 둘을 두고 남편이 가정을 버렸다고 한다. 다행히 시삼촌의 경제보조로 아이들을 키우고 혼사도 마쳤다고 했다.

 혼자 살고 있는 50대 후반의 여인에게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재혼을 권유했다고 한다. 졸업한지 수십년이 지난 세월인데 초등학교 시절의 담임이 재혼을 권유할 정도면 사람이 참했구나하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처음엔 완강히 거절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음악인이고 불심이 깊은 분이니 나머지 인생을 맡겨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설득력 있는 담임의 권유로 조금 연장자이긴 했지만 재혼을 했단다.

  불행하게 살아온 긴 인생의 아픔을 충분히 보상받을 만큼 8년의 재혼은 행복하고, 충만하고, 만족했다고 한다. 그분을 만나지 못했다면 자기 인생의 황혼기가 얼마나 황량하고 무섭게 끝났을까 생각할 때면 고맙기 그지없다고 눈물을 보였다.

  그분은 독실한 불교 신자였고 그분에게서 불교의 진리를 배웠다고 한다. 그분이 세상을 떠나며 모든 재산을 이 여인에게 남겼다고 했다. 49재를 지내고 재혼한 남편의 자녀들과 자리에 마주앉아 전 (前)부인이 쓰던 패물부터 모든 재산을 자녀들에게 내어 놓았더니, 자녀들도 패물은 어머니가 쓰시던 것이니 가져가고 모든 재산은 아버지가 새 어머니에게 남기신 것이라 가져갈 수 없다고 사양을 했단다. 서로 사양하다가 몇 달 뒤의 내린 결론이 새어머니가 생활은 하셔야 하니 지금 사는 집과 웬만큼의 생활비를 드리겠다고 하고 끝을 맺었다고 한다.

  보살님은 자기의 고독했던 인생을 아름다운 무지개빛으로 바꾸어준 그분에 대한 마지막 도리로 그분의 영혼을 위해 세상 떠나는 날까지 기도를 드리기로 뜻을 굳힌 뒤 아주 절로 들어가기로 작정했고, 그때 그 집마저도 돌려주겠다고 했다. 세상적인 물욕은 당치않다고 했다. 자기는 참 행복하다고 하며 이야기를 이해하고 잘 들어주어 고맙다고 맑은 웃음을 남기고 가을바람처럼 기도 방으로 들어갔다.

  평상위에 친구와 둘이 남았는데 스님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추석이 낼 모레인데 보살님들은 추석 차례를 안지내느냐고 물으시면서 평상에 앉으셨다. 스님 또한 50대 후반으로 보였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군에서 제대하자마자 출가를 하셨다고 했다. 잘생긴 진돗개 두마리를 어루만지며 우리쪽으로 오셔서

   “스님은 개를 무척 좋아 하시는 모양이지요?"하고 내가 물었다.

 스님 대답이 개를 좋아도 하지만 몇 푼 안 되는 시주돈이 탐나서 이 조그만 절에 도둑이 든다고 하셨다. "이 산꼭대기까지요?" 우리는 의외의 대답에 몹시 놀랐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추석 차례 이야기가 나오고 왜 추석 밑에 산으로 왔는지 대답할 차례가 되었다.

 친구는 산에 올라올 때 내게 한말처럼 제사를 지내던 말든 모르겠고 추석 지나서 하산하겠다고 화가 섞인 목소리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스님 말씀이, “무슨 연유로 산에 오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보살님이 여기서 추석을 지낸 것을 나중에 남편이 알게 되면, 추석날 주부를 귀가 시키지 않고 잡아두었다고 스님께 비난의 화살이 날아올 것이라며, 스님의 입장으로는 당연히 귀가 시켜야 하니 하산해서 추석 차례를 지내고 다시 오시라”고 권유를 하셨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것을 알고 계신 듯 웃으면서 "불이나면 어떻게 해야지요?" 하고 하문을 하셨다.

  “소방차를 불러야지요” 하고 현문(賢問)에 우답을 하고 말았다.

  "산에는 소방차가 없고 마음의 불은 명상으로 끄시라"는 말씀을 남기고 스님은 선방(禪房)으로 들어가셨다. 우리 둘은 산을 내려왔고 얌전히 죽비를 맞은 셈이 됐다.

   추석이 지나 친구는 다시 그 곳에 올라갔고 나는 가지 못했다. 세월이 한참 지났는데도 달빛 속 배꽃처럼, 옛날이야기처럼, 그 여인의 은은한 향기가 아름답게 내마음속에 남아 있다. 15년도 더 된 세월인데 이제 명상을 배우고 있으니 죽비를 한차례 더 맞아야 할 것 같다. 언제쯤 철이 들꼬.

 

 

 

류송자 수필가

* 1944년 경상북도에서 태어나, 안동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를 역임하였다. 이후 2011년, 문학미디어 봄호를 통해 수필로 등단한 이후 꾸준한 활동을 계속 해 오고 있다.

* 루나글로벌스타는 수필가 '류송자'님의 수필을 2017년 5월부터 연재하고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