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리뷰] 자극은 줄이되 본질에 다가서다 <남한산성>
[L리뷰] 자극은 줄이되 본질에 다가서다 <남한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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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글로벌스타] 폭포마저 얼려버리는 엄동설한. 1636년, 남한산성으로 청의 대군을 피해 인조가 숨어든다. 강화도로 도망가 항전할 예정이었지만 그 길이 막히면서 남한산성으로 향하게 된 인조와 무리들. 영화는 두 신하를 보여준다. 일단 전쟁을 멈추고 청과 협상을 해 나라를 지키자고 주장한 주화파의 최명길은 청 장수를 만나고 세자를 청에 인질로 보내라는 협상조건을 가져온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청과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 척화파의 김상헌은 꽁꽁 언 강 위를 노인의 도움을 받아 건넌다. 손녀딸과 단 둘이 사는 노인은 왕을 안내해 주었지만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며 청나라 군대한테 길을 알려줘 뭐라도 받아야 생계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김상헌은 자신과 같이 가기를 청하지만 평생 이 강가 근처에서 살아온 노인은 거절한다. 그리고 김상헌은 노인을 죽인다.

남한산성. 신하들은 앞 다투어 청과 협상을 하자는 최명길을 사형시켜야 된다고 주장한다. 몇 안 되는 병력이지만 청나라가 떠나갈 때까지 버틸 수 있다고 말하는 대신들. 수어사 이시백이 성 밖에서 적의 목을 베어오면서 이런 주장은 더욱 힘을 얻는다. 하지만 청나라 황제인 칸이 직접 조선에 온다는 소문이 들리고 이에 인조는 선택에 있어 더욱 갈팡질팡 한다. 칸이 오기 전, 승부를 내기 위해 군사들을 출동시키지만 오히려 전멸하면서 상황은 더 악화되기만 한다.

 

영화 <남한산성>은 김훈 작가의 원작 소설을 영상화하기 위해 노력한 작품이다. 문체의 영상화를 위해 끓어오를 수 있는 이야기를 최대한 절제하며 서늘하고 추운 남한산성의 배경을 직접 호흡할 수 있게 만든다. 이런 차가운 느낌은 이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를 철저하게 외면한다. 가슴이 뛰고, 강렬하며, 치열한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적 쾌감을 포기한 대신 본질에 더 집중한다. 병자호란을 배울 때마다 딸려 나왔던 그 이야기, 척화와 주화다. 영화 속 신하들은 크게 세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최명길로 대표되는 주화파, 김상헌의 척화파, 그리고 사대부의 권위와 자신들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족속들이다. 척화파는 당시 조선을 지배하던 유교와 성리학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신념이며 굽히지 않는 선비의 정신이다.

반면 주화파의 정신은 오늘날과 더 일맥상통한다. 중요한 건 생명이요, 안위다. 살아야 내일이 있고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 무모한 싸움은 많은 피를 흘릴 뿐이다. 이 작품이 쉽게 흥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최명길을 선, 김상헌을 악으로 규정하는 편이 편했을 것이다. 초반부 김상헌이 노인을 죽인 부분도 있고, 결국 척화파의 주장이 더 많은 피를 흘리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이 파더>, <도가니>, <수상한 그녀>까지 만드는 작품마다 시선에 있어 신중함을 기했던 황동혁 감독은 균형을 유지한다. 마치 지겨운 정치 이야기처럼 서로의 신념을 가진 두 ‘애국자’의 이야기로 영화를 이끌어 갔다. 최명길도, 김상헌도 결국은 두 사람 다 왕의 신하요, 나라를 걱정하는 애국자일 뿐이다.

 

이는 선과 악, 이분법으로 모든 문제를 바라보고 맞는 건 정답이요, 틀린 건 오답이라고 단정 지어 버리는 분열 정치에 대한 깊은 담론을 제시한다. 인생이 항상 옳은 길만으로 갈 수 없듯이 정치에도 항상 옳은 길이란 없다. 어제는 정답이었던 길이 오늘은 오답일 수 있고, 오늘 오답이었던 말이 다음 날 정답으로 바뀔 수도 있는 것이 세상일이다. 많은 목소리를 들어야 되는 건 이런 복잡한 갈림길 속에서 무엇이 옳은 길인지 최대한 잘 선택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근본적인 담론을 살렸다는 점, 김훈 작가 특유의 문체를 화면으로 옮겨왔다는 점, 이병헌, 김윤석을 비롯한 배우들의 열연이 눈부시다는 점이 이 영화가 가진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쉬운 점은 영화적인 재미다. 소위 말하는 국뽕 영화나 민초 영화의 색을 지우기 위해 애쓴 만큼 그 영화들이 주는 쾌감도 지워졌다. 딱 필요한 만큼의 액션만 있기에 액션이 주는 흥미도 느끼기 힘들다. 들어간 조미료가 적기에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아쉬움을 크게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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